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인지가 닿지 않는 상황을 맞으면 본능적으로 초월적 존재를 찾는다. 그리고 의지하려 한다. 이성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해해야 하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한다. 더 큰 우리가 불가능하다면 그때는 누군가 그것을 설명해주고 해결해줄 다른 대상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신이다. 인간의 이성이란 마치 신과 같이 전지전능과 무소불위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인간이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 종교와 미신일 것이다. 그를 통해서라도 이해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안정을 꾀할 수 있다. 역설이겠지만 이 또한 인간의 이성이 갖는 추상적 사유의 결과로써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와 미신은 무엇이 다른가? 신을 믿는 이가 신의 이름으로 죄를 저지른다. 신이 용서해 줄 것을 믿으며. 자신이 신을 숭배하는 만큼 신으로부터 보답을 받을 것을 굳게 믿으면서. 신이 자신을 사랑하여 무엇이든 베풀어 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정 신의 뜻이겠는가? 아니면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이겠는가?
범인인 대학교수는 마침내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인신을 공양하는 주술을 베풀 것을 사주한 무당마저 죽이고 있었다. 그는 무당을 공경하지 않았다. 당연히 무당이 섬기는 신도 숭배하지 않았다. 그가 숭배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식의 의사마저 무시한 채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륜도 천륜도 없다. 도덕도 정의도 없다. 아들의 이름을 빌어 아버지가 죄를 짓는다. 그것은 과연 아들의 뜻인가? 무당과 무당이 섬기는 신조차 자신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것은 자신 하나, 나머지는 단지 그를 위한 도구로서만 존재한다.
하기는 드라마의 경우만이겠는가? 사람은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신들을 만나고 그들을 섬기며 지낸다. 그것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이고, 지위와 명예, 혹은 권력과 같은 것일 터다. 국가와 민족, 정의와 가치, 신념, 아마 그것을 달리 우상이라 일컫기도 할 것이다. 믿고 의지하며 섬기는 대상이다. 그를 위해 때로 자신마저 잊고 저버리곤 한다. 아니 정확히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우상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사람을 속이고, 사람을 해하며, 심지어 수많은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우상의 이름으로써 빼앗는다. 결국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리 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속이려 할 테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이름을 빌리는 것 뿐이다. 아들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그를 위한 얼마나 훌륭한 핑계거리인가.
양심이 마비된다. 이성이 실종된다. 맡겨버리는 것이다. 거대한 우상에게.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대상에게. 그리고 자신은 죄의식을 잊는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신의 역사일 뿐. 그렇게 역사상 정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죄들이 수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었다. 대학교수라는 범인의 직업이 그같은 역설을 들려준다. 대학교수와 결탁한 무당과 인신매매범들은 그같은 모순과 비극의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성과 무지와 야만이 만난다. 그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너무나 극명히 보고 있다.
드라마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민태연(연정훈 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기가 아닌 진짜였다. 미모의 일본인 점성술사의 존재는 끔찍한 연쇄납치살인사건과 어우러지며 드라마에 묘한 호러적인 신비로움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초능력을 가진 점성술사 루나 유키코(요시타카 유리코 분)가 알고 있고 지적하고 있는 바로 그같은 초자연적인 지식들이 민태연이라고 하는 역시 초자연적인 존재와 함께 이제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뱀파이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에피소드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루나 유키코 역시 뱀파이어가 아닌가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다.
검시관 조정현(이경영 분)의 정체 또한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전면으로 나설 필요가 없는 사람이 전면으로 나서려 할 때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특히 스릴러의 경우 그는 희생자가 되거나 아니면 희생자를 만드는 범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시즌1과는 달리 검시관 조정현이 비중이 전체 분량 가운데 상당하다. 그저 검시관이겠거니 믿고 보기에는 그동안 이와 비슷한 장르를 너무 많이 보았다. 조직의 추격을 뚫고 사라진 오래된 뱀파이어가 계속 플래시백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전혀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초월물이다. 초월자란 일반의 인지나 인식을 뛰어넘은 존재일 것이다. 단서가 있어 그를 통해 유추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능력으로 전혀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 범은을 추적하여 체포한다. 의외의 곳에 의외의 사람이 범인이었지만 초월적 능력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든다.
공포가 전해지고 있었다. 특히 관에 산 채로 시체와 함께 묻혀 있을 때. 죽은 지도 며칠이나 된 시체와 어두운 관속에서 라이터 불빛만을 의지해 마주하고 있었다. 원래 전통의 장례에서 시체를 묻을 때 그렇게 얼굴을 드러내놓은 채로 염해서 묻지는 않건만. 역시 드라마적인 장치일 것이다. 관이 너무 허술하다. 그 정도 흙의 무게도 견디지 못한다.
신비로운 미모의 점성술사와 그녀가 예견한 살인, 그리고 오리무중으로 늘어만 가는 피해자들, 마침내 미모의 점성술사마저 범인들에게 납치당하고, 그것을 특수수사팀은 마침내 범인을 찾아내어 점성술사마저 구해낸다. 전형적이지만 짜임새있는 구성이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쉽지만 그래서 더 어렵다. 재미있다. 머리가 조금 아프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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