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타임 - 이민우와 강재인, 두 사람이 주인공인 이유...

까칠부 2012. 9. 11. 10:05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서 필자 역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을 무척 혐오하는 편이다. 정치란 어떤 보편의 당위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모두를 위한다. 그 말은 곧 누구도 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권자인 자신조차 국민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모두가 양보하는 가운데 정작 그 모든 것을 가져가는 이는 누구일까?

 

그래서 투표도 대충한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자기와 상관없으니까. 자기와 상관없이 자기를 위해줄 것이라 믿으니까. 모두가 자신이라 생각한다. 모두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막연하게 기대하고 막연하게 투표한다. 때로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요구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자신을 위한 정치를. 자신은 아무것도 않으면서.

 

그러는 한 편으로 적극적으로 자기의 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란 수단에 불과하다. 투표란 자기의 이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고하다. 표를 무기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 스스로 직접 나서서 여론을 만들고 대중을 선동함으로써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 투표를 포기하기는 커녕 자기가 바라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기회와 재화를 선거에 쏟아붓는다. 자원봉사자가 되어 직접 당선을 위해 돕기도 하고, 지갑을 열어 정치자금도 기부한다. 여론을 만들기 위한 기고 등의 활동은 물론이다. 과연 현실은 누구의 손을 들어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를 허락할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는 겸손과 내가 아니면 안된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오만 가운데 현실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모두를 위해 자기가 양보하고 희생하는 선량한 사람과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모두를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기만을 추구하는 사람 가운데 현실은 누구에게 더 가까울까?

 

민주주의라는 말의 원래 뜻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곧 주인이 되는 체제일 것이다. 주인이란 무엇인가? 남이 자기 밭에 들어와 농작물을 거두어가는데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주인인가? 누군가 자기 고양이를 발로 걷어차고 몽둥이로 때리는데 배려한다며 그저 보고만 있는 것이 주인일 것인가? 소유란 배타적인 것이다. 바로 그 배타성으로부터 소유란 성립된다. 누구의 것이어도 상관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누구의 것이어도 상관없는 주권이란 자신의 것일 수 없다.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일까?

 

묘하게도 드라마는 의학드라마이면서, 더구나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어느 정치드라마보다 더 치열하고 극명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갈파하여 들려주고 있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당신의 삶에 있어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누구의 것이기에 당신의 삶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려 하는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당신,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것도 바로 당신이다. 그 책임을 더욱 탐욕스럽게 빼앗거나 훔쳐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책임이란 곧 주인의 증거다.

 

책임이란 가장 첨예한 이기일 것이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이야 말로 온전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증거다.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따른 책임을 지려 한다면 그것은 그가 의사라는 증거일 것이다. 의사이기에 사람을 살리려 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지려 한다. 인턴나부랭이가, 그것도 사람의 배를 갈라본 경험이란 고작 한 번이 다이면서, 그럼에도 아무도 안도와주더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환자의 배를 가르고 자궁을 열어 아이를 꺼낸다. 모두가 기함하는 일을 그는 너무나 태연히 해내고 있었다. 당연히 해내야 하는 일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환자의 상태나, 병원의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나, 아마 이민우(이선균 분)의 머릿속에는 아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강재인(황정음 분)이 자신의 결심을 확인하려 이민우에게 묻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자신은 없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고, 하게 될 것이라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고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응급외과에서 최인혁(이성민 분)을 가까이에서 겪으면서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절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중증외상환자를 책임지게 될 외상외과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던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나자 외상외과에 대한 견제와 압박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돈이 되지 않는 탓에 병원내 정치에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외상외과로서는 든든한 후원자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던 때문이었다. 이사장대리를 맡는다면 자신이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외상외과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수 있다.

 

물론 이기적인 생각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사장을 한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사장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사장이 되어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다. 하다못해 돈을 벌고 싶다.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모두가 이유가 된다. 다만 누구의 이유가 더 절실하고, 누구의 목적이 더 간절한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강재인에게는 이사장의 손녀라는 명분과 이사장의 유언장이라는 대의가 모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기와 이타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 또한 자신이다. 자아다. 이기를 추구한다. 의사로서 이기를 추구하고, 병원행정가로서 이기를 추구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이기가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이타가 된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서 물러나는 이타는 오히려 살릴 수 있는 사람마저 살리지 못하는 이기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란 그것이 목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 모두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탐욕스럽게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인공인 이유다. 아무리 최인혁의 존재감이 대단해도 결국 이민우와 강재인이 드라마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주인이었으니까. 스스로 주인이고자 하고 있었으니까. 방관자가 아닌, 단지 주어진 것만을 누리고 받아들이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모두의 앞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고 있다.

 

의학드라마의 형식을 빌어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외상외과라는 전장을 통해서.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오가는 극단의 현장을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두 사람을 통해서. 주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기로써 이타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특히 정치적인 부분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이 사회의 주인이며 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유권자로서 스스로 참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이 본질이다. 내가 하고자 해서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리 한다. 나중이라고 달라질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서 더 좋아지게 될까?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 그리고 자신.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이 국민이 - 아니 시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주체로써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뜻인 것이다.

 

아니 정치가 아니라도 그렇다. 공동체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란. 자신의 책임이란. 그러나 그것은 보다 극명한, 그리고 지독스럴 정도로 선명한 이기일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저처럼 이기적이지 못한가? 경험없는 인턴이기에 겁도 없이 이기적일 수 있었다. 경험 많은 의사라면 결코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모순을 본다.

 

이야기가 너무 깊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병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사람은 어디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뿌린다. 의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방심하고 있다가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하다. 아직도 정신이 멍하다. 아름다운 인간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좋은 드라마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분야이든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향기를 풍긴다면, 장르를 뛰어넘어 좋은 드라마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조금 더 현명해지게 한다. 지혜를 얻는다. 사람이 사는 지혜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다. 좋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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