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한 남자 - 서은기와의 입맞춤, 강마루 사랑에 지다.

까칠부 2012. 11. 1. 10:10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해서는 안된다. 절대 그녀를 사랑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단단한 이성의 균열을 비집고 어느새 온통 자신을 흔들어대고 있는 이 본능의 갈증을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서 손을 내밀어본다. 간절히 도움을 요청해본다. 나를 말려달라.

 

서은기(문채원 분)에게 말한다. 기억을 되살려내라. 기억만 되살린다면 그녀가 먼저 자신을 거부할 것이다. 저주하고 원망하며 자신을 밀어내려 할 것이다. 그래도 도저히 부족한 듯 싶자 이번에는 아예 박준하(이상엽 분)를 불러 자신의 지금 심정을 과장되게 비틀어 털어놓는다. 서은기를 사랑하는 그라면 분명 자신을 억지로라도 말려줄 것이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그녀로부터 떼어내려 할 것이다.

 

사랑할 자격이 없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서은기를 사랑할 자격따위는 없다. 그래서 병을 방치했다. 그래서 자신을 방치했다. 뒤늦게 서은기를 위해 살려 한다. 서은기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은기로부터 떠나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구나 한재희가 될 수 있지만 그러기 싫어서, 거기까지 가기 싫어서, 거기까지 가는 건 정말 창피하고 쪽팔린 일이라서 간신히 참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재희에게 이 말을 하기 전 강마루(송중기 분)는 앞서 자신의 입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단서처럼 내뱉고 있었다.

 

"아닌 게 어딨어, 하면 다 하는 거지? 세상에 강마루 한재희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강마루 자신에 대한 조롱이며 경멸이었을 것이다. 한재희가 되는 것이 그토록 창피하고 쪽팔린 일이라 말하면서도 그는 한재희의 그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재희에게 돌려주기를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수준이다. 이미 그렇게 타락했으며 그렇게 버려졌다. 이토록 더러워진 손으로 과연 서은기를 만질 수 있을까? 그녀를 보고, 그녀를 마음에 품고, 그녀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그래서 벌을 준다. 애써 자신을 학대하며 서은기와 거리를 벌리려 한다. 그녀를 더럽히지 않으려. 그렇다고 아예 외면하고 떠나기에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도저히 가눌 길이 없다. 잊을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차라리 외면하도록 만든다. 경멸하고 증오하도록 만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막연한 기약조차 없는 기다림으로 그리움을 달랜다. 그립다 못해 그것이 병이 되고 자신을 해치게 되더라도 그것은 홀로 감당할 몫이지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격정이 끝내 그의 등을 떠밀고 만다.

 

사랑스러워서는 안되었다. 진정 그녀는 그토록 사랑스러워서는 안되었다. 어찌 태산그룹과 자신을 바꿀 생각을 하는가? 어찌 이토록 첫키스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찾아와 막무가내로 따지는가? 그녀가 더 강했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강마루의 비루한 이성을 이겼다. 억지로라도 밀쳐내라 이성은 말하고 있지만 그의 몸은 어느새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만다. 다시 한번 그녀를 안고 입맞춤을 하고 만다.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이란 단지 구실이고 핑계일 뿐이다. 서은기의 당당함이 갑옷처럼 두른 강마루의 비겁한 변명들을 허물고 만다. 다만 과연 비겁함과 비굴함이 뼛속까지 체화된 강마루가 그런 자신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송중기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는 진심으로 웃거나 슬퍼하는 법이 없다. 화는 낸다. 오로지 서은기를 위해서만 그는 화를 낸다. 자신은 단지 비웃을 뿐이다. 자신은 물론 주위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외면하며 표정까지 지운 비웃음만을 보낼 뿐이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경멸하던 한재식(양익준 분)조차 한재희를 상대하기 위해 끌어들일 수 있다. 어차피 한재희나 강마루다 다를 것이 없다. 한재식이라고 다를 것이 무엇인가. 소중한 것은 서은기 뿐. 서은기를 사랑하는 자신조차 하찮고 한심하다. 그런 자신의 앞에서 열을 내고 있는 박준하(이상엽 분)은 또 얼마나 우스운가. 서은기는 지금까지처럼 그에게 구원이 되어줄까? 서은기에게 다시 그는 구원이 되어줄까?

 

상징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강마루가 떠난 집을 한재희가 사서 홀로 마당에 앉아 옛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그때 강마루가 서은기와 함께 한재희가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 집 문앞에 선다. 그러나 강마루는 문을 열려는 서은기를 말리며 다시 걸음을 돌린다. 한재희만을 홀로 남겨둔 채 그들은 새로운 자신들의 집을 찾아 천천히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강마루와의 지난 기억속에 머물러 있는 한재희와는 달리 강마루와 서은기는 그 기억조차 외면한 채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 과거만이 남아 있는 한재희와는 전혀 다르게 강마루와 서은기의 앞에는 과거의 기억조차 아랑곳없는 그들만의 미래가 있을 뿐이다. 한재희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강마루를 잡으려 하지만 이제 강마루에게는 그녀의 자리란 없다.

 

하기는 한재희가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강마루의 옛집에는 안민영(김태훈 분)의 자리 또한 없었다.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가 용납하지 않았다. 허락없이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서기엔 안민영 또한 자존심이 있다. 그녀를 끄집어내려 한다. 그녀의 집에 그녀와 함께 머물 수 없다면 그녀를 집에서 끄집어내어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라 할지라도 그녀와 함께이기를 바란다. 그녀와 같은 곳을 본다. 그녀와 같은 꿈을 꾼다. 그녀와 같은 죄를 짓는다. 세상에 단 한 사람 그녀를 위하고 그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다.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며 뒤틀린 소유욕일 뿐이다. 망설이는 그녀를 죄로 이끌려 한다. 슬프지만 이기적인 사랑이다.

 

서은기의 기억이 점차 되돌아오고 있다. 서은기 자신 또한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감당할 수 있게 되어간다. 원래 강한 아가씨였다. 바보같을 정도로 솔직한 직구밖에 던질 줄 모르는 그런 아가씨였다. 굳이 기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강마루를 사랑하는 순간 그녀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강하고 당당하다. 강마루를 지탱할 울타리가 되어준다. 강마루가 서은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은기가 강마루를 지킨다. 역시 그것을 강마루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쩐지 시리도록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는 비극을 예감하고 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강마루의 발버둥이 처절하다. 차라리 추해 보일 정도다. 그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은가. 도대체 어디로 도망쳐 어디로 숨으려는가. 그래도 겨우 구덩이에 머리만 파묻은 채라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면 두려움은 가시는 법이다.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진다. 그런데 불편해진다. 서은기 때문이다. 그의 불편함이 드라마다. 제목이 <착한 남자>인 이유다.

 

서은기의 강함이 두드러진다. 태산그룹이 아닌 강마루를 선택하겠다. 강마루를 위해 태산그룹을 포기하겠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한재희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누구도 그렇게 쉽게 선택하고 결정하지는 못한다. 강마루와 서은기가 키스하는 모습을 한재희가 보고 있었다. 어떤 드라마가 펼쳐지려는가.

 

박준하의 의지가 얼룩을 드리운다. 서은기를 걱정하는 마음에 서은기를 속이고 이용하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의 순수는 바래고 바랜 탁한 흰 빛이다. 그의 선량함은 목적을 잃어버린 선량함이다. 변수로 작용할 듯하다. 반전이 있을까? 기대한다. 더욱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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