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1997 - 형과 그리고 동생, 울다.

까칠부 2012. 9. 12. 10:25

원래 장남이란 아버지 대신이다. 그래서 가장이라 부른다.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장남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맛난 것과 멋진 새옷과 교육의 기회까지. 그리고 더불어 가족에 대한 책임도 지워진다.

 

형이란 그런 것이다. 아우는 형에게 대들 수 있다. 단지 버릇이 조금 없을 뿐이다. 그러나 형이 아우를 챙기지 않는다면 형으로서 형노릇을 못하는 것이다. 아우는 대들 수 있어도 형은 아우를 저버릴 수 없다. 하물며 당사자의 선택이 그러한데 형으로서 무얼 어찌할 수 있을까?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접고 안정된 교사의 길을 선택했던 형이다. 설사 성시원(정은지 분)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하더라도 동생인 윤윤제(서인국 분)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윤태웅(송종호 분)은 윤윤제가 그러했듯 자신의 마음을 접으려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시원마저 윤윤제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한다.

 

한국사회에서의 전통적인 형과 동생의 관계를 전형적으로 정감있게 그리고 있다고나 할까? 형이기에 윤태웅은 기꺼이 자신의 감정을 접고 동생과 동생의 새로운 연인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준다. 윤윤제는 끝내 성시원에 대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형과 맞설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 순간 성시원의 아버지 성동일(성동일 분)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사이의 사소한 일화가 평행해 들려진다. 질투많던 아우와 그런 아우에 대해 아버지처럼 책임을 다하려던 형, 그리고 현재의 윤태웅과 윤윤제의 모습이 교차하며 보여진다. 사이좋은 형제다.

 

어쩌면 윤윤제가 가진 스펙에 비해 한심스럽고 유치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등이 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철이 없다. 조심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른다. 소신있고 강직하다는 평가는 아직까지 주위와 어우러질 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아직 어른이 덜 되었다는 뜻이다. 차는 고물이어도 그보다는 그에게는 멋진 형이 있다.

 

그동안 윤윤제와 성시원의 닿을 듯 닿지 않는 아련한 순정만화와도 같은 관계를 그리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윤윤제와 형 윤태웅과의 절절한 형제의 정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시원과 윤윤제를 위한 마지막 키워드였을 테니까. 서로 닿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껄끄러운 앙금과 같은 것이다. 눈물과 함께 윤윤제는 동생답게 그 짐을 덜어버린다. 성시원은 원래 그런 것에 크게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다.

 

아무튼 고작 형제가 같은 여자를 사랑했고, 형의 양보로 동생이 사랑을 이루었다. 뻔한 이야기다. 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택은 여자가 했다. 성시원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참으로 맛깔나게 그려지고 있다. 오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꾸미려 하지도 않고. 담담한 송종호와 서인국의 연기가 무채색의 연출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감정이 비치지 않는 화면이 그 진심을 더욱 직구로 전한다. 리얼버라이어티를 쓰고 감독한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을 새삼 더욱 강하게 한다.

 

이제 끝이다. 안타깝다. 처음부터 그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뒤늦게 알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서야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다니. 무심한 듯 진하게 전해지는 제작진의 의도가 항상 감탄스럽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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