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길창덕 선생님께서 가셨다...

까칠부 2010. 1. 30. 22:26

어느 학교에나 그 별명을 가진 선생님은 꼭 있었다. 아니 선생님이 아지더라도 주위에 꼭 그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꺼벙이"

 

이제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가 되어 버린 그 이름.

 

한때 쇼비디오자키라는 쇼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코너가 있었다. 김미화와 김한국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순악질여사.

 

"음메 기죽어!"

"음메 기살어!"

 

특히 김미화에 있어 과연 순악질여사 없이도 지금의 김미화가 있었을까.

 

원래는 장미희 주연의 영화도 있었더랬다. 어려서 만화방 가서 익숙한 제목이라 보려니까 주인 할머니가 말리셨다.

 

"이건 너희들 보는 게 아니야."

 

아주 작은 골방만한 만화방이었는데 할머니가 보통 깐깐하지 않으셨다.

 

꺼벙이, 고집세, 신판보물섬, 쭉정이...

 

하나같이 문제아들이었다.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피우고. 그러나 순수한 아이들.

 

순수한 동심을 그리 좋아했더랬다. 공부에 매이지 않고, 더 잘하려 더 누군가를 이기려 하지도 않고, 마냥 순진한 아이들을.

 

그리 독하게 생긴 고집세도 그리 순진했더란다. 아마 꺼벙이던가 쭉정이던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

 

아마 고아원 위문하자고 저금통 털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군고구마인가를 사서는 위문하러 가는데, 그래도 체면이 있으니 택시 탔다가 택시비로 다 털려서는 오히려 고아원에서 위문을 받는.

 

대개 그런 에피소드였다. 장난을 쳐도 짓궂어도 악하거나 독하지 않았다. 별나지만 모나지는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다. 사랑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이 선생님의 만화에서는 그리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선생님의 만화 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순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었다.

 

나이 먹어서도 당시 선생님의 만화를 보면 그리 유치할 수 없었다. 동요는 유치하다. 그래서 하찮은가. 동화는 유치하다. 그래서 가치없는가. 유치함이란 순수함이다. 한없이 순수할 때 한없이 유치할 수 있다. 시대의 한계는 있었지만 석유곤로와 연탄불과 무쇠솥과 깨진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널려진 말린 호박들과 같은, 그런 시절이기에 가능한 순수들이었다. 눈이 오면 걱정 없이 뛰어나가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 하고, 연을 날리고, 팽이며 딱지며, 설이면 세뱃돈 생각에 기대에 부풀고, 방학은 기다려지지만 그러나 성적표 걱정에...

 

어쩌면 선생님은 어린아이셨을 것이다. 사람이 순수해지면 아이가 된다던가. 그리 순수하셨기에 아이들보다 더 순수한 아이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일 테지. 이기고 무찌르고 경쟁하는 만화들 가운데, 화를 내고 원망하고 울며 내달리는 만화들 가운데 한가롭게 말풍선을 늘어뜨리며 지붕을 뚫고 오르는 아이만큼이나 순수한 어른들을 그래서 그리실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순수한 이는 가장 순수한 곳에 이른다 한다. 순수한 것은 하늘로 탁한 것은 땅으로, 정한 것은 저 위로, 부정한 것은 저 아래로,

 

그곳은 아마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 선생님께서는 그곳에서도 굳이 아이들을 찾아 가시리라. 그리고 아이들 곁에 자리잡고 앉아 그리 이야기를 시작하시리라.

 

"얘들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 볼래?"

 

외로운 아이들 곁에서 마치 아이와도 같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기억은 이렇게나 선명한데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몇 년 전 선생님 회고전에서였다. 그때 더 자세히 깊이 봐둘 것을.

 

돌아가심을 슬퍼할 수만은 없는 것은 선생님께서는 그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우리가 잊고 있는 동안에도. 그저 고맙다고. 그저 고맙고 고맙다고.

 

편안하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선생님께서 그리시던 그 순수들처럼. 그 순수한 아이들처럼. 그 아이들처럼.

 

1930년 1월 10일생. 2010년 1월 30일 졸. 향년 81세.

 

부디...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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