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개인과 드라마속 캐릭터가 다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목적성일 것이다. 현실의 개인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드라마 - 아니 거의 모든 창작물에서 캐릭터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어떤 과거를 가지고, 어떤 성격과 능려을 갖추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가.
은오(이준기 분)가 얼떨결에 사또가 된 것을 제외하고 그가 드라마 <아랑사또전>의 주인공으로 설정된 이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나마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듯하던 아랑(신민아 분)조차 어느새 은오와의 사랑놀음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있다. 그렇다고 은오와 아랑의 달콤한 사랑이야기라기에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어둡고 무겁다. 따로 논다.
주왈(연우진 분)의 위치가 우스워졌다. 호러와 스릴러의 장르에 있어 주왈은 악의 흑막의 측근이며 손발이었을 터다. 그러나 정작 아랑과 어울리면서는 고작 은오와 아랑 사이에 긴장이나 조장하는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조역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예 홍련(강문영 분)마저 주왈을 아랑에게로 떠민다. 그의 역할조차 호러스릴러에서의 홍련의 하수인이기보다 은오와 아랑 사이를 위한 촉매자로서나 존재한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옥황상제(유승호 분)와 염라대왕(박준규 분), 그리고 무영(한정수 분), 홍련, 더구나 홍련의 정체마저 밝혀지고 말았다. 무영의 여동생인 선녀 무연이다. 그녀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죽은 이들의 - 그것도 죄많은 이들의 영혼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아랑이 밝혀냈어야 하는 내용이 아랑과 은오가 서로 퓨전로맨틱코미디를 찍느라 정신없는 사이 아예 염라대왕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털어놓고 있었다. 드라마를 포기하고 서술과 설맹으로 채운다. 도대체 언제쯤에나 홍련과 아랑, 은오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맞서게 될까? 주인공이라면 역할이 있어야 하고 행동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지겹다. 사랑놀음도 한두번이다. 처음에는 그저 사랑이라도 하면 재미있겠다. 그러나 이제 홍련의 정체가 밝혀지는 와중에도 그들은 그저 한가롭게 서로에 대한 감정만을 드러내고 나누고 있을 뿐이다. 화가 날 정도다. 마치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촛불을 켜놓고 분위기를 잡고 있는 남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전장의 비장함을 그리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기보다 전쟁이 일어난 사실조차 잊고 있다. 더구나 여자는 군인이다.
무얼 보여주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은오이고 아랑인가는 더욱 모르겠다. <아랑사또전>이라는 제목은 홈페이지의 시놉시스만큼이나 이제는 의미없는 이름이다. 갈수록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데 그것이 흥미를 더하기보다는 번거럽고 귀찮기만 하다. 시청자도 어느새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있다.
아무튼 아무리 얼자라 해서 중인에 불과한 아전들이 무시할 수 있는가? 한낱 노비도 세도가의 노비가 되면 어지간한 양반을 우습게 아래로 본다. 최근 방영중인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무신>이 그렇게 행세하며 권력의 자리에 오른 노비출신의 김준을 모델로 하고 있을 것이다. 하물며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서얼에 대한 차별도 많이 약해져서 얼자라 해서 함부로 무시하고 막 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은오는 얼자지만 아버지의 호적에 오른 자식이다. 뒤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얼자라 해서 낮추어 보는가?
뿐만 아니다. 사대부의 길을 가지 못하는 서얼 대부분이 결국은 기술직을 선택했다. 허준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서얼 대부분은 그렇게 전문직으로 진출해 관련한 집안과 결혼을 하고 그쪽 집안의 성을 남겼다. 중인과 서얼은 사실상 대등하다 할 수 있다. 노비의 밭에서 났어도 그 씨가 양반가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단한 세도가의 씨다.
확실히 미니시리즈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니시리즈란 최소한 한 주 단위로 단락이 맺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드라마의 방향성과 상당한 상관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흐트러진 채로 기대는 사라진다. 어떤 큰 그림을 그리는가는 대충 보인다. 다만 필자가 보는 것은 그 큰 그림이 아닌 한 주 단위로 방송되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라는 것이다.
맨숭맨숭하다. 이제는 돌쇠(권오중 분)와 방울(황보라 분)의 어설픈 로맨스를 보면서도 우습기보다는 지겹기만 하다. 뜬금없고 맥락없다. 이유없고 개연성 없다. 따로 떨어져 흩어진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지는 벌써 오래다. 아쉽다. 미련이 마지막으로 붙잡는다. 오래지 않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64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뱀파이어 검사2 - 종교와 미신, 인간과 신과 죄가 만나다. (0) | 2012.09.17 |
---|---|
사랑과 전쟁2 - 폭력의 유전, 그 잔혹하면서도 불편한 진실... (0) | 2012.09.15 |
차칸남자 - 악하지 않은 악녀에 대해서... (0) | 2012.09.14 |
아랑사또전 - 여전히 방향을 잃은, 그나마 사랑을 시작하다. (0) | 2012.09.13 |
차칸남자 - 불안하고 진부한 출발, 그러나 가능성을 보다. (0) | 2012.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