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랑사또전 - 여전히 방향을 잃은, 그나마 사랑을 시작하다.

까칠부 2012. 9. 13. 09:52

감정이 튄다. 은오(이준기 분)와 아랑(신민아 분)의 사이가 뜬금없이 진전되기 시작한다. 흔한 라이벌이 등장하니 불타오르더라는 그런 설정일까? 주왈(연우진 분)이란 안타깝게도 은오와 아랑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촉매와 같은 역할일 것이다.

 

여전히 코미디는 강하다. 은오와 아랑, 그리고 돌쇠(권오중 분)와 방울(황보라 분)의 관계는 여전이 절로 웃음이 피식 나올 정도로 왁자하니 개구지다. 그러나 그런 한 편으로 최대감(김용건 분)과 홍련(강문영 분)을 중심으로 묵직한 호러스릴러의 분위기가 마음놓고 웃지 못하게 만든다. 도대체 옥황상제(유승호 분)와 염라대왕(박준규 분)가 쫓는 그 비밀이란 무엇인가?

 

좋게 풀면 훌륭한 역설의 대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서툴게 풀면 이도저도 아니게 균형을 잃고 만다. 정작 남자주인공인 은오는 아직까지도 드라마의 핵심을 이루는 그같은 비밀에 아주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정도다. 아랑조차도 그 중심에 있으면서 그 중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변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은오와 아랑을 보고 있을 때와 홍련을 보고 있을 때의 느낌이 전혀 이어지는 것 없이 괴리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들은 과연 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가? 드라마와 현실이 다른 것이 바로 목적성에 있다고 했을 때 주인공인 이들은 드라마의 목적에 충실하여 존재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무어라도 해야 했다. 사또로서 고을의 백성들의 송사를 봐주든, 아니면 어떤 중요한 공적 업무를 수행하든. 아니면 사적으로 백성들과 관계를 맺어보는 것도 좋다. 최대감의 심복에 의해 무고한 백성이 납치되오 고초를 겪듯, 그렇게 백성을 매개로 사또로써 자연스럽게 최대감과 그 배후에 있는 홍련에게 접근해간다. 홍련은 또한 은오가 그토록 찾고 있는 생모 서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기대가 긴장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지금 은오가 사또라고 하는 설정은 단지 은오와 아랑 사이의 헤프닝이 관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 이상은 없다.

 

지나치게 힘을 줬다. 은오와 아랑의 코미디에서 힘을 빼던가, 아니면 홍련과 옥황상제, 염라대왕의 관계에서 그 무게를 줄이던가. 너무 여러곳에 힘을 주니 중심이 그 힘을 감당하기에 버겁다. 흐트러진다. 어렴풋이 중심을 이루는 얼개는 보이는데 그것이 각각의 요소들을 꽉 잡아주지 못한다. 개별은 재미있지만 그것이 하나로 유기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욕심이 지나친 탓이다.

 

아무튼 시대배경을 유추해본다. 18세기 말일 것이다. 당시 서울을 중심으로 한 벌열의 양반들은 서얼에 대한 차별을 점차 완화해가고 있었다. 가부장적 질서가 강화되는 가운데 모계야 어찌되었든 서얼들 역시 자신의 자식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반면 서울의 벌열이 강화되는 가운데 지방의 산림은 점차 서울로부터 유리되고 있었고, 특히 이인좌의 난 이후 영남은 조선의 주류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어쩌면 은오의 생모가 역적의 자식이라 하는 것이 이와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여러해전 밀양 인근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것 역시 상당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19세기가 아니라는 것은 벌열이 서울을 중심으로 배타적으로 성리하면서 지방의 향반들이 더 이상 벌열출신의 지방관에게 도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 어차피 허구의 드라마다. 드라마속 배경이 실제의 조선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게 주장한 바도 없다. 단지 지금과 똑같은 밀양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조선과 유사한 배경 속에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도 그것은 역사속 조선이 아닐 것이다. 과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그러했듯이. 다만 재미일 것이다. 어떤 시대이기에 저토록 은오와 최대감은 첨예하게 대립하는가?

 

벌써 9회나 진행된 것 치고는 아직 드라마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은오에 이어 이제는 아랑의 역할마저 불명확하다. 도대체 드라마에서 그들이 주인공인 이유란 무엇인가? 그나마 이제는 어설픈 사랑놀음을 하고 있다. 차라리 홍련이 주인공인 것 같다.

 

기다림도 지쳐가고 있다. 지켜보고자 한 결심도 약해지고 있다. 처음이 좋았다. 처음의 왁자하고 발칙한 코미디의 분위기가 좋았다. 역시 욕심이 넘쳤다. 의욕은 넘치는데 현실이 따라와주지 않았다. 역량의 부족이거나. 아니면 여건의 문제이거나. 아쉽다. 안타깝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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