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야말로 혜성과도 같았다. 혜성과도 같이 나타나서 혜성같이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 짧지만 한때 가왕 조용필마저 누르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당대 최고의 스타, 그러나 그 빛은 한 순간에 그야말로 허무할 정도로 갑자기 모두의 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국풍81은 원래 그렇게 썩 좋은 의도로 기획된 행사는 아니었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총부리를 거꾸로 돌려 심지어 자국민의 피를 보아가며 권력을 찬탈했다. 당연히 대중이 신군부를 보는 눈은 차가웠다. 특히 대학생들은 신군부에 저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여론을 돌리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잊게 만든다. 처음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통폐합대상이 된 TBC에서 주최하려 했던 '전국 대학생 축제 경연대회'가 그렇게 급조하여 신군부가 주최한 전통문화와 젊은이의 축제로 바뀌고 말았다. 평가는 좋지 못했고 한 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급조된 축제를 통해 또 한 사람의 스타가 배출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국풍81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대학생가요제에서 한 사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더벅머리에 촌스런 금테안경을 낀 한 평범한 젊은이가 풍부한 성량과 깊이있는 비브라토를 내세워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슬픈 노래는 더 슬프게, 즐거운 노래마저도 여운을 담아, 그렇게 그의 목소리는 시대의 젊은이들의 감성을 울리고 있었다. 조용필과 전영록으로 대표되던 당대의 청춘스타의 이름에 당당히 이용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 아직은 외모보다는 목소리가 더 와닿았던 전환기의 오랜 신화였을 것이다. 아마 그 일만 아니었다면 80년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 아니 청년문화는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짧은 전성기와 잊혀짐이 아직까지도 많이 서운하고 아쉽다. 필자도 그의 목소리를 무척 좋아했었다.
솔직히 걱정했었다. 워낙 활동기간이 짧았다. 빅히트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히트곡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용의 노래만으로 <불후의 명곡2>의 무대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잊고 있었다. 이용이 부르지는 않았지만 이용이 만든 노래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을. 거의 전부일 것이다. '잊혀진 계절',. '바람이려오', '서울', '첫사랑', '사랑행복이별', 그리고 김지애가 불러 크게 히트시켰던 '몰래한 사랑'.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시대의 명곡들일 것이다. '잊혀진 계절'은 지금도 10월이면 당연하다는 듯 라디오를 통해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해, 혹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워지는 노래일 것이다.
정동하의 '바람이려오'는 욕심이 너무 앞섰다. 슬픈 노래다. 슬픈 정도를 넘어 음산하기까지 한 노래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인데 자는 사람의 머리맡을 지킬 수 있을까? 어째서 멀리서 밝아오는 아침에 자기의 노래가 삼켜진다 말하는 것일까? 천국의 노래를 흩어놓는다 하는 것일까? 자신은 어둠이라 말하고 있다. 떠나려는 사람의 노래가 아니다. 떠나고자 하는 이의 노래가 아니다. 떠나기 싫은 사람의 노래다. 떠나기 싫은데 바람이 되어 떠나가 버린다.
그런데 너무 힘차고 너무 화려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하던 이용과는 달리 정동하의 목소리는 단지 자기의 감정에만 도취되어 있었다. 퍼포먼스에 너무 맛이 들린 것일까? 싱어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하다. 노래는 역시 명품이다. 웨스턴의 리듬이 이 노래와 이렇게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가사가 주는 의미만 아니었다면 상당히 훌륭한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했다. 정동하는 남자다. 확인시켜주었다.
스윗소로우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감성을 정확히 잡아내어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설사 원래의 노래가 의도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느껴지도록 무대를 만든다. 목소리와 표정과 퍼포먼스, 순간 그들을 중심으로 바람마저 바뀌는 것 같다.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즐거웠다. 행복한 '서울'이었다. 노래가 의도한 바로 그것을 게다. 듣는 이마저 함께 행복해진다. '서울'이란 원래 그런 노래였다. 스윗소로우의 느낌이었다.
