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힘이 정의다. 약하면 비굴하고 저열한 것이다. 강한 자만이 정의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말한다. 자신에 기회를 주고 목숨마저 구해준 은인에게,
"당신은 약하니 볼 일 없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강해지고 나면 보답하리라.
예전 무협은 그러지 않았다. 힘이 있기 전에 협의가 있었다. 정의가 있었다. 그 뒤에 힘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무협이나 판타지를 보면 오로지 힘만이 최우선이다. 도의도, 인정도, 예의도, 품위도, 자존도, 자아도, 힘에 귀속된다. 어째서일까?
부모님들은 말한다. 대학가라.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업 얻어 강자가 되라. 승자가 되라. 그러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나 때도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데 요즘이라고 다를까? 학원폭력의 이유가 학력경쟁에 있다. 맞다. 약한 자는 도태된다. 도태된 자는 약한 자다. 그들은 아무런 존중도 존경도 받을 자격이 없다.
장르소설의 주수요층이 바로 그들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20대 초반. 쓰여지기도 그들에 의해 쓰여진다. 보편의 정의보다는 인정에 이끌린다. 천하보다는 주위의 개인적 인연에만 집착하려 한다.
심지어 당장 악당들이 천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조차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정체를 감춘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도중에도 자기의 비밀이 우선이다. 힘이 있으면 내가 해결하면 된다. 어디선가 많이 보는 모습 아니던가?
나쁘다기보다는 그런 것이 바로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그 시대의 무의식이 들어가 있다. 과연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란, 선이란, 도덕이란, 윤리란, 자아란, 자존이란, 존엄이란, 그것이 모두 들어가 있다.
우려하는 까닭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하고 모욕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것을 오히려 통쾌하게 여기고 있기까지 하다. 하긴 그나마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들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참고 보아주기가 힘들 정도다. 편협한 정의란 얼마나 위험한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그들이 열심히 궁리해낸 정의가 바로 장르소설이다. 그래서 때로 가엾기도 하다. 누구의 탓일까?
힘이 정의라 말한다. 힘이 있어야 정의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힘이 있고 난 다음에 정의를 말하겠다 한다. 감옥에 가더라도 10억만 벌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곧 정의니까.
우울하다. 그래도 장르소설의 시장 자체가 작아지고 있으니까. 그럴 여유조차 없는 것일까? 생각한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역사드라마와 무협소설... (0) | 2012.04.08 |
---|---|
황규영 <의기> - 쌍놈의 미학... (0) | 2012.03.11 |
이외수와 벽오금학도... (0) | 2012.02.14 |
정부의 게임규제정책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것들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0) | 2012.02.09 |
7인치 타블렛 vs 5인치 PMP... (0) | 201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