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었다.
"언젠가 김태원의 바닥이 드러날 것이다."
즉 과거의 추억만 팔아먹는 모습에서 팔아먹을 추억이 떨어지면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조용히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라고.
하긴 그것을 김태원 자신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떨어질 때 쯤 음악해야죠."
실제 그토록 흥미롭기만 하던 이야기들도 점차 겹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어느샌가 다른 방송에서 또다시 형태만 달리해서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제 슬슬 김태원의 바닥이 드러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웬걸?
아마 그것을 처음 느낀 것이 4월 말 놀러와에 유현상과 함께 출연해서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다는 락계의 선배 유현상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또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어쩌면..."
그리고 최근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예능이든 뭐든 오래가는 조건이란 무언가?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잠시는 독불장군이 있을 수 있어도 오래 가고자 하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혼자서는 언젠가는 질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아무리 잘해봐야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는 대중은 그로부터 지루함을 느끼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능에서도 일류들은 혼자서 웃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 웃길 줄 안다. 혼자서 재미있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재미를 줄 줄 안다. 그렇지 못하면 잠시 패널로나 띄엄띄엄 나오다 말 뿐 오래도록 끌어가기는 힘들다. 김태원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남자의 자격에서,
처음에는 공격당하는 캐릭터로써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약골인 신체와 과거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이용해 주위로부터 동정을 받고, 놀림을 당하고, 공격을 받는,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캐릭터가 약간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늦둥이답게 예능이라는 자체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그가 점차 예능을 알고 출연자들과도 알게 되면서 뭐랄까 조금 더 적극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네 번 째 미션이던 육아편 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김태원은 조금씩 주위의 출연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 그 첫 타겟이 되었던 것이 남자의 자격 공인왕따 김성민이었다.
"배우는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도 되나 봐."
"이 배우도 그리 수준이 높은 건 아닌데 김배우와 비교하니 한참 높아 보이네."
"필터가 없어. 머리에서 거르지 않고 그냥 내뱉는 거야."
그리고 토론편에서는,
"여기서 더 늘린다는 건, 오히려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차피 누가 누구든 같으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등수놀이를 처음 시작한 것도 김태원이었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 3위로써..."
"잘라야 한다면 저기 6위와 7위..."
마침내는 아르바이트 편에서 왕비호 윤형빈에게 그런 말까지 듣고 만다.
"그렇게 마음 곱지 않게 쓰시다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어요."
그럴만도 했던 것이,
"네가 7위라는 거 정경미씨가 아니?"
"이배우는 어정쩡해!"
"사람이 너무 많아. 줄여야 해!"
그리고는 심지어 지난주 젊은 그대 편에서는 그토록 딸랑거리던 이경규에 대해 퀴즈에서 이기자 여유롭게 놀리는 포즈까지 취해 보이고 있었다. 말로만 버럭하는 이경규에 비해서도 손까지 올라가는 등 김성민의 노필터 봉창멘트에 반응하고 있기도 했고.
샴페인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영향은 샴페인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 7위의 여자친구... 저랑 친해요."
"5위까지 올려드리겠습니다."
"요정 맞네. 아름답잖아? 하지만 음반 낼 정도는 아니야."
그러고 보면 남자의 자격에서도 이경규를 제외하고 멤버 전체를 건드리는 캐릭터는 김태원 하나 뿐이다. 김성민의 봉창멘트도 이경규와 김태원만을 상대할 뿐이고, 그 밖의 캐릭터들도 서로 터치하는 법 없이 이경규와 김태원을 중심으로 멘트를 날리거나 리액션을 취할 뿐이다. 공인 넘버2라는 김국진도 그렇다. 그러나 김태원은 되든 안 되든 한 가운데서 이경규조차 않는 공격성 멘트를 모든 출연자에게 날리고 있으니 사실상 프로그램에서 중심을 잡고 이끌어가는 것이 김태원이 되어 버렸다. 사실상의 이경규 다음의 2위라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최근 급속히 병풍화되고 있는 김국진과 김태원의 차이라 할 것이다. 김국진은 멘트를 아낀다. 그러나 김태원은 멘트를 아끼지 않는다. 김국진은 타겟을 제한하지만 김태원은 일단 아무나 잡고 건드리고 본다. 신정환이 이에 대해 잘 표현했었는데,
"이렇게 편하게 예능하시는 분 처음 봤어요. 마치 어디 다른 사업체 큰 거 차려놓고 부업 하시는 것처럼..."
