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강력한 권력이 존재해서 힘으로라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억누른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에는 그쪽이 오히려 더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때 필자가 돌려준 대답이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개인이 휘두르는 폭력과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 둘 중 무엇이 낫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항상 개인을 감시하고, 끊임없이 공포로써 위협하며, 마침내는 폭력으로 응징하려 한다. 개인은 단지 국가로부터 가해지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억압하려 할 뿐이다. 조직폭력배가 무서워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삶과 국가권력이 무서워 항상 살피고 꺼려해야 하는 삶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하필 하수인으로 조직폭력배인 허학범이 동원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는 공권력이 직접 모든 일을 처리했다. 납치와 연행은 동의어였다. 영장도 필요없었다. 법이고 절차고 전혀 상관없었다. 구금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구금 과정에서의 폭행과 가혹행위는 소통을 위한 사소한 노력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들이 공권력에 의해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지고 있었다.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드라마는 그래서 상당히 상징적으로 당시의 사실들을 재구성한다. 하수인은 조직폭력배였다. 그 배후에는 정치에 입문해서 국회의원으로 상당한 커리어를 쌓게 되는 검사 유영길이 있었다. 그 가운데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을 그것을 실제 집행한 국가기관 뿐이었다. 진정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폭력의 논리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를 억압한다.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정치권력 역시 이제는 위치와 모습을 바꾼 채 아직까지 모두의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없다. 한 가지 선택에 의해 빠진 조각만이 존재할 뿐.
그렇게 길들여진 군상들이었다. 스스로 폭력의 논리에 물들고, 그 모순적 쾌락에 빠져들어간다. 이제는 그렇게밖에는 달리 생각할수도 행동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실제 고문을 자행한 경찰 공두언이나, 그에게 고문을 당하고 간첩이 되어야 했던 형제의 자식들이나. 죽고 죽인다. 죽이고 죽는다. 그리고 그같은 참혹한 비극의 이면에는 그같은 폭력의 논리를 답습하는 부장이 있었다. 불리할 때는 머리를 감추고 엎드려 있다가 기회가 오면 고개를 치켜들고 문다. 그의 처세술일 것이다. 국회의원 유영길은 자식의 죽음조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한다. 허학범은 잔혹한 폭력으로써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다. 도대체 그 오래전 과거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과거가 현재로 이어진다. 과거가 현재에도 반복된다. 그것이 현재의 검경합동특수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폭력에 익숙한 유정인(이영아 분)과 폭력이 일상인 황순범(이원종 분),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항상 소외당하는 최동만(김주영 분), 주인공 민태연(연정훈 분)은 아예 사람조차 아니다. 과거 최고의 권력자와 얽힌 흡혈귀의 존재는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권력자를 살린 것은 흡혈귀의 피이고, 그 피는 그의 측근마저도 몰라보게 만든다. 그야말로 적과 아군이 따로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일 것이다.
잔인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슬펐다. 부모에게 맞으며 자란 아이는 때리고 맞는 것으로 밖에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때리도록 강요받으며 자란 아이나, 맞을 것을 강제당하며 자란 아이나, 그렇게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 딸을 죽인다. 부모를 대신해 그 자식들에게 복수한다. 폭력은 유전된다. 부모가 지은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부모세대의 죄가 현재의 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뱀파이어가 갖는 의미일 것이다. 뱀파이어는 피를 마신다. 어둠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다. 민태연을 주인공이게 하는 것도 그같은 무소불위의 폭력일 것이다. 다른 종류의 폭력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다. 전혀 유쾌하지 않다. 깔금하지도 않다. 진하고 끈적한 것이 남아 내내 불쾌하게 만든다. 거울을 보기가 두렵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코미디가 아니다. 평범한 어민이 어느날 갑자기 간첩이 되고, 무고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간첩으로 전락해 그 가족마저 불행에 빠뜨린다. 피해자를 살해한 살인범은 영웅이 되어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영화를 누린다. 오래전 일이었을까? 그때 태어난 이들이 이제 겨우 불혹을 넘기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당시 관련자들이 당당히 생존해 있다. 드라마는 오히려 실제의 사건을 부드럽게 순화해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더 무거워졌다. 더 진중해졌다. 그러면서도 더 정교해졌다. 무엇보다 멋있어졌다. 민태연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나, 유정인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그들의 캐릭터를 강조시켜준다. 시즌1에서는 어수룩한 면이 있었던 유정인이 더 과격해지고 더 살벌해졌다. 캐릭터도 그만큼 분명해졌다. 이들을 보고 싶었다.
돌아온 시즌2의 첫회치고는 묵직한 일격이었다. 놀랐고, 당황했고, 멍해졌다. 그러면서도 제 3자가 되어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몰입하지 않는다. 이입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동정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무섭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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