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그리고 애처롭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것은 결국 언젠가는 끝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이루지 못할 슬픈 사랑을 한다. 아름답게. 그리고 처절하게.
아쉽다. 어째서 김소은(숙휘공주 역)은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일까? 저리 아름다운데. 저리 애처로운데. 천진하다. 어느새 찾아온 생소한 첫사랑의 감정에 설레는 소녀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그야말로 금지옥엽 존귀한 공주의 신분이라는 사실조차 잊는다. 상대가 비천한 노비 출신의 마의라는 사실마저 잊고 있다. 그를 만나고자 억지로 병든 개를 구해 빌미로 삼으려 한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을 만지고 그에게 입맞춤하고 싶다. 자연스러운 충동이지만 시대와 그녀의 신분이 그것을 비극으로 만든다.
차라리 흔하디흔한 어린시절보다 숙휘공주와의 사연을 보다 디테일하게 부각시켜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숙휘공주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룰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을 보여준다. 오히려 백광현(조승우 분) 역시 공주를 사랑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그것을 바로 가까이에서 강지녕(이요원 분)이 지켜본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며 스스로 그 사이에서 가슴아픈 시련을 겪게 된다. 그저 주인공에 불과한 지금의 강지녕보다 어쩌면 그쪽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그저 우연히 만나 막연히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오해와 갈등 속에 점차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달아간다. 역시 너무 흔하다.
그만큼 김소은의 표정이 좋다. 저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 같다. 언제 저와 같은 사랑을 한 적이 있던가. 슬프고 아련하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을 알기에 말리고 싶다가도 어느새 마음 한 구석에서 응원하고 마는 자신이 있다. 그래서 숙휘공주를 따르는 상궁과 호위무관도 숙휘공주를 걱정하면서도 끝내 그 부탁을 모두 들어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할지라도 사랑스러운 그녀가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싶다. 새로운 발견일 것이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배우가 또 한 사람 있었구나.
나머지는 평이하다. 전복의 내장이 4월과 5월 사이에 독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복의 내장을 식초와 함께 두면 독성이 강해진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물에 녹는 식초가 전복의 내장과 함께 있으면 씻겨내려가기는 커녕 그대로 남아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우물이 있는데도 굳이 마을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강물을 식수로 사용한 까닭은 또한 무엇일까? 모양만 우물일 뿐 사실은 우물의 바닥이 강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드라마가 설명하지 않고 지나친 부분이다. 어째서 물이 원인인 것은 알았는데 우물이 아닌 강물을 식수로 썼을 것이라 단정한 것일까?
결국 백광현의 활약으로 역병이 아닌 전복내장독의 집단중독은 해결되었고, 그로 인해 다시 정성조(김창완 분)와 이명환(손창민 분)의 의도는 좌절되고 백광현에 우호적인 고주만(이순재 분)이 수의의 자리에 올랐다. 강지녕과의 일로 이명환의 아들 이성하(이상우 분)와도 악연을 맺게 되었으니 주인공을 위한 무대는 마련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는 아버지와 가문의 원수이며 가까이는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이며 경쟁자다. 그를 위한 장치였다. 그래서 무리해가며 이제 배우는 단계의 백광현으로 하여금 세계사적인 발견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감각은 어느 숙련된 의원보다도 뛰어나다. 신화시대에 쓰여진 한 편의 영웅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전히 강지녕은 무미건조하다. 오히려 이요원의 연기가 좋아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강지녕의 캐릭터가 처음부터 백광현에 대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표현하려 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어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현실에 대한 고려도 배려도 없이 무작정 솔직한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려 하는 숙휘공주가 돋보이는 것이다. 그녀의 충동은 순수함이다. 그녀의 생각없음은 순진함이다. 자칫 백광현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그녀의 사랑은 진실하고 진지하다.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기에 그런 그녀의 사랑이 애닲고 애처로운 것이다. 가엾다. 계속해서 그녀를 보게 된다.
어쩌면 한국드라마의 특징일 것이다. 아니 한국대중문화의 속성이다. 지나치게 거대서사에 집착한다. 한국의 대중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정치는 무시해도 좋다. 권력의 움직임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아도 좋다. 누가 권력을 쥐든 사람은 살아간다. 누가 권력을 쥐고 어떤 짓을 하든 여전히 사는 사람은 살아간다.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원망도 하고, 그리워도 하면서, 울고 웃으며 그렇게 사람은 살아간다. 굳이 백광현의 일생을 정치싸움과 결부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백광현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숙휘공주의 모습이 그 답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가지 볼 것이 생겼다. 김소은은 참 매력적인 배우다. 풍부한 표정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얼굴을 할 줄 아는 배우다. 현실을 거부한 숙휘공주의 사랑이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백광현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로 기억될 것인가. 자꾸 마음이 쓰인다. 보게 된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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