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웃자는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든다... 안 웃기거든?

까칠부 2010. 1. 13. 07:22

언제부터인가 공식이 되어 버렸다.

 

"개그는 개그일 뿐 맘에 두지 말자!"

 

그래서 첫머리에,

 

"웃자는 글입니다."

 

이 말 들어가고 나면 뭐라 말도 못한다.

 

"웃자는 글에 죽자고 달려든다."

 

그러나 웃음이라는 게 그렇거든.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 웃긴다. 그런데 그만큼 욕을 먹는다. 왜? 안 웃기니까.

 

왕비호 윤형빈 개그콘서트에서 대박쳤다. 그런데 그만큼 또 욕한다. 안 웃기니까.

 

간단한 거다. 안 웃기니까. 웃기면 욕하겠나?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공옥진 선생님과 관련해 그런 일화가 있었다.

 

병신춤으로 공옥진 선생님이 한창 유명해지고 여기저기 널리 알려질 무렵이었다. 어느날 한 사람이 공옥진 선생님을 찾아왔다.

 

"병신춤을 그만두시오!"

 

다짜고짜 요구하는 그 사람에게 사정을 물으니 집안에 몸에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더란다. 그런데 병신춤 어쩌고 하니 마치 아이가 놀림을 당하는 것 같다고. 그러자 공옥진 선생님도 가족 중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어 그를 생각하여 춤을 춘다고 하여 위로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병신춤이야 한국현대문화사에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병신춤 어쩌고 할 때 상처를 받는 사람도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라디오스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김국진이 처음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한 이혼개그... 그러나 정작 이혼의 경험이 있고,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꽤 상처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 그것 때문에도 비판이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웃자는 개그라고 불편함에도 같이 웃어주어야 할까?

 

원래 웃음이라는 건 - 특히 사람을 가지고 웃긴다는 건 그 사람을 대상화하고 희화화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하찮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자칫 선을 넘게 되면 웃음이 아니라 조롱이 되고, 유머가 아니라 비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키가 작은 것이 컴플렉스인 사라을 가지고 놀리며 웃기는 것처럼. 당사자야 우습지만 키가 작은 것이 평생의 컴플렉스인 사람에게 그것은 과연 웃음이기만 할까? 그래도 개그니까 웃어야 할까?

 

그래서 코미디라는 것이 나타난 이래 항상 코미디언들은 그로 인한 구설에 휘말렸다. 저질이라느니, 교육상 안좋다느니, 대상을 희화화한다느니, 실제 나 역시 웃자는 코미디프로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웃긴 것들도 있었지만 왜 저런 것으로 웃어야 하는가... 개그콘서트도 그래서 때로 참 불편하더라는 것이다.

 

아마 그러겠지.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

"개그로만 봐라!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느낌 혐오와 환멸이란 실체더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까지 나 스스로 부정해가며 남들 웃으니 함께 웃어야겠는가?

 

이건 근본적인 문제다. 자, 웃자고 한 소리다. 개그다. 유머다. 그런데 나는 그게 전혀 웃기지 않다. 오히려 짜증나고 화가 난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같이 웃을까?

 

물론 배려한다면 다들 웃고 좋아한다면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취향을 양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들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그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하고 혐오스럽다면 나서서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아?"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이게 뭐와 같으냐면 운동부에서 매일같이 빠따라는 걸 맞는데, 어느날 누군가 일어서서 항의한다.

 

"왜 맞아야 합니까?"

 

그러자 말한다.

 

"남들 다 맞는데 왜 너만 난리야?"

 

다르다 보는가?

 

왜 모두가 같이 별로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참고 웃어주어야 할까? 웃기기는 커녕 화가 나고 불쾌하기만 한 것인데도 웃자고 한 소리라고 참고 같이 웃어주거나 최소한 침묵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나의 감정은?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순정만화에 흔히 나오는 그 대사다.

 

"남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래서 뭐?

 

한 마디로 집단주의라는 것이다. 모두가 나와 같아야 하고, 나도 모두와 같아야 하고. 여기에 더해 요즘 유행하는 쿨한 것도 더해지면서 자신의 감정따위 아랑곳 없이 분위기에 맞추고. 마치 가면을 쓰고 웃고 울고 연기하는 꼬락서니랄까?

 

더구나 문제가 말했듯 그런 개그나 유머 가운데는 간혹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것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알량한 웃음을 위해 참아주어야 하는가?

 

최근 그래서 부쩍 싫어진 말이,

 

"개그는 개그일 뿐"

 

개그는 그냥 개그일 뿐이 아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이쪽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그쪽 사정을 들어주어야 할 이유 만큼 이쪽 사정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하여튼 전혀 우습지도 않고 짜증만 나는 개그에 개그일 뿐이라 같이 웃어주어야 하는 문화가... 이제는 나도 지쳐서 아예 시비 자체를 걸지 않는 편이지만 보기만 해도 울컥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넓고 참 뭣같은 인사들도 많달까. 그런 주제에 또 그리 잘난 체더라는 거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든다."

"쿨하지 못하게스리..."

 

인간이란 결국 자기 중심으로밖에 사고를 못하는 터라.

 

자기로 인해 상처입은 사람을 돌아보지 못할 것이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기본일 텐데도. 그저 관용만을 요구하는 게 요즘인 모양이다. 아니 관용이라기보다는 강제겠지. 동의에 대한 강제.

 

참 언제 봐도 적응이 안되는 모습들이다. 생각없음이란...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