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란 대개 서사와 묘사 둘로 이루어진다. 묘사는 다시 장면에 대한 묘사와 인물에 대한 묘사로 나뉜다. 서사냐, 연출이냐, 캐릭터냐 하는 것이 여기서 갈린다. 대부분의 작품은 이 셋 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된다. 서사를 중시하느냐, 장면설계와 연출에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캐릭터 및 설정에 보다 집중하느냐?
아무래도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이하 차칸남자)는 이 가운데 캐릭터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일 정도로 과장되어 있고 진부할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고작 한 번 환자의 증세를 알아맞춘 것 가지고 장래의 천재의사라며 추켜세운다. 모두가 가만히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나서서 묻는 것은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고, 교수가 다시 주인공에게 환자의 증세에 대해 묻는 것은 주인공이란 시험과 시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비교대상은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와 최첨단 의료기기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한 순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꿈과 미래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기는 나락이라 하기에도 뭣하다. 추락한 이후에도 그는 대단한 전문 꽃뱀마저 유혹해 넘어오게 만들 정도로 탁월한 매력을 발휘한다. 의사로서의 재능도 교수마저 놀랄 정도로 뛰어나고, 의사를 포기하고 난 뒤에도 남자로서 남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과연 과거의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의 삶에서 고민이라든가 고난이라든가 하는 그런 것들이 있기는 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다. 더구나 착하기까지 하다고 하니 완벽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비현실적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드라마라는 허구 안에서 현실적인 인물로 완성해야 한다.
두 가지다. 하나는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하거나. 아니면 비현실이 현실로 느껴지도록 아예 연기를 하지 않고 자연스런 자신을 보여주거나. 어차피 송중기(강마루 역)의 연기력에 크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채원(서은기 분)의 경우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거치면서 연기력이 크게 늘기는 했지만 아직은 과장된 자신을 연기하는데는 미숙함이 보인다. 마치 연기하는 것 같다. 드라마속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속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다. 그만큼 어색하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만 흐트리고 만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어야 했을 것이다. 송중기와 문채원 두 타이틀롤의 연기력에 대해. 그들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의 폭과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매력과 개성에 대해. 문채원에게 서은기란 너무 버겁고, 송중기에게 강마루란 그의 단점만을 강조해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도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만화같이 과장되어 정형화되어 있다. 보는 내내 강마루나 서은기라고 하는 극중 이름보다 송중기와 문채원이라고 하는 배우의 이름만을 되뇌이게 된 이유였다. 다만 <공주의 남자>에서 그랬듯이 드라마를 거치며 성장할 가능성은 있다. 송중기 역시 연기가 아주 안되는 배우는 아니기에 아직 지켜볼만한 여지는 있을 것이다.
전형적이다. 캐릭터도 전형적이지만 사건도 전형적이다.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꿈이 꺾인 채 방황하고, 다시 재회하고, 서은기의 캐릭터 역시 제멋대로 오만하고 거칠면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 딱 기획단계에서 보면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요소들의 조합이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가? 첫회는 어설프다. 연기도, 연출도, 그리고 내러티브도. 각자가 따로놀며 전혀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다.
불안한 출발이다. 하지만 캐릭터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 자신의 매력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배우의 매력이 그 상당부분을 대체한다. 지금과 같은 허술한 구조에서는 더욱 배우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송중기와 문채원은 누구나 인정하는 주연에 어울리는 매력을 가진 배우들이다. 역시 그것을 어떻게 살리는가에 달렸을 것이다.
뜬금없었다. 맥락없었다.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구조이고 구성이었다. 하지만 송중기는 매력있다. 문채원도 매력이 넘치는 배우다.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녹아들었을 때 그때의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조금만 더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온전히 그 모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드라마는 가치가 있다. 아쉽다. 아직은 많이 안타깝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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