즉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예능출연 자체를 즐기게 되었달까? 처음에야 부활을 알리겠다는 목적에서 예능에 출연하게 된 것이 보였지만 지금은 예능출연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그만큼 적극적이 되었고.
앞서 말한 남자의 자격에서의 변화되는 모습들이 그 증거다. 친해진 만큼 스스럼없어지고, 즐기는 만큼 되든 안 되든 일단 무언가 던져보기도 하고, 몸은 전혀 안 따라주는데 전혀 모르는 2PM의 춤을 먼저 나서서 따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홍보를 목적으로 얼굴만 비추는 연예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달까?
아무튼 덕분에 요즘 묘한 캐릭터가 형성되었으니,
일단 김태원은 락커다. 뮤지션이다. 방송용 멘트인가는 모르겠지만 락의 전설이라고까지 불리우는 이다. 국민시체라 불리울 정도로 약골이다. 국민외할머니라 불리울 정도로 어쩐지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고. 어눌한데다 상식도 결여되고 말이나 행동도 엉뚱하고, 심지어 스타골든벨 등에서는 아예 녹화 도중 쉬러 가거나, 앉은 자리에서 조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허술하기까지 하다.
아니 그런 정도를 넘어서 이제는 아예 그것을 이용할 줄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증조할머니가 된단 말야!"
"할머니라고 하면 안돼!"
국민외할머니라는 별명을 이용하는 말들이다. 어제 상상플러스에 나와서도 그랬었다.
"아이큐가 81인데, 81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든다."
그러면서 더욱 김태원에 대해서는 약골이라는, 무식하다는, 엉뚱하다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그런데 말은 갈수록 독해지고,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얼핏 김태원이라는 캐릭터만 살짝 치우고 나면 거의 김구라, 혹은 신정환 수준이다. 단지 그가 갖는 캐릭터가 그런 것들을 잘 가려줌으로써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뿐. 확실히 김제동의 말마따나 방송역사상 없었던 캐릭터 그대로랄까? 알은 독한데 불쾌하다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는.
이 또한 김태원의 예능감이랄까? 하긴 남자의 자격에서도 김태원이 나서서 독설을 날리며 갈궈대는 바람에 다른 프로그램에서처럼 - 신정환이나 김구라와는 달리 독설에도 독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즉 지금 열심히 팔아먹고 있는 옛이야기가 떨어지더라도 먹고 살 밑천은 있다는 것이다. 기왕의 널리 사람들에게 인식된 김태원이라는 캐릭터와 점차 예능을 알아가는 그의 바뀌어가는 모습에서. 예능에 적응해가며 더욱 능숙해져가는 그의 자세에서.
물론 그때의 모습이란 처음 예능계에 얼굴을 내비쳤을 때와는 다를 것이다. 당연한 것이 처음 김태원이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그 독특함 때문이었으니까. 역대 그러한 독특함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앗던 연예인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지. 그래서 김태원도 그리 되리라 생각했던 것인데,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 아직까지의 폭발적인 반응이 사라진 대신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오게 될 것이다. 처음에야 윤종신의 예능 출연이 화제였겠지만 지금은 윤종신이 예능에 출연하는 자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크게 웃길 일도 없고, 크게 환호할 일도 없고, 그냥 그대로 살짝 웃음을 지으며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고서 웃을 때가 되면 웃는. 정착의 단계랄까? 그만한 자격이 되고 능력이 되고 지금도 차근차근 그러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으니까.
즉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모습만 놓고 보았을 때 확실히 김태원의 예능진출은 성공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신에게나, 그의 팀에게나, 그리고 예능을 즐겨보는 대중들에게나. 누구 말마따나 왜 이제서야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싶을 정도랄까?
다만 그래도 한 가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말한 그대로,
"웃음을 욕심낼 거면 예능 그만두고 음악해야죠."
더 큰 욕심을 부리지는 말아달라는 것. 예능인으로써 자신을 너무 깊이 들이민 나머지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을 잃지는 말아 달라는 것. 얼마전까지는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걱정된다. 너무 열심인 것 같아서.
아무튼 앞으로 계속해서 지금의 엉뚱한 매력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이제까지의 서정적인 부활만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술과 담배도 줄이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고. 더불어 욕심이라면 다시 한 번 3대 기타리스트로서의 실력을 볼 수 있었으면...
한 마디로 결론은, 김태원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우려나 예상과는 달리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지금 보이는 모습대로라면. 그냥 추억만 팔아먹고 사라지는 그런 연예인은 아닐 것 같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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