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울랄라부부 - 한심한 고수남, 누구를 위한 드라마인가 분명히 하다.

까칠부 2012. 10. 31. 10:05

고수남(신현준 분)은 확실히 남자였다. 워낙 사회활동의 비중이 높다 보니 남자에게는 개인으로서의 자신보다 관계를 통한 자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적잖이 나타난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보다 과연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란 누구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신이 역할이란 무엇인지에 더 신경쓰게 되는 것이다.

 

고수남이 바람을 피운 이유이기도 하다. 나여옥(김정은 분)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역할을 전혀 간절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빅토리아(한채아 분)는 달랐다. 그녀에게는 고수남이 절실했고 그녀의 곁에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빅토리아를 사랑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아니면 안 되었으므로.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제 빅토리아를 정리하려 한다. 말 그대로 정리다. 어긋난 것을 치우고 바로잡으려 한다. 과연 사랑이었다면 그렇게 한순간에 무자르듯 빅토리아와의 관계를 끝낼 수 있었을까? 충격을 받고 쓰러진 빅토리아를 걱정하면서도 그녀의 앞에서 나여옥을 걱정하는데 전혀 아무런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이는데도 이미 그의 안중엔 빅토리아란 없다. 나여옥의 남편인 때문이다.

 

그동안 나여옥으로 살면서 아내 나여옥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나여옥에게 있어 남편인 자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치인지. 더구나 임신까지 했다. 나여옥이 되어 임신하는 경험까지 해 보았다. 부모로서의 자각가지 더해진다. 빅토리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는 아이처럼 이기적인 존재다. 자기 편한대로 자신을 필요로하는 곳으로 잔인하도록 천진하게 변덕스런 발걸음을 옮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월하노인(변희봉 분)과 무산신녀(나르샤 분)를 통해 결혼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하는 줄 알았다. 결혼에 대한 의리인가, 아니면 사랑에 대한 솔직함인가. 나여옥의 남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인가, 아니면 빅토리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에 충실할 것인가. 그러나 빅토리아에 대한 감정조차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바람핀 남편의 죄책감과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뿐이다. 더구나 꿈속의 왕자님과 같은 나여옥의 첫사랑 장현우(한재석 분)가 같은 시간 나여옥을 찾아가고 있다.

 

철저히 여성의 시각에서 쓰여진 드라마다. 진지한 고민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남자가 바람을 폈고 여자는 일방적인 피해자일 뿐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고, 여자는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지금은 단지 시련의 기간일 뿐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그녀에게 축복처럼 더 훌륭해져서 돌아온 첫사랑의 상대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과연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했었는가. 말한대로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빅토리아를 사랑하려 바람을 피우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드라마의 주시청층은 여성인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 주부의 비율이 매우 높다. 그래서 고수남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으로 단지 바람일 뿐이고, 나여옥의 사랑은 지나간 사랑으로 단지 일방적인 구애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높이는 장치로 쓰일 뿐이다. 고수남은 낮아지고 나여옥은 높아진다. 이해는 하면서도 나여옥의 그동안의 모습에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던 입장에서 완전히 이입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동떨어진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이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목적에 충실한다. 주시청층에 충성한다. 상업드라마로서 이 이상은 없다. 평이하지만 드라마란 허투루 그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반의 상승세도 주춤하고 <마의>의 기세는 무섭다. 고수남은 한심해져야 하고 나여옥은 귀해져야 한다. 이제 어느정도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납득이 간다. 아쉬움이 크다. 좋은 드라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