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 현실보다 더 행복한, 그래서 시월드는 영원하다!

까칠부 2012. 9. 10. 10:21

시댁과의 관계로 고민하는 지인이 드라마에 대해 필자에게 들려준 촌평이다.

 

"차윤희는 단지 시댁에 자신의 모든 몸과 마음을 바쳤을 뿐이다. 그런데도 욕먹는다."

 

확실히 국영방송인 KBS에서, 그것도 주말 가족시간대에 방영하는 가족드라마라 할 것이다. 시작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시댁과의 관계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이더니만, 결국은 전통의 관습과 상식에 타협하고 만다. 정확히는 투항이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달라지기는 달라졌다. 바로 차윤희(김남주 분)가 달라졌다. 그토록 시댁이라 하면 질색을 하더니만 그것도 할 만하다 스스로 긍정하고 만다. 지레 두려워하거나 거부할 필요 없이 실제로 겪어 보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윤희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비현실적인 남편 방귀남(유준상 분)과 자신의 남다른 사회적 지위와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 그녀가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전업주부였다면 어땠을까?

 

임신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임신과 관련한 여러 부당한 처우나 모순된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딪히려 하지 않았었다. 현실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고, 그를 위해 싸우려 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순응하며 기회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차윤희를 대신해 그녀의 일을 맡게 된 다른 PD들이 그녀보다 뛰어나거나 최소한 버금가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차윤희는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있었을까? 차윤희만한 실력이 없으면 임신도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실력으로써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차윤희는 연설하듯, 선동하듯 임신한 여성에 대한 배려를 이야기한다. 흔히 하는 이야기다. 먼저 실력을 인정받고 그 다음에 권리를 주장하라. 실력이 없다면 권리도 없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권리 또한 주장할 수 없다. 전형적인 보수의 논리일 것이다.

겪어보면 괜찮다. 다 지나고 보면 괜찮아진다. 자기가 문제다. 자신의 품성과 실력이 문제다. 인격과 역량이 충분히 받쳐주는가 먼저 고민하고 고려해야 한다. 드라마의 주제도 그렇다. 최소한 차윤희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그렇다. 스스로 주장하고 부딪혀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배려하며 인정해 줄 때까지 견디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 불편하다. 시월드를 현실에서 실제 경험하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는 그런 차윤희의 모습이란 현실에 순응하라는 강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처음부터 KBS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갈등은 봉합을 위한 수순이다. 결별은 화해를 위한 전제다. 결국 모두 화해한다. 모든 문제와 갈등들이 봉합된다. 세상은 아름답다.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런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다. 처음의 발칙하고 되바라진 차윤희가 너무 좋았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사람이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 되면 꿈은 악몽이 된다. 시댁과의 갈등이 그토록 첨예한데 이해라라, 포용하라, 화해하라, 차라리 그것은 저주와도 같다. 그것이 강요처럼 비춰지면 더 그렇다. 말미의 차윤희의 말이나 행동은 차라리 연설에 가깝다. 드라마라기보다 캠페인에 가까웠다. 동의할 때는 재미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불편한 것이 없다.

 

많이 아쉽다. 후반들어 힘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단지 필자와 드라마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서로 맞지 않았던 탓인지 모른다. 가족시간대 드라마라면 편안함을 추구한다.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라면 원만한 것이 더 유리하다. 그들은 프로였고, 필자는 단지 시청자에 불과했다. 그래도 잘 만든 드라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해피엔드가 너무 진하다. 모두가 너무 잘되고 너무 행복하다. 드라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랫동안 드라마를 너무나 진지하게 집중해서 몰입하며 보고 있었다. 이제 현실로 돌아온다. 드라마가 아닌 불편한 현실로.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미련은 없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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