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자신에 의해서든, 혹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든, 그도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해서든. 놀라고 당황한다. 다치고 아파한다. 화내고 원망한다. 미워하고 다툰다. 마침내 싸우고 외면한다. 사람 사이에서 항상 갈등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 이유다.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그럴 수 있다. 항상 얼굴을 마주봐야 한다. 마주하고 말을 섞어야 한다. 몸이 맞닿고 살이 부대낀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긴 만큼 그만큼 서로 엇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반드시 한 번은 부딪힌다. 우연으로라도 한 번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다투게 된다. 그럼에도 다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말을 섞어야 한다.
한 번도 싸움이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사이란 꽤나 시린 사이일 것이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서로에 대해 거리를 두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어딘가 먼 바다 건너 전혀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에서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나보다 더 잘생기고, 더 화려하고, 더 잘났다고 말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잠시 스쳐지나듯 관심을 가지기는 하겠지만 결국 이어지지는 못한다.
엄청애(윤여정 분)가 손아랫동서인 장양실(나영희 분)를 질투한 이유일 것이다. 동서니까. 가족이다. 남편의 동생이 그녀의 남편이고, 남편의 동생의 아내가 바로 그녀다. 항상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차라리 아예 사이가 안좋아 한 번 얼굴도 보지 못한 사이라면 질투의 감정도 없다. 원망하고 미워할 일도 없다. 그래서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후회를 남긴다. 후회하고 반성하게 된다.
가족이 그래도 남과는 다른 이유일 것이다. 동서가 아니었다면 엄청애의 질투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엄청애의 질투로 인한 원망과 미움이 장양실과의 관계를 끝내고 말았을 것이다. 가장 오랜 친구란 그같은 과정을 가장 자주 많이 겪어온 사이일 것이다. 싸우고 헤어지고, 화해하고서는 다시 다투고 갈라서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시시해진다. 서로 절교하고 다시 안만나도 여전히 그들은 친구다.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쩌겠는가? 가족인 것을. 동서다. 남편의 형의 아내다. 남편의 동생의 아내다. 아무리 미워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 사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계속 봐야 한다. 미움을 쌓다가도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지게 된다. 미움조차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용서조차 아닌 묘한 납득이랄까? 그렇게 서로를 인식한다.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 미워하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서로 질투하는 것도, 결국은 서로일 뿐이라는 것을.
남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싫으면 갈라서면 된다. 미우면 다시 안 보면 된다. 굳이 참을 필요 없다. 아직 가족이라 여기는 엄청애는 남남구(김형범 분)를 무척 반기지만, 이미 이혼하여 남이 된 방일숙(양정아 분)은 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감추지 않는다. 더 이상 점처럼 그를 인내해주지도 않는다. 부부가 0촌인 이유다. 헤어지면 남이다.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너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남남구는 가족이란 것을 잊어 버렸다. 방일숙의 잘못이다. 사람은 너무 잘해주어도 올바르게 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원망하고 미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를 인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미안한 감정이 생겨난다. 말로 하기는 쑥쓰럽다. 단지 행동으로 드러날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조차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시어머니(강부자 분)가 엄청애의 손을 잡고 오랜 이야기를 털어놓듯 엄청애 또한 쓰러져 누운 장양실의 이마를 짚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지금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다.
다만 하필 그 상황에 장양실이 간직하고 있던 방귀남의 사진이 시어머니의 눈에 띈 것은 얼마나 짓궂은 설정인가. 그것을 또 엄청애가 보고 있다. 원망이 쌓인다. 미움이 쌓인다. 하지만 이미 용서도 쌓았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남이 되던가, 아니면 다시 가족이 되던가. 오래고 긴 여행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원망을 쏟아내고서도 방장수(장용 분)에게 장양실은 여전히 자신의 제수였다. 다만 지금까지 며느리로써, 동서로써, 어머니와 아내를 찾던 장양실에 비해 이제는 그조차 어려워지게 생겼다. 남편 방정훈의 사업상의 어려움이 어쩌면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래서일 것이다. 막내 방말숙(오연서 분)이 오빠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내쏘듯 털어놓던 이야기들은. 너무 조심스럽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좋은 감정만 있다. 방귀남도. 그리고 방귀남의 식구들도. 혹시라도 안 좋은 감정을 남길까봐. 혹시라도 서로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을 남기게 될까봐. 차유희(김남주 분)가 덕을 보고 있다. 방귀남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차윤희에 대한 시댁식구들의 압박을 크게 줄여주고 있다. 한 번 잃었던 아들이기에 다시 잃고 싶지 않다.
