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한선화 몰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까칠부 2010. 1. 10. 06:52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생각없음이다. 한 마디로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입으로 말하고 내 손으로 움직이고, 끝. 뇌를 거치지 않는 모든 인지와 인식과 사고와 행동과...

 

내가 그랬다. 새벽에 잠도 안오고 일찍 깨서 청춘불패나 다시 볼까 했더니만 그게 눈에 잡힌다.

 

원래 구하라가 자기 못생겼다고 하면 그냥 웃는다. 장동건더러 너 못생겼다고 해봐야 웃고 만다. 그러나 다른 진짜 못생긴 사람에게 그랬다가는 피눈물난다. 자칫 칼부림 나는 수도 있다.

 

이건희한테 가난한 놈들과는 안 놀아 해봐야 뭔 상관이겠는가? 오너 아들에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해봐야 역시나 별무상관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이면?

 

당장 내일도 회사에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인 사람에게 장난삼아,

 

"너 자꾸 그러면 안돼!"

 

장난이 아닌 거다. 장난이기 전에 당사자에게는 공포일 수 있는 거다. 전혀 사정이 다르니까.

 

바로 그런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그로도록 진화되었다. 인간의 뇌가 유독 발달한 것은 바로 그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면밀히 입체적으로 사고하도록 그리 된 것이다.

 

그런데 보라. 웃었다. 당하는 한선화더러 순수하다고 감탄했다. 눈물을 흘리는 한선화를 가장 먼저 얼싸안고 위로하는 구하라를 기특해 했다. 정작 한선화의 입장은 생각 못하고.

 

청춘불패 멤버 가운데 가장 위치가 불안한 것이 바로 한선화다. 시크릿이라고 해봐야 별 실적도 없고 인지도도 없는 신인걸그룹이고, 한선화 역시 몰래카메라가 있던 날까지 효민과 함께 통편녀로 방송분량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차라리 더 망가지고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방송분량을 조금이라도 더 뽑고, 팀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자 발버둥치던 한선화가 그리 안쓰러워 애틋한 마음에 한 번 더 관심을 두었던 건데,

 

그런데 그런 한선화에게 그것도 가요계의 대선배가 카메라 있는 앞에서 야단친다 생각해 보라. 차라리 카메라가 없었으면 모른다. 아마 그것 때문에도 더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제작진이 보는 앞에서, 카메라까지 켜져 있는 상태에서 대놓고 야단치고 있었으니. 다른 멤버들은 조용히 있고.

 

물론 김태우나 김신영이아 우스울 수 있다. 나르샤도 웃음을 참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선화 입장에서는 그런가? 겨우 어찌어찌 청춘불패에 G7의 하나로 밀어넣어 주었는데 방송분량도 만들지 못하고 통편녀로 쩌리 신세다. 시크릿은 여전히 별 성과가 없고 그만큼 소녀시대나 카라, 브아걸 등의 다른 G7멤버와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고. 과연 어떠했을까?

 

아니 차라리 진짜 잘못해서 그렇게 야단친 것이라면 상처는 덜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 일쯤이야 신인일 때 비일비재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것이 더구나 몰카란다. 자기를 가지고 논 거란다. 장난이라고.

 

나같으면 칼 간다. 평생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는다. 그만큼 그 상처란, 그 굴욕이란 보통이 아니라는 거다. 차라리 잘못해서 야단맞는 쪽이 낫지 고작 웃음거리라니. 그 상황이 절박하고 조급했던 만큼 그 굴욕과 상처는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이 없었던 게 맞다. 아니 그나마 생각이 조금 있기는 했다. 그래도 몰카를 선화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서 내보냈으니. 그러나 그런 몰카를 계획했다는 자체가 생각이 없었다는 증거다. 김태우나 나르샤나 김신영이나, 하긴 이제 서른도 안 되었는데. 당시까지도 서른이 못되었다. 어리니까.

 

말이든 행동이든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예다. 왜 공자는 주의 종묘에서 예를 물었을까? 몰라서? 그곳에는 그곳에 맞는 예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예로써만 옳다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의 예를 바로 알아 쫓는 것이야 말로 예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맞추는 것,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는 것, 그것이 예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각한다는 것이고. 사람 봐 가면서, 차라리 지금처럼 한선화가 자리를 잡고 했으면 모른다. 아니면 배경이 든든한 유리나 써니였다면. 이미 청춘불패에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잡은 구하라였다면. 그런데 하필 선화가.

 

괜히 사람들이 불편하다 하는게 아니다. 재미있다면서도 불편하다 하는 것은 그것을 아는 때문이다. 몰라도 아는 때문이다.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정일 테니.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관계를 알아가는 것일 게다. 김태우나 나르샤나 김신영이나 그런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너무 친해서 잊은 것일까? 너무 가깝다 보니 잠시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일까? 이해는 해도 역시 찝찝함이 남는 것은 그것이 그리 잔인한 짓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아니 청춘불패만이 아닌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할 말과 안 할 말이, 해서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음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라는 것을. 그것을 알아달라고. 자기들이 울려놓고 왜 우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건...

 

정말 한선화가 얼마나 착하고 순수한가를 알겠다. 모른다 그 속내가 어떤지는.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하고서도 그리 스스럼없이 웃으며 어울릴 수 있다는 게. 그러나 사람이 너무 착해도 세상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이미지토크에서 멤버들이 그리 한선화를 걱정한 이유를 알겠다. 잘 되었으면 좋을텐데. 착한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나 자신이 그리 착하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 자신에게도 실망한 순간이었다. 어찌 저 장면을 그저 웃고만 넘어갔을까? 한선화의 처지가 어떠했던가는 내가 더 잘 알 텐데도. 뇌야 있지만 과연 그것은 쓰이고 있는가. 반성한다.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