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밴드

TOP밴드2 - 소소한 소품의 코치결정전, 밴드가 주인공인 이유!

까칠부 2012. 7. 8. 09:13

휑하다. 처음 코치결정전 스튜디오 세트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청률이 너무 안 나오다 보니 제작비가 깎였구나."

 

확실히 시즌1에서의 코치결정전에 비하면 세트가 상당히 부실하다. 100초무대도 있었고, 회전의자도 있었으며 24개 팀이 관객이 되어 지켜보던 시즌1과 비교하면 소품 정도다.

 

16강에 오른 팀들이 코치를 먼저 선택하는데 그 방법이 화이트보드에 손으로 코치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코치는 자기에게 건네진 화이트보드에서 이름을 지울 것인가의 여부로 선택에 응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요즘 어지간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이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구성은 쓰지 않을 것이다. 화이트보드와 매직, 지우개, 그리고 손글씨로 쓴 이름, 마치 80년대 가족시간대 오락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어눌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하기는 코치들이 앉아 있던 책상 역시 오랜 기억속의 낡은 나무책상과 걸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어느새 이해하고 있었다. 시즌1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참가팀들이 아마추어였었다. 프로라 할 수 있는 팀들도 겨우 음반이나 음원을 내고 있었을 뿐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밴드들이었다. 코치들이 그들을 선택하려 해도 그들의 음악을 들어야 했었다. 대중들에 어떤 팀들이 어떤 코치에게 갔는가를 알리기 위해서도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어야 했었다. 밴드와 코치의 첫만남이기도 했었다. 상견례인 셈이다. 코치야 이미 유명하니 밴드들 스스로 자신들은 어떤 밴드인가? 어떤 지향을 가지고, 어떤 재능과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가? 들려준다.

 

그러나 시즌2에서는 다르다. 16강에 남은 팀들 가운데도 처음 몇 소절만 들으면 어떤 밴드가 부른 어떤 음악인가 바로 알 수 떠올릴 수 있는 팀들이 상당하다. 새삼 다시 연주를 듣지 않아도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연주를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인에게 음악이란 곧 자신의 얼굴이다. 더구나 코치들은 바로 2차예선에서 3차예선 1, 2라운드까지 16강에 남은 팀들을 심사하고 걸러낸 이들이다. 이제 와서 다시 연주를 듣는 것은 사족이고, 세 번의 예선에 이어 다시 무대를 선보이는 것은 지나친 동어반복이다. 이제는 이제까지의 예선성적을 바탕으로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하필 16강에 남은 팀들 가운데 상당수가 네임드라는 것도 있다. 시즌1에서는 일단 코치가 먼저 밴드를 선택했다. 코치가 먼저 밴드를 선택하면 그제서야 밴드들이 선호한 코치가 누구인가가 공개되었다. 시즌2와는 정반대다. 당연한 것이 제아무리 음악인으로서 대선배이고, 심사위원으로 코치로 자신들을 심사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트랜스픽션이나 피아 정도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밴드로서 첫손에 꼽는 이들인 것이다.

 

어차피 오디션프로그램에 출연한 의도가 그것일 테니 심사위원이나 코치는 그렇다 하더라도 도대체 누가 누구를 고르고 선택한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아도 높은 자리에서 심사하고 앞으로 코치로써 그들을 이끌게 될 텐데 선택까지 그들이 하게 된다. 일방적인 관계가 만들어지기 쉽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자칫 대한민국 밴드음악의 네임드들이 하찮아질 수 있다. 밴드를 위해서도 그것은 결코 좋지 않다.

 

당연히 밴드가 선택을 받는 입장이라면 코치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실제 일단 코치를 선택하고 다시 코치의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밴드들도 상당히 필사적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먼저 선택받기 위해 어필해야 하는 입장과 일단 선택하고서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입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코치에게 묻는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낸다. 원래는 신대철을 원했지만 신대철의 무심한 말 한 마디가 상처가 되어 칵스는 유영석으로 입장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주도권은 어디가지나 밴드들 자신에게 있다.

 

문답이 중요하다. 대화가 중요하다. 소통이 중요하다. 그 가운데 밴드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동안의 예선에서의 과정들이 선명해진다. 이런 팀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올라왔다. 다만 3차예선 2라운드에서 편집되어버린 밴드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존재감이 희미했다. 역시 서사가 두텁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선의 연장이다. 특히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보여진 2차예선 이후의 누적된 서사가 이번 코치결정전을 통해 완결지어지는 것이다. 충분한 서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코치결정전의 긴장이나 성취감 역시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역시 3차예선 2라운드에서 16강에 남은 밴드라면 편집하지 말고 무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납득을 위한 과정이다.

