오래된 음악들

이은하 - 아리송해

까칠부 2013. 9. 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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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해 - 이은하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터무니 없는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선다는 앞뒤 틀린 그말이 아리송해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터무니 없는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선다는 앞뒤 틀린 그말이 아리송해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한 너의말이 아리송해

가사 출처 : Daum뮤직

 

 

가만 있어 보자... 이게 언제냐? 아주 어릴 적이다. 집앞 개천의 둑은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누런 흙먼지가 날리던 공터에는 아직 비닐하우스가 남아 있었다. 황량한 벌판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공장에는 별별것들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흙투성이가 되어 놀던 시절이다. 어디 먼 시골이 아니다. 서울이었다.

 

나는 내가 노래가사를 잘못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 한 너의 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이 아리송해'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선다는 앞뒤 틀린 그 말이 아리송해'

 

반복이었다. 그 반복이 좋아서 외우고 다녔다. 사실 '아리송해'가 무슨 뜻인지도 당시에는 몰랐었다. 마치 무슨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신명나라는 주문처럼 그냥 그렇게 따라부르고 있었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후크송의 원조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멀리 아리랑이 현대로 와서 디스코와 만나 새롭게 태어났을 것이다. 말 그 자체가 음악이다. 말 그 자체가 멜로디고 리듬이고 신명나는 음악이 된다.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는 모든 감정이 단지 말 몇 마디에 모두 담겨진다.

 

아리송하다.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아리송해'가 되었을 때 그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주문처럼 외우며 따져묻고 다시 스스로에게 물으며 위로하게 된다. 슬퍼하고 그리고 신명으로 그것을 풀어낸다. 다른 가사는 단지 사족일 뿐 하고픈 말은 그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미워하겠다는, 그리고 돌아서겠다는 그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더 이상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스스로 강물로 뛰어두는 머리 흰 늙은 사내를 보며 부르던 노래처럼. 혹은 바람난 아내를 보며 화를 내기보다 차라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처용처럼.

 

아마 이은하의 데뷔가 13살 때인가 그랬을 것이다. 아니 무대에 오른 것은 그보다 한참 더 빨랐다. 유명한 아코디언 연주자이던 아버지 이영배에 이끌려 당시 유행하던 베이비쇼의 무대에 오른 것이 아직 5살 때,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그만두었다가 워낙 혹독하게 연습시키는 모습에 애 좀 그만 괴롭히라는 동네사람의 말에 오아시스 레코드를 찾아가서 첫음반을 내었다. 참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다. 이를테면 프로연주자이던 아버지에 의해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가내 연습생이었던 셈이다.

 

어려서 데뷔해서 가수활동을 위해 호적까지 바꿨다. 트로트로 시작해서 그녀가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디스코와의 만남이었다. 타고나기도 했고 혹독한 연습으로 쉰소리와도 같은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후련하게 내지르면서도 사람의 감성을 후벼파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에서의 신명나는 춤사위와 함께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당시 밤무대에서 최고의 페이를 자랑하던 팀 중 하나가 이은하의 밴드 '이은하와 호랑이'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디스코가 퇴조하며 이은하의 전성기는 빠르게 저물고 있었다.

 

아무튼 명곡일 것이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그리고 파격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솔직한 직설적인 가사가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70년대가 저물고 80년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자폐적일 정도로 탐미적이던 70년대의 정서는 보다 보편적인 80년대의 일상으로 넘어간다. 슬픔에 멈추지 않는다. 좌절하여 주저앉지 않는다. 차라리 원망한다. 차라리 웃는다. 비웃는다. 차라리 화를 낸다. 차라리 따져묻는다. 스스로 납득한다. 그것이 헤어짐이라. 혹은 누군가에게 상대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주와 코러스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다. 웃음만은 아닐 것이다.

 

진짜 오래되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오랜 노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은하의 역시 '밤차',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 그리고 신중현의 '미인'. 가장 매혹적인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건모를 남자 이은하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새 잊혀졌지만. 떠오른다.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