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던 영상들이 있었다. 양인이되 말과 목장에 매여 천민 아닌 천민으로 괄시받던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말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전해오는 경험과 새롭게 스스로 연구한 기술들로 마침내 최고의 마의로 모두로부터 인정받는다. 전란이라도 있어 공을 세울 수 있다면 더 높은 신분으로의 상승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신분은 천하더라도 조선 최고의 말전문가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한국드라마일 것이다. 여전히 혈통이 중요하고 정치가 빠지지 않는다. 개인이 아니다.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어떤 자존적 성취와는 관계가 없다. 출신이 무엇이고, 어떤 정치적 배경을 갖고, 그것이 시대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여전히 개인은 거대서사에 얽매여 있고, 그의 존재 역시 혈통이라는 또다른 거대서사의 연장에 존재한다. 어째서 주인공 백광현(조승우 분)는 천한 목자가 아닌 번듯한 양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어째서 하필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다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천민으로 전락하는가? 그리고 그는 다시 아버지가 있던 그곳으로 아버지를 죽인 그들과 맞서기 위해 돌아갈 것이다.
그저 마의여서는 안되었다. 말을 좋아하고, 그래서 말에 대한 관심이 깊고, 그래서 괄시와 천대를 당하면서도 말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말에 대한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고 밝혀간다. 그래서 최고가 된다. 신분은 천민이지만 말에 대해서만큼은 조선 최고다. 아니 천하제일이다. 그보다는 역시 조선팔도를 다스리는 궁궐에서 당대의 실력자들과 만나고 얽히며 남보기에도 번듯한 신분에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목은 마의인데 주인공은 마의에서 임금을 진찰하는 어의가 되려는 모양이다. 마의로서 인정받기보다는 사람을 고치는 의원으로서 그 신분과 지위가 상승하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마의>가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래서 바로 한국드라마일 것이다. 모두가 꿈꾼다. 신분상승을. 남들의 위에 서기를.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고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다른 일을. 언젠가는 더 의미있고 보람있는 더 가치있는 일을. 그런 직업을, 그런 지위를, 그런 신분을, 그래서 더 크고 대단하고 훌륭한 일들을. 아마 현대를 배경으로 했다면 수의사란 상당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굳이 그같은 거창한 배경이나 서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비천한 신분인 마의인 채로 마지막회를 맞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무척 진부했다. 처음은 신선했지만 이내 다음의 내용을 완전히 읽어버리고 말았다. 궁정을 휘감은 거대한 음모와 그 음모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은 부모와 가족들, 그리고 홀로 신분을 숨긴 채 천민이 되어 자라는 아이, 어느새 중요한 위치에서 그를 애증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당시의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과 또다시 얽힌 인연과 관계들. 역시 관건은 손창민이 연기할 이명환의 역할일 것이다. 이명환이 캐릭터가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단지 악역일 뿐이라면 드라마가 너무 흔해진다. 시작은 그것을 예감한다.
다른 방식을 기대했다. 다른 이야기를 간절히 기대했었다. 이번만은 아니기를. 이번만은 그렇지 않기를. 신분이 천하다고 사람이 천하지 않다. 지위가 낮다고 사람의 가치가 낮아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근대가 발견한 개인이라고 하는 위대한 가치다. 개인이란 독립적이고 완결적이다. 물론 전근대사회의 이야기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같은 개인이라는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어째서 비슷한 이야기만을 매번 반복하고 있는가.
물론 필자의 기대가 섣부른 것은 있었다. 시놉시스도 보지 않고 단지 제목만으로 상상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섣부른 기대의 결과 섣부른 실망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드라마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항상 새롭게 시청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결국 묘사이고, 연출이고, 연기다. 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다. 그들은 과연 이번 <마의>라고 하는 드라마를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가. 그것은 또한 자신이 갖는 기대이기도 하다.
'마의'였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굳이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이 아니더라도 그저 말을 살피고 고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허름한 집과 낡은 옷, 초라한 먹거리, 아낙들은 검고 거칠다. 한 번 쯤 그런 드라마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다지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필자 자신도 어느 정도는 짐작한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가. <마의>인 이유였을 것이다. 아쉽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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