방말숙이 방귀남에게 쏘아대는데 그래서 엄청애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라기에는 그들 사이는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조용하다. 서로 얽히려 하지 않는다. 오빠로서 동생인 방말숙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도 않고, 방말숙은 물론 가족들 역시 방귀남에 대해 깊숙이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정중한 타인이다. 가족이란 허울을 쓴 예의바른 타인에 불과하다. 얼마나 무례할 수 있는가. 얼마나 무례를 감수할 수 있는가. 관용이 곧 관계의 깊이다. 무관심은 결코 관용이 아니다.
차라리 얄미운 올케인 차윤희가 더 편하다. 싸울 수 있으니까. 미워할 수 있으니까. 원망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올케일 테니까. 남이었다면 그 정도 싸우고 다투는 사이 다시 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굳이 싫은데 다시 볼 일 없다. 굳이 마음이 불편한데 함께 할 일 없다. 응석이다.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을 만큼 방말숙은 역설적이게도 차윤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귀남은 아니다. 도대체 방귀남과 자신의 사이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최소한 차윤희와는 미워할수도 화해할 수도 있다.
천재용(이희준 분)과 둘째 방이숙(조윤희 분)의 관계가 잘 풀리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은 마냥 좋기만 했다. 그저 좋게만 대하고 있었다. 계기가 필요하다. 멀어져야 한다. 위태로워져봐야 한다. 천재용이 사라진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연애에는 밀당이 중요하다. 한 번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한 커플은 너무나 손쉽게 헤어지고 만다. 특히 방이숙에게는 그런 특단의 수단들이 필요하다. 아니면 끝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에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불편하게 대할 때 오히려 방이숙은 천재용을 의식하게 된다.
방장군(곽동연 분)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대사 외우는 머리와 공부 외우는 머리는 다르다. 역사상 위인의 이름은 못외워도 그 위인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이름은 외우고 있다. 얼굴 잘생기고, 연기도 어느 정도 되고, 무엇보다 4촌형수가 유능한 드라마 제작PD다. 연예계쪽으로 갈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일 줄은 몰랐다. 윤빈(김원준 분)을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윤빈 역시 방장군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잘 나가고 있다. 방일숙이 그의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
과연 좋아서만 가족인가? 태어나서만 가족이 아니다. 낳아서도 가족이 아니다. 가족이란 시간이다. 서사다. 비록 피가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가족으로서 함께한 시간들이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듯. 마참가지로 가족이 아니었던 시간이 그들을 가족이 아니게 한다. 과연 방귀남과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그에게 가족인가? 단지 가족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방귀남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비로소 가족이 되어가려 한다. 엄청애와 장양실 사이에 깊은 골과 깎아지른 높은 절벽이 생겼다. 그리 예상한다. 방말숙과 방귀남의 사이에는 30년의 공백을 허물어뜨릴 균열이 자라나고 있다. 마음놓고 서로 미워하고 원망한다. 다투고 부딪힌다. 다른 의미에서 방말숙도 차윤희를 의지하고 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한다. 동생과 다투던 시간들과 함께. 무엇이 가족을 증명하는가?
결국은 화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가족이다. 최소한 장양실의 미안함은 진실이다. 엄청애의 미안함 또한 진실이다. 어렵기는 할 것이다. 가족을 잃고 난 절망과 고통을 엄청애는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는 장양실 차례다. 쉬우면 그것이 용서가 아닐 것이다. 지혜를 빌려본다. 재미있을 것이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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