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그저 곧게 자라려 할 뿐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추위가 몰아치고, 그늘이 볕을 막으며, 어느새 앞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장애물이 막아선다. 나뭇가지가 한 쪽으로만 자란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나무가 편향되어서가 아니라 매서운 바람이 그리 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 그것을 신기하다고 아름답다고 여기며 일부러 나무를 비뚜러 자라도록 한다.
어째서 의사는 의사인 채로만 있을 수 없는가? 하기는 모든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한결같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내 일만 잘하고 싶다. 내가 맡은 일만을 오로지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나 주위에서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인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란 어쩌면 그같은 거대한 구조 속에 너무나 작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진료란 의사의 고유영역이다. 오로지 의료인만이 환자를 진찰하고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처방전을 쓰고 치료의 방법을 결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대학에서 배우고, 다시 인턴으로, 레지던트로 긴 수련기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사람의 의사로서 제대로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그 위에 보건복지부가 정한 규정이 존재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정한 지침이 존재한다. 원칙과 규칙을 내세우며 의사의 치료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려 한다. 의사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통쾌하기도 했다. 의사가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처방이다. 만의 하나의 가능성까지 생각해서 환자를 위해 자기가 의사로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동원해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원칙과 규정이라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 버린다. 그는 공무원이고 병원과 의사와 관련한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자신을 치료하는데 그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검사받고 허락받아야 한다. 의사가 아닌 자신이 의사의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방법과 내용을 결정한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떠하던가?
병원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실존적 물음이 아닌 상대적 확인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모두가 그것을 갖지는 못한다. 그것을 누가 과연 주도적으로 나누고 갖는가? 바로 그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기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줄 수 있다. 그것은 영향력이라는 이름이 되어 돌아온다. 지배력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누구나 탐내는 것이다.
그것을 약속하는 사람이 있다. 충분히 그것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다. 그 또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영향력을 확보하고 지배력을 행사한다. 유혹은 의사를 인간으로 되돌리고, 의사로서의 본분마저 잊게 만든다. 중증외상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결국 눈앞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대의를 외면하고 만다. 의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의사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사를 흔든다. 과장들이 속물이 되어가는 이유가 있다. 과장들도 자신의 과를 위해 병실과 인력과 수술실이 필요하다. 의사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것을 스스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환자만 치료하는 의사란 바보같이 느껴진다. 굳이 의사로서 자신의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할 필요가 있는가? 공무원에 묻는다. 관계기관에 묻는다. 혹은 병원의 윗선에 물어본다. 그리고 허락이 떨어지면 그때 주어진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바를 한다. 환자를 살리려 해도, 설사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된다. 인턴으로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모하게 산모의 배를 갈랐던 이민우(이선균 분)의 한 마디는 그같은 지독한 현실의 역설을 들려준다. 환자를 살리려 한 것이 죄가 되었다.
결국은 말한 관계 그 자체일 것이다. 그것을 달리 정치라 부른다. 정치와 통하는 말이 관료주의다. 관료주의란 다시 권위주의로 이어진다. 전문성을 갖는 권위에 의해 강제된 원칙과 규정에 따라 모든 것이 규정되어진다. 의사는 그 안에 존재하는 한 부속에 불과하다. 최인혁(이성민 분)이 비난을 듣는 이유이며, 이민우가 인턴답지 않은 이유다. 권위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스스로 그 권력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비단 해운대세중병원이라고 하는 특별한 공간의 일만이 아닌 일상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실의 일부다. 아마 직업을 가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동의할 것이다. 어째서 세상은 나로 하여금 일만 열심히 하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가?
단지 능력있고 일만 열심히 잘하면 된다. 거짓말이다. 나이가 몇 살이고, 누구와 무슨 관계이고, 그리고 어떻게 그 관계를 꾸려갈 것인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단점이 된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런 것은 한 번도 보인 적 없다.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직 어리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 그렇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민우가 인턴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해야만 했던 최선조차 인정받지 못했듯 강재인(황정음 분) 역시 그녀의 의지나 열정, 능력 무엇도 인정받기 위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과연 아직 미약하기만 한 그들이 그같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 어떻게 부딪히며 자신을 완성해 갈 것인가?
병원 또한 사람이 사는 이 사회의 일부라는 것이다. 의사 또한 가운을 벗으면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아니 가운을 입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인간이다. 그들로 하여금 인간이기를 강요한다. 의사이기보다, 의사로서의 존엄이나 양심보다 한 인간으로서 사회와 조직에 순응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길들여진다. 의사만이 아니다. 또다른 현실이다.
의도했을 것이다. 이민우가 마주하는 보건복지부 심사평가원 직원과 강재인이 마주한 병원내 정치의 현실이란. 그러나 다행히 심평원 직원은 오히려 자신이 원칙을 내세워 강제한 치료로 인해 중태에 빠지고, 강재인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가운데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며 아이를 살리려 한 이유를 설명하는 이민우에게 그 답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노력할 것이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려 할 것이다. 설마 드라마가 모두의 안타까움과 탄식 속에 끝나는 배드엔딩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믿는다.
굳이 필자가 악역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는 해운대세중병원 외과 과장들에 대해 탓하는 내용의 글을 쓰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배경만 다를 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라는 것을 안다. 의사의 가운만 입고 있을 뿐 그들 또한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개인들이다.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고, 그렇게 살도록 배우고 훈련된 무수한 군상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안다.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헬리콥터를 지원하면서 예산을 이유로 소형헬리콥터를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헬리콥터를 지원하는 병원도 따라서 보다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는 병원이 아닌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2차병원들이다. 현장의 필요가 아닌 책상머리의 이해관계로써 결정된다. 필요한 곳이 아닌 책상머리에서 필요하다고 여긴 곳으로 보내진다. 과연 그런 구조 아래에서 의사가 의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차라리 의사로서보다 인간으로서 이기를 고집하고 욕망을 탐할 때 모두를 위해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지독스런 부조리극일 것이다. 단지 병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병원을 무대로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를 이야기하려 한다. 세상을 이야기하려 한다. 근본은 사람이다. 사람이 디테일하게 살아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치밀하게 어우러져 그려진다. 주인공들이 빛나는 이유다. 그들은 아직 작다. 그리고 약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모순이지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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