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차윤희의 눈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까칠부 2012. 4. 1. 08:47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놓고 기분좋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현실적 공감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때로는 짓궂게 때로는 유쾌하게 웃을 수 있게 한다. 차윤희(김남주 분)의 불행 아닌 불행을 보며 한 편으로 통쾌하며 한 편으로 안쓰럽다.


사실 어찌보면 밉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시집살이가 싫다고 돈많은 고아와 결혼하겠다 입버릇처럼 말해왔었다. 실제 그녀는 교포가정에 입양된 방귀남(유준상 분)과 결혼함으로써 시댁과의 관계로 고민하는 또래의 친구들 가운데 유일하게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로지 아들만을 챙기며 심지어 딸과 며느리에게 마냥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친정어머니 한만희(김영란 분)와 그녀가 제작중인 드라마 '귀신은 뭐하나'에서 보여지는 고부갈등, 더구나 드라마에 출연중인 배우 역시 시부모와의 사이에 갈등이 있다. 고부갈등이라고 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이상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차윤희의 의지와 노력을 일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얄밉다. 그래도 시댁이다. 그래도 남편의 부모이고 시부모다. 부럽기도 하다. 질투도 난다. 남편이나 시부모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에 비추어 지나치게 이기적이기도 하다. 한 번 골탕을 먹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의기양양한 웃음만큼이나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진다. 하필 가장 사이가 좋지 않던 이웃이 알고 보니 시부모이고 시댁식구였다는 사실은 그같은 악의어린 바람을 충족시켜준다. 그러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공감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 차윤희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차윤희에 이입하면서도 그녀가 곤란해하는 것이 즐겁다.


그새 남편의 어머니라고 바로 조금전까지 날카롭게 대립하던 앞집 아주머니가 시어머니노릇을 하려 한다. 일부러 그러려고 해서가 아니라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의 모습은 차윤희가 두려워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따져묻고, 아닌 척하면서도 아침을 밥이 아닌 빵으로 때우는 것을 타박하고, 한쪽에서는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던 앞집 여자가 오빠의 아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시누이노릇을 하려는 남편의 막냇동생이 있다. 방말숙(오연서 분)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방귀남은 그 집에 없었다. 마치 역설처럼 행복하다면서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눈물을 흘리는 차윤희의 모습이 직접 와닿는다. 


아마 어쩌면 며느리이거나 예비며느리일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드라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집살이가 이미 현실인데. 고부갈등이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인데. 그래서 그것을 거부하려는 차윤희의 노력이 과연 잘못이기만 한가? 그녀를 시집살이시키려는 시어머니 엄청애나 시누이노릇을하려는 방말숙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인가? 그럼에도 며느리이기에 그녀는 바로 얼마전까지도 감정을 드러내고 다투던 앞집에서 며느리노릇을 해야 한다. 앞으로도 그녀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그녀의 눈물이 보여준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21세기다. 더 이상 며느리의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만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차윤희의 친정어머니 한만희와 차윤희에게 올케가 되는 며느리 민지영(진경 분)의 관계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며느리이기에 시어머니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러나 민지영은 결코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오히려 며느리와 다투고서 시어머니 한만희가 차윤희의 집으로 도망쳐 온다. 은근히 속에 있는 말 다한다. 오히려 차윤희 또한 친어머니인 한만희보다 민지영의 편을 드는 경우가 더 많다. 무려 30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지금에서야 다시 찾았기에 집착 또한 강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점차 엄청애 또한 차윤희와의 관계에서 양보와 타협을, 서로에 대해 인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 아주 적확하게 정의했다. 드라마는 시어머니 엄청애와 며느리 차윤희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로맨스물이라고.


그것이 기대된다. 시집살이라면 치를 떨도록 싫어하는 차윤희가 사랑하는 남편 방귀남의 30년만에 찾은 가족이기에 시집살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역설적 상황과 잃었던 아들을 찾으며 전혀 자신의 취향과는 맞지 않는 며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엄청애의 사정이다. 차윤희가 이대로 순종적인 며느리로 끝난다면 드라마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일들이 어떻게 왁자하게 사람들을 웃기며 즐겁게 할까? 그러면서도 공감케 할 것인가?


