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조조가 그리 말했었다. 아버지의 친구이던 여백사와 그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서 당시 동행하던 진궁에게 그같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도록 하지는 않겠다."
그 말에 진궁은 조조에게 실망하고 떠나가지만, 그러나 굳이 조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있는 이기심이 아닐까?
고옥(심이영 분)의 친어머니가 방정배(김상호 분)를 찾아왔다. 장모라 부르지 말란다. 그런 딸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방정배가 말한다. 그러면 남이지 않은가. 표정이 바뀐다.
나는 가족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나를 버릴 수 없다. 나는 자식을 버릴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없다. 어쩌면 그동안 그토록 지독스럽게 자신의 딸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딸인 고옥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남남구(김형범 분)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가 먼저 버렸다. 자기가 먼저 배신하고 외면했다. 아내 모르게 바람을 폈고, 바람핀 사실을 들키자 오히려 당당하게 먼저 이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고.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자고. 그런데 이제 와서 방일숙(양정아 분)의 남편을 자처하며 그녀의 일상을 멋대로 헤집고 다닌다. 이혼했지만 자기의 딸 민지의 엄마다. 그러니 딸을 위해서라도 자기가 그녀의 삶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
얼마나 뻔뻔한가?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손톱밑에 박힌 가시가 수천수만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 쓰나미보다 더 무섭다. 어디선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당장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음식을 먹지도 않고 내다버린다.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따위. 당연히 친구이고, 연인이고, 동료라면 입장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하물며 가족이라면 부모의 옷에 묻은 먼지가 원망스럽고, 내 자식 먹을 것을 위해 심지어 내가 먹을 것마저 덜어낸다. 이기적인데 그 이기의 대상이 확장되어가는 것이다. 다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고옥의 어머니에게 이기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딸조차 아니다. 사위는 물론 아니다. 외손주는 모르겠다. 외손자인 방장군(곽동연 분)을 보며 표정이 크게 흔들린다. 지금의 삶을 위해 딸따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지금의 풍요와 안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딸이란 아예 없는 것과도 같다. 과연 지금의 가족들에게는 가족으로서의 정이나 의리같은 것이 남아있기나 할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가족에 대해서조차 이익을 구한다. 이익이 되기에 가족이며, 이익이 되지 않으니 가족이 아니다. 자신이 내미는 돈을 받지 않으려는 방정배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도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이 아니기에는 고옥이 너무 슬프다.
그에 비하면 장양실(나영희 분)은 지나칠 정도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과연 의도한 것인가는 알 수 없다. 과연 알면서도 방귀남(유준상 분)을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인가? 방귀남의 기억이 의혹을 더한다. 하지만 설사 의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죄를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 노력하려 한다. 며느리로써. 손아랫동서로써. 제수로써.
가족이란 짐을 쌓아가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모두가 빚이다. 내게 잘해줘서 빚이고, 내가 잘못해서 빚이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자식들 또한 부모에게 빚이 있다. 그래서 가엾고, 그래서 미안하다.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고맙다. 그래서 장양실은 무거운 짐을 지고, 그래서 더욱 가족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최소한 그녀의 이기에는 자신의 가족만이 아닌 남편의 가족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독이 된다.
미안해서 이혼한 사실도 밝히지 못하고, 혹시나 폐를 끼칠까봐 서로 좋아하면서도 헤어지고, 하지만 사실 그런 정도는 얼마든지 폐를 끼쳐도 좋을 때 진정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차세중(김용희 분)의 말처럼 때로는 시시비비나 손익을 따지지 않고 미안하다, 고맙다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일 것이다. 당장은 원망하고 탓하더라도 결국에는 이해하고 용서한다. 아니 오히려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차세광(강민혁 분)은 누나 차윤희(김남주 분)를 무서워하고, 그러면 방일숙은 무엇 때문에 이혼한 사실을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무서워하고 꺼려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눅들어 있던 그녀의 모습에 단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아니까 방말숙(오연서 분)도 차세광과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독하게 더 얄밉게 마음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런 방말숙을 보는 차세광의 마음도 부담스럽다. 오기다. 하지만 배려다. 대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그렇게 엇갈린다. 모두를 위할 수 없기에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게 서로 엇갈리고 만다. 대부분의 비극이란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방말숙과 차세광의 사이는 과연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은 아직 너무 젊다.
