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조선시대 여성의 열악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 열녀문을 그 첫번째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첫날밤조차 치르지 못한 신부가 얼굴도 보지 못한 남편을 위해 평생을 정절을 지키며 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그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은 남편의 뒤를 쫓는 것을 유교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극치로써 권장하고 때로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조선사회에서도 여성의 재혼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체면을 중시여기는 양반사회에서조차 여성이 재혼할 수 있는 통로를 적잖이 열어두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상민 이하의 계층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죽하면 구한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 가운데 조선여성들의 정조관념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남긴 이조차 있을 정도였다. 하기는 굳이 열녀문을 세우고 그 이름을 기록해 후대에까지 기리려는 의도 자체가 그것이 그다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슬람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종교의 교리를 통해서까지 규범으로써 확정하고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혼자가 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유럽에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혼자가 된 여성에 대해 그 배우자를 찾아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였다. 심지어 보호자가 없는 여성의 경우 누구라도 그 여성을 선점할 수만 있다면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19세기까지도 영국에서는 이혼을 원하는 남성이 아내를 돈을 받고 파는 인신매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록 남편에 의해 팔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여성은 그렇게 전남편에 의해 새로운 의지할 수 있는 남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또한 하나의 의무였다.
여성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어디선가는 - 아니 상당히 많은 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보편적 상식일 것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육체적인 부분에 있어 많은 불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조건에서 일을 하더라도 생산성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폭력적인 상황에서 여성이 물리적으로 자신을 지키는데도 한계가 있다. 누군가 보호자가 필요하다. 설사 여성이 이미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난 다음이라 할지라도 남성이 생산을 대신하는 쪽이 효율면에서 사회적으로도 보다 이익이다. 아니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여성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가 폭력적인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 여성은 철저히 남성에 종속됨으로써만이 자신과 자신의 삶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말하는 삼종지도가 그것이다. 어려서는 아버지가 지켜주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여성을 책임지며, 남편이 죽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식이 그 의무를 다한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 미망인을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는 형사취수의 풍습 역시 졸지에 보호자이며 부양자인 남편을 잃은 여성에 대한 보호차원이 컸다. 물론 형수가 물려받은 형의 재산은 동생에 의해 관리된다. 여성과 남성의 생산성은 전통사회에서 매우 컸다. 여성은 그렇게 남성에 의존하며 남성에 종속되어 살아왔다. 보호자이며 부양자인 남성이 여성의 삶과 존재를 정의했다. 동화속 착하고 아름다운 훌륭한 전통의 여성들이 하나같이 신분이 높고 고귀한 남성에게 선택되어 신분의 상승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여성의 가치란 가장 훌륭한 보호자이자 부양자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취업률을 이야기할 때 아예 취업을 포기한 여성들은 그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일찌감치 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를 포기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굳이 실업자로조차 분류하지 않는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남성은 어찌되었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평생의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남성으로서의 긍지이며 의무다. 그에 비해 여성은 취업률도 낮으며 직업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결혼을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그만둘 것을 강요받는 경우마저 지금도 적지 않다.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을 갖기보다 다른 선택을 꿈꾸게 된다. 결혼만이 자신들이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자기증명이 되는 것이다. 아니 존재의 정의다. 자신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어떤 역할인가?
그러면 남성이라고 다른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다면 남성은 그 종속된 여성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증명한다. 여성은 훌륭한 보호자이자 부양자를 얻고, 남성은 그같은 여성에게서 보호자이자 부양자로서 선택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한다. 일종의 합의일 것이다. 여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경제력으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모두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그같은 누구보다 뛰어난 남성을 필요로 하고, 남성은 그같은 여성에게서 선택된 자신으로써 자기를 과시하고자 한다. 여성에게 남성이란 현실적 필요라면 남성에게 여성이란 과시를 위한 허세이고 허영이다. 남성이 더욱 여성에 비해 이성의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그래서다. 어차피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의 존재를 정의한다. 여성이 남성의 가치를 증명한다. 서로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만 존재한다. 인간이 아니다. 독립된 인격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객체이자 대상으로서만 서로를 인식한다. 불평등사회가 보여주는 모순이다. 일방적인 관계 속에 자신이라는 존재마저 그같은 만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종속되며 수단화된다. 극중 아내인 이가연이 남편인 최정우에게 자신의 미모를 강조하며 윽박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남성에 종속된 자신의 외모로써 가치를 정의하고 존재를 과시하려든다. 그것이 이가연이 최정우에게 내세울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이가연이 최정우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정우가 이가연에게서 본 것은 무엇일까?
과연 말처럼 최정우가 진심으로 이가연을 사랑했는가조차 의문이다. 한 인간으로서 이가연을 사랑했다면 그녀는 보다 이가연을 알려 하고 이해하려 했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최정우는 이가연에 대한 잠시의 충동이 이끌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이가연이 보여주는 진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이가연의 품에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스스로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 부분은 그가 남자라는 증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때로 여성을 위해 자기 모든 것을 건다. 여성으로 인해 절차탁마하며 괄목상대한다.
우울한 현실일 것이다. 사실 우리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일방적인 관계가 존재하는 한. 그로 인한 종속이 발생하는 한. 차라리 노비가 되어서라도 권력자를 등에 업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여성의 투항이다. 스스로 종속되려 하며 그를 통해 남성을 종속시킨다. 인간의 만남이 아니다. 인간의 사귐이 아니다. 그같은 일방적인 욕망과 관계의 종속이다.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 부모라는 점도 그래서 시사하는 점이 크다. 구조적이다. 그리고 그 구조가 인간을 왜곡시킨다. 이가연이나 최정우나. 결국은 그렇게 정의된다. 아직 우리사회는 남성중심의 일방적 관계 아래 있다.
반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최정우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아직 혼인관계가 아니었다. 사실혼이란 법적인 부부관계와 달리 강제성이 약하다. 통쾌하게 마지막 순간 이가연을 불순한 의도를 무산시키고 만다. 그녀는 결코 최정우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모든 책임을 이가연에게만 돌리려는 최정우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의 말처럼 이번 경험은 그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그의 시야를 크게 넓혀줄 것이다.
사실 상당히 뻔한 이야기일 것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바로 이를 소재로 만들어진다. 결혼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꾀한다. 남자 하나 잘 만나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남자를 고르는 것이 능력이다. 남자에게 선택받는 것이 능력이다. 여자를 선택하는 것이 능력이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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