아무튼 흥미로운 설정일 것이다. 고부갈등이라는 자체가 생겨나는 이유일 것이다. 원래 타인이었다. 바로 직전까지 날카롭게 감정을 세우고 부딪히던 엄청애와 차윤희의 사이처럼, 원래는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되었다. 남편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아들의 아내라는 이유로, 전혀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은데 기족으로 묶여 함께 살게 되었다. 더구나 가부장적인 가족관계는 며느리로 하여금 결혼하는 순간 이제까지의 가족과 떨어져 시댁이라고 하는 부계중심의 새로운 위계에 속하도록 만든다. 며느리는 이방인이며 신입이고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받아들이고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 과정이 한 순간에 방귀남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압축되어 보다 극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직전까지 싸우던 상대가 사실은 며느리이고 시어머니였다. 언젠가 직접 부딪혀 얼굴을 붉히던 상대가 오늘은 어떤 관계로 만나게 될 지 모르는 일 아닌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웃긴다. 역설일 것이다. 드라마란 역설이다. 현실이란 수많은 역설로 이루어져 있다. 시집살이를 그토록 싫어하던 차윤희가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 시집살이가 싫어 그토록 머리를 굴리던 차윤희가 결국 제대로 시집살이를 겪게 된다. 그것도 가장 극적인, 전혀 예상하지도 예고되지도 않은 돌발적 상황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도 싶을 것이다. 차라리 표정조차 지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 싫지는 않은데 은근히 시원하고 통쾌하다.


이희준(천재용 역)의 연기는 참으로 능청스럽다. 식탁에 귀신이 붙어 있다는 방이숙(조윤희 분)의 말에 지레 겁먹고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한심스런 연기를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잘 소화해낸다. 찌질함의 극치다. 집요하고 소심한데다 바보같다. 방이숙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되어 나가려는지. 방일숙(양정아 분)과 가거의 아이돌 윤빈(김원준 분)과의 관꼐 또한 흥미롭다. 조역들도 쏠쏠하니 재미있다. 한만희가 그토록 아끼는 큰아들 차세중(김용희 분)도 은근히 한만희를 물먹이는 역할로 나온다. 허황되지만 아내에 한없이 약한 모습이 민지영이 그와 결혼한 이유를 말해주는 듯하다.


베테랑의 힘을 본다. 때로 귀엽고, 때로 집요하고, 때로 청맞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시어머니노릇 톡톡히하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에서 과연 윤여정이구나 감탄한다. 대한민국에서 어머니 역할을 강부자보다 더 훌륭히 소화해내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장용은 아버지였다. 둘째동서 장양실(나영희 분)에게서는 어떤 불길한 여백을 본다. 차마 드러내놓고 실다 말할 수 없는 남편의 가족상봉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는 차윤희의 모순된 모습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소화해낸 김남주에게는 그저 감탄의 말을 건낼 뿐이다. 배우가 드라마를 살린다. 


다만 그렇게 울고 웃는 가운데 막내아들 방정배(김상호 분)의 아내 막내동서 고옥(심이영 분)의 한 마디가 문득 가슴을 후빈다.


"자식을 낳고 보니까 더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더라구요. 난 내 자식한테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사람 마음이 모두 같지는 않다. 부모 마음이라고 모두 같지는 않다. 자기가 부모가 되어 보았기에 더욱 그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만 넘쳐나는 가운데 유독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녀의 어눌함은 일그러진 가족관계가 낳은 안타까움이었을까? 방정배 또한 왜곡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현실에 있지 않다.


재미있다. 의외로 정교하며 치밀하다. 그것이 어쩐지 허술한 여유로움 속에 갖춰진다. 쉬운 이야기를 쉽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어려워야 한다. 그래서 드라마가 쉽다. 쉽게 보여지고 쉽게 읽혀진다. 쉽게 느끼게 된다. 쉽게 웃고 쉽게 공감한다. 즐거운 이유다. 즐거운 드라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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