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한 남자 - 빗속에 강마루는 서은기를 안고, 한재희는 눈을 마주치다.

까칠부 2012. 10. 4. 09:26

분노와 증오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다. 분노에는 끝이 있지만 증오에는 끝이 없다. 이쯤했으면 되었다, 분노다. 아직까지도 부족하다. 끝을 보아야 한다. 파멸하거나 아니면 파멸시키거나, 증오다. 과연 서은기(문채원 분)를 안은 채 한재희(박시연 분)를 바라보는 강마루(송중기 분)의 눈빛에 담긴 것은 분노일까? 증오일까? 아니면 단지 원망일까?

 

확실히 서은기는 강하다.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란 느긋함이 선사한 두께와 깊이일 것이다. 어지간한 일로는 상처받지 않는다. 그 상처마저도 보듬고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있다. 강마루와 한재회의와 관계를 알았다. 강마루가 어쩌면 자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생겼다. 원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자신이 얼마나 강마루를 사랑하는가. 강마루를 사랑하는 자신을 믿고, 자기가 사랑하는 강마루를 믿는다. 그럼에도 강마루를 사랑하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강마루가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올곧음이 강마루를 구원한다. 애써 겉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그동안 강마루의 안에는 상당한 좌절과 절망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럴 자격이 되지 않기에 한재희 앞에 나타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한재희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와 만나기를 미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것은 한재희를 위한 그의 사랑인 동시에 스스로 구차해지지 않고자 하는 애처로운 발버둥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차마 감히 독설을 퍼부으며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서은기에 대해서도 가지 말라 한 마디 말리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서은기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자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아마 그 순간 누구라도 울고 싶어지지 않을까.

 

강마루가 남다른 탁월한 두뇌로 서은기를 돕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더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강마루 자신인 것이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존재를. 무엇보다 자신의 존엄을. 그래서 마침내 강마루는 눈앞의 서은기를 끌어안고 만다.

 

사랑하는 연인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를 끌어안는 그런 달달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서은기는 맨발인 채였다. 강마루는 한재희가 사주한 폭력배들에 의해 온통 얼굴이 상처투성이였다. 절박한 몸짓이었다. 살기 위한. 조심스러우면서도 간절한 강렬한 떨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 강마루를 찾아온 한재희와 강마루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서은기를 사이에 둔 채 한때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이들은 간절함과 무표정함으로 자신들의 거리를 확인하고 만다. 그들의 사이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원망이라면 강마루는 다시 한재희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원망이란 미련이 남아있을 때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련이 없다면 원망도 없다. 분노는 애정이며 연민이다. 그러나 단지 애정하고 연민할 뿐이다. 그것이 굳이 집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스스로 만족하여 잊게 된다. 한재희따위 강마루에게 아예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녀가 강마루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은 처음부터 아예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증오라면 강마루는 끝가지 한재희를 의식하며 그녀에게 구속되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굳이 한재희를 위해 한재희의 오빠 한재식(양익준 분)을 찾아간 그의 행동은 한재희에게 구애되는 듯 보이면서도 그가 진정 분노하는 대상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강마루는 한재희를 미워하지 않는지 모른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불쌍하게 여긴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서은기를 강마루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폭행을 사주하고 유일한 가족인 초코(이유비 분)를 들먹이며 협박을 가하는 한재희에 대해서까지 그는 아직도 애정을 가지고 있을까? 여전히 한재희는 그가 동경하던 동네에서 가장 예쁜 누나였고, 한때 목숨처럼 사랑하던 여인이었으며, 그리고 이제는 운명에 치여 발버둥치는 가엾은 존재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가 이제는 끊어버려야 할 과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죄악이며 열등감이며 그의 온갖 어둡고 부정적인 그림자다. 그의 품에는 더구나 마침 순수한 백지와도 같은 - 29살이라는 나이에 첫키스를 경험하고 그것에 구애받는 서은기가 있다.

 

제목 <착한 남자>는 역설일까? 아니면 드라마의 주제일까? 착한남자여야 한다. 아니라면 서은기가 불쌍해진다. 한재희는 상관없다. 그녀는 그렇게 평생 자신을 속여가며 자기를 상처입히며 살아갈 것이다. 이미 그녀가 눈앞의 욕망을 위해 놓아 버린 것들이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내몰고 있다. 후회하면서도 당장 눈앞에 놓인 욕망을 놓지 못한다. 그렇게 그녀는 무한의 굴레 속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그런 한재희에게 복수하자고 자신마저 속이려 해서야 올곧게 강마루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서은기만 가엾다.

 

하기는 강마루만이 아니다. 드라마에는 '착한 남자'가 한 사람 더 있다. 서회장(김영철 분)으로부터 깊이 신뢰받는 태산그룹 법무팀 소속 변호사이자 서은기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박준하(이상엽 분)이다. 서은기를 위해 박준하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마저 오랫동안 숨겨오고 있었다. 마치 딸처럼, 여동생처럼,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그러나 사람이 너무 좋으면 혼란스러운 때 가장 먼저 목숨을 잃게 된다. 한 점 티끌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의 해맑음이 드라마의 암울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어떤 비극마저 예감한다. 서은기는 운이 좋다. 서은기의 느긋함과 대범함은 바로 박준하 같은 든든한 보호자의 존재와 역할이 가장 컸을 것이다.

 

한재희에게 위기가 다가온다. 오빠 한재식이 감옥에서 나왔다. 남편인 서회장은 자신과 안민영(김태훈 분) 변호사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서회장이 가진 막대한 돈과 그 돈에서 나오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그런 서회장이 한재희를 의심하고 증오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 그녀는 어떻게 그같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녀는 진정 악이 되어 강마루와 서은기 앞에 그들을 막아서는 적이자 장애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기회다. 드라마가 본격화된다.

 

송중기의 눈빛은 과연 남자의 눈빛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 눈빛일 것이다. 그는 배우다. 배우 이전에 남자다. 그리고 문채원은 여자다. 겉으로만 강한 것이 아닌 자기에 대한 자신과 믿음으로 똘똘뭉친 진정 내면이 강한 여자다. 그녀가 강마루를 사랑한다. 박시연도 어느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한재희가 갖는 복잡한 내면이 절묘한 선을 타고 드라마 전반으로 흐른다. 어느새 미워하고 원망하다가도 연민하며 화를 내게 만든다. 이상엽과 김태훈, 그리고 무엇보다 김영철. 좋은 배우가 있다면 드라마는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통속적이지만 통속적이지 않게 하는 힘이 배우와 작가와 연출진에게는 있다.

 

갈수록 빠져든다. 역시 드라마란 서사보다는 묘사다.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비슷하더라도 모든 이야기가 같지는 않다. 결국 무엇으로 그 안을 채우는가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좋다. 좋은 배우와 좋은 대본과 좋은 연출이 있다. 좋은 드라마가 되리라는 느낌을 받는다. 최소한 TV앞에 앉은 보람을 느끼게 할 것이다. 좋다. 기대가 크다. 재미있다.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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