 

다른 군더더기를 뺀다. 괜한 거창하고 화려한 무대로 밴드와 코치의 관계를 가리지 않는다. 화려한 무대로 밴드들을 돋보이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이미 출전한 밴드 대부분이 거창하고 대단한 존재들인 것이다. 새삼 더 멋지게 꾸미기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부각시킨다. 스타들이 괜히 예능에 출연해 스타로서의 허위나 가식을 벗고 일상인으로서의 다른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쉽다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에는 그들은 아직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 애매한 것이다. 밴드로서는 그야말로 대스타들일 것이다.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치고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 자신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야 갈릴지라도, 그러나 그들의 실력과 존재 만큼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야기다. 밴드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귀에 도청장치라는 팀이 어쩌건 그것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차라리 무명의 신인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쪽이 훨씬 쉽게 와닿는다. <TOP밴드>가 처한 딜레마일 것이다. 밴드음악의 대스타와 대중에게 무명의 음악인,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경계가 갈수록 <TOP밴드>를 모호하게 만들며 지금의 상황에까지 이르도록 만들었다.

 

가능한 최선이었을 것이다. 네임드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그러면서도 네임드를 어떻게 배려하는가? 시즌1에서와 같은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코치가 아니다. 그보다는 감독에 가깝다. 음악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그동안 최소한 10년 이상을 더 오래 음악을 해 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다. 더 많은 무대에 서봤고, 더 많은 대중과 만나봤다. 그동안의 음악적 성과 만큼이나 시행착오도 있었다. 아니더라도 선배이자 연장자로써 조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조율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히딩크가 박지성보다 선수로서 더 뛰어나서 감독을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분위기부터 다르다. 시즌1에서 코치란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밴드들에게 과제를 주었다. 그것을 해내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요구에 미치지 못하면 화를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시즌2에서는 벌써부터 경기장 락커룸 분위기다. 누가 어떤 미션에 나가고, 어떤 전략으로 임하고, 신대철의 말처럼 그들은 감독이다. 야전사령관이다. 밴드들이 이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지 위에서 지시하고 가르치는 일방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니다.

 

경연방식도 조별경연을 없애고 처음부터 조간대결에 들어가고 있다. 미션을 나누고, 미션에 따라 각 조에 속한 밴드들이 출전해 두 팀만 남고 나머지는 떨어진다. 코치들의 첨예한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어떤 팀이 어떤 미션에서 더 유리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얼마나 자기조의 밴드들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것을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에 승패는 달렸을 것이다.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과연 네 개 조 가운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유영석의 레알 마드리드와 신대철의 FC바로셀로나, 그렇다면 김경호와 김도균의 조는 어떤 팀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하여튼 밴드들도 참 열심이다. 하기는 그것이 밴드들 자신을 대중에 알리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분량을 만들려 어떻게든 노력한다. 악퉁의 리더 추승엽 역시 망가지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내귀에 도청장치도, 그리고 몽니도, 상당히 심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밴드들이 직접 노력해 살린다. 피터팬 컴플렉스의 전지한은 그 가운데서도 발군일 것이다.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 그저 자지러진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올 때 사람들은 더 크게 웃게 된다. 혼자 보기 아깝다. 김도균은 어느새 만인의 자비로운 보살이 되고 있다. 밴드들은 물론 이지애 아나운서마저 김도균을 웃음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신대철의 카리스마는 역시 대단하다. 16강에 오른 팀 가운데 중간에 입장을 바꾼 칵스까지 무려 7개의 팀이 결국 신대철을 선택했다. 당대의 전설이던 시나위였다. 그 시나위의 리더이며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다. 시즌1에서도 모든 코치들이 경계하며 의식하던 이가 바로 신대철이었다. 전통의 깊이와 새로움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가장 이론에 충실한 것은 유영석일 테고, 가장 대중적인 것은 김경호, 김도균의 경우는 백두산의 해체에서 재결성까지 공백이 길었다.

 

간만에 재미있었다. 힘을 뺀 소소함이 더욱 밴드들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평소의 모습인 듯 격의없이 어울리는 밴드들의 모습이 부담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음악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즐겁다. 음악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음악을 하는 듯 즐겁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바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필자도 같이 즐깁다. 이런 맛이었다. <TOP밴드>의 맛이었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