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인지 모른다. 어려서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산은 어째서 이리도 높으며, 강은 어쩌면 이렇게나 넓은가? 그러나 알고 보니 동네 뒷산이었고, 마을앞 개울이었다.
비키니만 보아도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어릴적 수컷인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비키니 입은 여성들과 스치고 지난다.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어느새 무디어지면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선다. 그조차 이제는 지겹다. 설렘도, 두근거림도, 은밀한 짜릿함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 산은 그대로 산이고, 물은 그래도 물이다. 하지만 산은 하나가 아니고, 물 또한 하나가 아니다. 더 크고 높은 산을 보고 더 넓고 깊은 물을 보다 보면 어느샌가 그리 높던 산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한다. 산이 하찮아진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하찮아진 것이다. 그렇게 감성은 마모되고 감동은 메말라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래서 재미가 없다.
한 번이면 족했다. 그나마 처음 합창단 미션을 할 때는 오디션은 그저 오디션일 뿐이었다. 합창단을 꾸리고 나서 연습을 통해 발전하고 단합해가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지, 처음부터 감동을 의도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눈물은 신선했고, 놀라웠고, 그리고 감동적이었다. 첫경험이란 그렇게 짜릿한 것이다.
두 번째도 그런 점에서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한 번이면 됐지 다시 합창단이냐며 삐딱한 눈으로 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예 오디션 단계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노골적인 의도는 차마 필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마치 기습을 당한 듯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한 눈물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음악이란 이리도 순수하고, 사람이란 이리도 아름다워서 슬플 수도 있구나. 아마 필자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으로 보다가 흐르는 눈물에 휩쓸리고 만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번이 세번째다. 이미 두번째에서도 오디션이 끝나고 합창단이 구성되어 연습에 들어가자 처음의 내용과 반복되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오디션에서의 충격과 감동에도 불구하고 정작 연습을 시작하면서 시청률이 정체되거나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을 말해준다. 어차피 합창단을 꾸려 연습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은 각각의 구성원의 특성이 다르다고 크게 달라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오디션 과정에서부터 작년과 마찬가지로 시청자의 눈물을 쥐어짜려는 의도를 드러내보이고 있다.
어쩌면 현대의 미디어 자체가 감동과잉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거칠어져 있기에. 메말라 있기에. 무엇보다 외롭기 때문에. 그래서 감동을 바라고, 그같은 감동에 익숙해지면 더 큰 감동을 요구하게 된다. 아예 그런 것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마저 존재한다. 합창단은 신선했지만 그러나 이제 합창단조차 익숙해 있다. 어디선가 한 번은 보고 들은 듯한 감동이란 식상함 이상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부척 아프고 힘든 사연이겠지만 지금 필자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인 것이다. 필자 자신이 예능프로그램으로서 <남자의 자격>에 기대하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것도 있다.
가슴아프다. 울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찡한 감동이 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지금 필자가 보고 있는 것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일요일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도 한 번 했었다. 재작년에도 한 번 했었다. 그것을 굳이 지금 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다시 반복할 이유란 어디에 있는가? 비슷한 포맷과 비슷한 구성, 그리고 비슷한 내용들, 지루해진다. 지겨워진다. 개인의 사연과는 다른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이다.
물론 그럼에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으니 감동받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바로 그 감동을 기대하고 TV앞에 앉아 채널을 고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디션이 끝나면 어쩌려는가? 오디션이 끝나고 연습을 시작하면 그때는 과연 무엇으로 차별성을 주려는가? 작년처럼 어디 합창단을 이끌고 위문공연이라도 갈까? 최악이었다. 합창대회에 출전했어도 이미 지나치게 노출된 탓에 감동은 전만 못했으니. 아무리 좋은 노래도 여러번 반복해 듣다 보면 질리게 된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사설이 너무 길다.
역시 우려한 대로였다. 눈과 귀로는 감동을 받는데 가슴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머리는 더욱 차갑게 지겨워하고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아예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하고 만든 프로그램이었다면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어째서 매년 시청자들은 이와 같은 뻔한 패턴의 감동을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보아야 하는가? <남자의 자격>을 사랑하기에 그로부터 기대하는 재미와 감동이라느 것도 있을 텐데도. <남자의 자격>을 보고자 하는데 그곳에 <남자의 자격>은 없었다.
아직은 지켜본다. 오디션 참가자들의 사연 자체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만 <남자의 자격>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 <남자의 자격>을 본다는 생각만 잊는다면 충분히 감동적이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남자의 자격>을 보려 한다. <남자의 자격>를 리뷰해 왔다. 안타깝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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