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시나위 4집 Farewell to Love

까칠부 2010. 1. 10. 01:51

 

 

아마 사람들에게는 서태지가 베이스로 데뷔한 앨범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워낙에 서태지의 포스가 세서. 부활의 히트곡들조차 이승철의 노래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나마 서태지는 연주자라.

 

그러나 시나위 4집은 시나위 역사에 있어 상당히 의미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시나위의 메탈시절을 마무리짓는 음반이었거든. 3집을 내고 방위입대했다 소집해제되어 돌아온 신대철을 맞은 것은 이미 초토화되어버린 락씬이었다. 백두산과 부활이 해체되고, 대마초파동의 여파로 온통 락밴드들을 들쑤셔놓던 암흑기, 그러나 신대철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다음 앨범을 준비한다. 원래 보컬로는 최민수를 생각했었지만 - 그 최민수가 아니다. - 마침 카리스마가 해체되고 혼자가 된 김종서가 찾아와 다시 한 번 손잡고 만든 것이 이 시나위 4집 Set my Fire였다. 베이스는 마침 이중산이 주워서 데리고 있던 서태지. 이때 데리고서 가르쳐 보겠다고 무지 갈군 결과 마침내 서태지가 담배심부름 가서 안돌아왔다고.

 

참 아쉬운 앨범이었다. 개인적으로 시나위 초기앨범 가운데 2집과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었는데.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의 타이틀곡 Farewell to Love가 좋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환상속의 그대'에 가사가 샘플링되기도 해서 또 유명한데, 메틀사운드에 실려 들려오는 묘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그 멜로디에 어울리게 더욱 성숙해진 김종서의 보컬이라는 게...

 

원래 김종서의 보컬에 대한 평가는 무척 박했다. 당시 메틀씬에서는 임재범과 김성헌, 김종서를 엮어 3대 보컬로 떠받들고 있었는데, 그러나 당시 김종서의 별명이 "저음불가" 고음은 로버트 플랜트와 비슷하다 할 정도로 곧잘 치솟아 올랐는데 저음에서는 왜 김종서가 처음 시나위에서 쫓겨났던가를 어느새 납득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나위를 뛰쳐나가 유현상의 프로모션 아래 이근형과 만나 결성했던 카리스마를 거치면서 보컬로써도 훨씬 안정되고 곡쓰기에 있어서도 싱어송라이터로서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보컬실력을 뽐내듯 발휘한 것이 바로 이 앨범 Set My Fire.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했던 당대의 3대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마지막 메틀앨범이기도 한 앨범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당시의 김종서의 보컬은 솔로데뷔 이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로 훨씬 가늘고 날카롭게 치솟았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감성이 진하게 묻어났다. 세련되기야 솔로활동을 하면서 더 세련되어졌지만 그러나 나는 이때의 김종서를 더 좋아한다. 묘하게 여리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음울한 빗소리마냥 후려쳐 오거든. 겨울비도 딱 이 앨범이 좋은데. 물론 개인적으로 겨울비 역시 김바다 버전이 좋다.

 

아무튼 이미 최고의 보컬이 되어 돌아온 김종서와 그리고 여전히 최고이던 신대철이 만나 만든 앨범임에도 4집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말했듯 이미 락씬 자체가 초토화된 상태였고, 락의 인기를 견인하던 부활과 백두산, 시나위의 트로이카체제도 무너졌으며, 락을 대신해 김완선과 소방차, 박남정 등의 댄스음악이 주류로 떠오르며 젊은 층의 관심이 그리로 쏠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에도 신대철과 뭣때문인지 틀어진 김종서가 서태지를 데리고 팀을 나가 버렸으니. 얼마 활동도 못해보고 보컬이 없어 활동을 접어야 했던 것이었다. 95년엔가? 손성훈과 함께 시나위를 재결성해 5집을 내기까지 이후 신대철은 밴드를 접은 채 기타리스트로서 세션으로 주로 활동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가 신대철이 벌이가 가장 좋던때였다. 밴드는 돈이 안 된다.

 

Farewell to Love는 신대철과 김종서가 함께 곡을 쓰고 김종서가 가사를 붙인 곡이었다. 거꾸로 겨울비는 김종서가 곡을 쓰고 신대철이 가사를 붙인 곡이다. 4집 Set My Fire는 그렇게 독불장군이던 신대철이 한 발 물러나 김종서와 함께 만들어낸 앨범이었다. 그게 또 더 의미가 있다. 8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3대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3대보컬이자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김종서의 합작품이라는 게. 그래봐야 결국 망하고 말았지만.

 

원래는 음원을 사서 배경음악으로 깔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뮤직에는 시나위 4집이 없네. 다른 건 대충 있는 것 같은데 4집만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영상은 배경음악이 안되는데... 아쉽지만.

 

 

그나저나 참 아쉽다. 예전 이사하면서 짐된다고 앨범들을 죄 갖다버린 터라. 뭔가를 간직하고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래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언제든지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까. 좋은 세상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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