하필 천재용(이희준 분)이 방이숙(조윤희 분)의 오빠 방귀남에게 제대로 밉보이고 말았다. 차윤희를 첫사랑이라 말한 것부터 방귀남에게는 그다지 좋은 감정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동생이란 밤을 지샌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의 동생과 밖에서 함께 밤을 지새고 있었다. 걱정으로 아버지와 자신이 잠도 못자고 밤새 기다렸다. 모든 남자에게 마침내는 뛰어넘어야 할 적, 여자친구의 아빠와 오빠가 적의를 가지고 등장한다. 천재용은 이들의 허들을 넘을 수 있을까?
방이숙의 열등감을 제대로 자극하고 말았다. 내탓이다. 나때문이다. 한규현(강동호 분)이 청혼하려는 순간에도 그녀는 한규현의 결혼이 자신 때문에 깨진 것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속성이다. 그녀의 성실함에는 그녀 안에 내재된 죄의식이 있다. 조금의 나태함도 그녀는 견뎌하지 못한다. 누군가에 기대하고 기대는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렇게 길러졌다. 너때문에 오빠를 잃어버렸다. 네가 태어난 때문에 오빠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불행해지고 말았다. 그러니 멋대로 행복해지려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런 방이숙 앞에 천재용이 방이숙으로 인해 앓아누웠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때문에. 자기로 인해. 흔들리고 만다.
모두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다. 병을 얻고 그 병을 치유하며 살아간다. 병을 얻고 그 병을 앓으며 그 병과 함께 살아간다. 한 아이를 잃었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아이로 인해 한 가족의 30년이 바뀌었다. 그 사이 아이들의 삶 또한 바뀌었다. 방일숙의 열등감과 방이숙의 죄악감, 그리고 방말숙의 상처, 방귀남도 아주 멀쩡하지는 않다. 가끔 차윤희가 실수로 흘리는 과거 이야기에 그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착한 것도 때로 병이다. 자기에 엄격하다. 자기에 엄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박이다. 혹시 아닐까?
모성본능과 같은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한다. 입양이란 그렇게 쉽게 충동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결정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고양이는 길에 버리면 되지만 사람은 어디다 버려야 할까? 버려진 아이들은 야생으로 돌아가 다른 이들을 상처입히는 야수가 되어 버린다. 자기 상처도 감당하지 못하는 슬픈 짐승들이다. 버려지지 못한 채 버려진다. 물론 차윤희는 현명하니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차윤희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만 보면 그렇다.
바람이 불고 있다. 방일숙이게는 여문 바람이다. 방이숙에게는 한여름 봄내나는 훈풍이다. 방말숙은 여전히 혼돈속에 있다. 거칠게 부는 만큼 잦아들 때를 기다린다. 자신도 주위도 모두 상처입히고 만다. 차윤희에게 부는 바람은 무엇일까? 방귀남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너무 평온하다. 할머니(강부자 분)가 장양실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엄청애가 모르도록 감추려 한다. 누구보다 방일숙을 인정하는 것은 가수 윤빈(김원준 분)이다. 엄보애(유지인 분)와 엄순애(양희경 분) 두 이모가 방일숙의 이혼사실을 알았다.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족으로 태어나서도 가족이다. 가족으로 만났어도 가족이다. 가족이 되고자 노력했기에 비로소 가족이 된다. 천륜과 인륜이다. 하늘의 도리와 사람의 도리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의 도리가 지배한다. 가족이 된다. 가족이 아니게 된다. 하나의 가족이 남이 되고, 다시 하나의 가족이 남에서 가족이 되려 한다. 가족 안에서 의심이 생기고 증오가 생긴다. 그러면서도 용서하고 화해한다. 가족을 위해 화를 내고 슬퍼한다.
가족드라마가 갖는 의미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의미다. 가족이 모두 모여 보는 시간대다.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이 그 가운데 있다. 평범하면서도 깊다. 단순하면서도 세심하다. 가족이 된다. 그 의미를 생각한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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