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의 - 운명이라는 이름의 작위, 만남이 익숙하다.

까칠부 2012. 10. 3. 09:45

초반내용은 그냥 버려도 될 것 같다. 그다지 필요가 없는 관성에 의한 클리셰다. 한 마디로 습관이다. 버릇이다. 별다른 계획이나 의도 없이 시작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

 

굳이 어린 시절의 백광현(아역 안도규)와 강지녕(아역 노정의)가 한양의 거리에서 만났어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던가. 하기는 어쩌면 이 또한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무의식이 만들어낸 어떤 판타지일 것이다. 어린시절 처음으로 이성을 느꼈던 그 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은 운명처럼 이루어진다. 처음의 만남이 마치 운명과도 같이 현재로 이어지며 이루어지게 된다.

 

아역에 대한 묘사 또한 상당히 전형적이다. 온갖 말썽이라는 말썽은 다 부리고 다니는 개구장이지만 그 속은 깊다. 여자아이들은 한결같이 남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역시나 무의식이고 판타지다. 하기는 벌써 어린시절부터 어른처럼 의젓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이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면 재미가 없다. 굳이 아역을 등장시킨다면 남자아이는 개구져야 하고, 여자아이는 되바라져야 한다. 그리고 먼 고향으로 돌아가듯 전혀 다른 남자와 여자가 되어 그들은 마침내 재회하게 된다. 그래서인가 주인공의 아역을 제외한 나머지는 마치 인격이 없는 소품처럼 합창하듯 정해진 대사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굳이 아역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나마 아마도 악역을 맡게 될 이명환(손창민 분)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어느새 판관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의술이며 인품 모두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대단한 의관이 되어 있었다. 이미 성공해 있고, 앞으로도 성공의 가도를 달려야 할 그에게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 있다면 과거 그가 저지른 한 가지 뼈아픈 잘못이었다. 친구를 배신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집안이 적몰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마 밝힐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음모에 연루되어 자칫 그 일을 추궁당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는 뛰어난 재능과 남다른 인화력과는 달리 무척 약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차라리 내가 나쁜 놈이면 되었다. 원래 내가 나쁜 놈이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면 되었다. 다른 누구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못나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이며 판단이었다. 지금의 자리 또한 그같은 자신의 선택이며 판단이었고 자신의 능력이었다. 차라리 악이기를 선택한다. 후회조차 없이 반성하기보다 그렇게 자기를 합리화한다. 위악이란 자신이 닿지 못할 선에 대한 조롱이며 멸시다. 포도밭의 여우처럼 그는 원래 선이 자기의 것이 아니었다 말한다. 우정도 신뢰도 사랑도 그 어느 것도 자신과는 상관없다. 다행히 지금의 그에게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힘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후회도 했을 것이다. 미련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에 항상 마음은 커다란 짐을 떠안은 듯 무겁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자신의 죄의식에 대해서까지 사람은 길들여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자신에 대한 환멸과 조롱이 이제는 확신이 되어 더 이상의 혼란도 사라진다. 불혹이란 그렇게 모든 미련과 미혹이 사라지고 확신 속에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나이를 뜻한다. 타협과 영합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처음 순진하기만 하던 마의의 자식이 이제는 내의원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가 되어 악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처음 일방적으로 자신을 억압하던 이형익에게 이제는 공대까지 받으며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살고자 뒤에서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이형익에게 무뢰배들을 동원해 살해까지 사주할 정도로 독심까지 갖추었다. 그가 과거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강도준(전노민 분)의 아들인 백광현을 쫓으려 한다. 장인주(유선 분)가 빼돌린 백광현의 존재를 그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린 백광현이 지켜보는 바로 그곳에서 강도준의 친구였던 이명환은 백광현의 적으로 나타난다.

 

하기는 그러고 보면 그것도 참으로 공교로울 것이다.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 석구의 눈을 피해 한양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하필 석구의 친딸인 어린시절의 강지녕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강지녕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고 이제 장차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게 될 이명환의 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운명처럼. 운명이란 어쩌면 신이 정해주는 것일 터이니 이야기속에서 신이란 바로 작가일 것이다. 그것을 달리 작위라 부른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질까. 그것이 반복되고 있기까지 하니 보지 않아도 이후의 내용을 짐작한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익숙함은 때로 지겨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악역 이명환은 이렇게 구체화되었다. 그의 배후에 조정의 실세인 정성조(김창완 분)가 있다. 그러면 백광현은 무엇을 가지고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인가? 하지만 역시 그보다는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떤 관계에서 나타날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떤 개인으로서, 어떤 능력과 성품을 가지고 그들을 만날 것인가가 아닌, 어떤 관계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서로 만나게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개인은 사회속에 존재한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보다 그 의도와 배경이 더 중요하다. 신의 세계가 결정되어 있듯 작가의 세계도 예정되어 있다. 이제 겨우 백광현은 시청자가 아닌 그들 앞에 나타날 이유를 가지게 되었다.

 

익숙한 만큼 편하기도 하다. 뻔하게 예상하며 볼 수 있는 편한 재미라는 것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무 반복되었다. 흔한 통속극도 아닌 특별기획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을 정도라며 무언가 남다른 시도나 의도가 보여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MBC라고 하는 거대미디어의 이름을 건 작품이라면 말이다. 작품이 너무 노쇠했다. 물론 그럼에도 역시 원한과 복수란 항상 기대하게 되는 흔한 소재이기는 하다. 통속이란 기대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원인이라면 기대가 너무 컸다는 점일 게다. 그리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았다는 것일 터다. 그 외에는 나쁘지 않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안했다. 감안하고 본다.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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