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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영 <의기> - 쌍놈의 미학...

까칠부 2012. 3. 11. 16:36

나는 황규영이라는 작가를 무척 좋아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글을 참 쉽게 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쉬운 말을 쉽게 전혀 힘들이지 쓸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의 글은 명쾌하다.


"쌍놈"이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통쾌하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 다른 말 필요없다.


"쌍놈이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쌍놈이라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욕을 한다. 이러니저러니 주저리주저리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압축하는 한 마디가 욕이다. 개새끼. 시팔놈. 쌍놈. 죽일 놈. 우라질놈. 썩을 놈. 똥물에 튀겨죽일 놈. 육시를 할 놈.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한마디로 모두 통한가. 그 쌍놈의 새끼.


황규영을 좋아하는 또 한 이유다. 그는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장난도 치지 않는다. 나쁜 놈은 나쁜놈이다. 개새끼는 개새끼다. 쌍놈은 쌍놈이다. 도적놈을 미화하고, 살인자를 추켜주고, 악당을 변호해준다. 그것이 뭔가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도 있다. 그런데 황규영은 그런 게 없다. 죽일 놈은 끝까지 죽일 놈이고 죽일 놈은 죽여야 한다. 나와 같다. 그런 것들 내버려둬서 뭣하는가?


무협소설 보면 정말 개자식들 많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 패고 다니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남들 어려움 겪는 것을 지켜만 보고, 힘이 정의라며 궤변을 일삼으며 폭력에 의지해 욕심만 채우고 다닌다. 그에 비하면 게으르고 뻔뻔하지만 자기 양심에 솔직한 주인공 최대한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황규영이 창조하는 캐릭터들이 대개 그렇다. 그들은 황규영의 글 만큼이나 단순하고 명쾌하다. 삿됨이 없다.


유머가 좋다. 철업는 윤진영이자 숨겨둔 생각이 많은 설미영이나 억척스런 설민주나. 장래 베스트셀러작가를 꿈꾸는 꼬치장수 강신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쓰기가 쉽지 않다. 많은 수식어와 문장을 더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짙은 유화보다는 밝고 선명한 수채화의 세계다. 어린아이의 그것마냥 투명하기까지 하다. 바로 황규영이라고 하는 작가인 것이다.


오랜만에 시원스런 소설이었달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황규영이라는 작가는 특별하다. 공장장이라고 하지만 어아피 장르소설이란 그렇다.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엔터테인먼트다. 스타일은 자신의 개성이 된다. 아예 무협이라는 틀을 파괴하고 일제강점기 불행했던 역사를 담아낸 시도는 매우 신선했다. 이리저리 말을 늘어놓기보다 호쾌하게 직선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는 후련했다. 황규영만의 스타일이 하나의 정점을 이룬다. 그렇게 그는 자유롭기까지 하다. 민족주의에마저 침잠하지 않는 그 가벼움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가벼운 유머와 오로지 대중의 충동에 호소하는 단순하면서도 직선적인 이야기와 무협의 호쾌한 액션이 어우러진다.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가상의 시대 가상의 공간에서 복면을 쓴 영웅이 악당들을 물리친다. 전혀 엉뚱하게 반달이 되어 버린 송편이 새겨진 복면을 쓰고 나라와 백성을 위기에서 구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평범하다. 게으르고 귀찮아하고 책만을 읽는다. 영웅이 아니다.


아무튼 이런 책이야 말로 싸게 만들어서 쉽게 읽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싸게 내놓는다고 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입맛이 쓰다. 굳이 비싸게 사서 읽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일요일 오후가 덕분에 무척 즐겁다. 재미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호불호가 있음을 안다. 황규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논란이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가끔 실망은 해도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해 줄 줄 안다. 그래서 좋다. 좋다.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