화요비의 노래는 마치 어느 외딴 카페에서 듣는 오랜 가수의 하소연과도 같았다. 한 잔의 술과 쓸쓸한 바람과 깊은 어둠, 삶에 지친 여가수가 오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로는 숨을 참아가며, 때로는 숨에 가빠하며, 차마 토하지 못한 열정이 억눌린 듯 떨림으로 전해진다. 화요비와 단둘이 마주앉아 노래를 들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소극장의 작은 무대에서 화요비의 숨소리까지 들어가며 함께 노래를 듣는다면 왈칵 눈물마저 쏟았을 것 같다. 경연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과연 화요비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김지애가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처럼 '몰래한 사랑'을 불렀다면 화요비는 남의 이야기인 듯 자기의 이야기인 듯 아련한 여운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탁월한 가수다. 너무 아까웠다.
별의 '첫사랑'도 무척 아까웠다. 떨림과 설레임과 환희와 두려움, 이제 곧 한가족이 될 하하를 연상케 하는 레게리듬이 그 복잡한 감성을 다채로운 무대와 함께 전하고 있었다. 첫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아니 사랑이란 이런 감정이다. 결혼을 앞둔 신부의 마음이기도 할까? 보는 이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무대였다. 그저 경쟁자인 스윗소로우가 너무 강했을 뿐이다.
B1A4의 산들은 단지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노래를 불렀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토록 젊은 가수가 자기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노래에만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순간 산들은 산들 자신이 아닌 노랫속의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노랫속의 누군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자신의 진심을 담아. 노래가 갖는 진실한 감정이 고스란히 산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었다. '잊혀진 계절'은 명곡이다. 가사와 멜로디가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노래가 갖는 진실한 힘을 믿는다. 가수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그 변치않는 진실을 확인시켜준다. 노래를 잘한다. 놀랐다.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가볍기만 한 모습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는 가수였다. 훌륭한 가수였다.
손호영의 무대를 보면서는 '호쾌하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잘생겼다기보다는 훤칠하다. 인물이 시원하다. 무대가 바로 손호영과 같다. 다양한 장르와 형식들이 시도되는 가운데 한 가지 자신만의 일관된 템포를 지켜간다. 손호영의 무대다. 그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 누가 하더라도 손호영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손호영이 주인공이었다. 산들과는 반대로 엔터테이너란 어떤 사람인가를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떤 노래를 부르든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가수 자신이라고. 가수 자신이 대중에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손호영이라고 하는 자신의 매력을 남김없이 노래와 함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다지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었음에도 그 순간 손호영이라고 하는 가수가 좋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장점을 안다. 자신의 매력을 안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안다. 노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이제껏 <불후의 명곡2>를 보던 가운데 가장 감탄한 무대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손호영이었다. GOD라고 하는 수식어마저 잊었다. 최고였다.
화요비가 노래를 부르는데 문득 기타를 꺼내 반주를 하던 이용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스타란 그저 인기가 많아서 스타가 아니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인기가 그때와 같지도 않고, 알아보는 사람도 이제는 그리 많지 않음에도,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스타이고 음악인일 터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용의 목소리도 정겹기만 하다. <불후의 명곡2>라는 프로그램이 갖는 가치일 것이다. 여전히 그는 이용이었고 필자는 그의 노래를 듣는 팬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가벼움이 좋다. 천진난만함이 좋다. 무대 뒤에서 그들은 일상인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래의 보통사람들보다도 그들은 철이 없다. 신동엽의 짓궂음이 진지함과 두께를 걷어낸다. 그래서 또 심각해지지 않는다. 승자도 패자도 그것으로 웃음의 소재를 삼을 수 있다. 음악이란 즐기는 것. 무대란 즐기라 있는 것. 전설도 가수들도 청중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 좋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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