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하는 입장에서 가장 비평하기 까다로운 드라마다. 감춰진 것이 없다. 일부러 아껴서 숨겨두거나 한 것도 전혀 없다. 깊이도 없다. 모두 드러나 있다. 강림(이희준 분)의 배신도, 마백(김갑수 분)의 음모도, 심지어 그들을 쫓는 전우치(차태현 분)의 정체까지도.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조차 없이 그저 보이는대로 보기만 하면 된다. 시청자가 보기에 이렇게 편한 드라마도 없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그래서 더 쓸 것이 없다.
장르라는 것이다. 장르의 전형적 공식을 따른다. 마백은 음모를 꾸미고, 강림은 그 앞잡이가 되어 전우치와 대립하고, 홍무연(유이 분)은 운명적 비극을 만들어간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충 마백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지금까지 드라마를 통해 보여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역시나 한국만의 독특한 장르적 특징일 것이다. 거대서사와 결합하기를 좋아한다. 경쟁드라마 <대풍수>가 풍수라고 하는 소재를 조선의 건국이라고 하는 거대서사와 연결지었듯, <전우치> 역시 전우치라는 전래의 기담을 반정과 역모라고 하는 역사드라마다운 거대서사와 붙여놓고 있다.
시대는 물론 가상이다. 홍길동 자신은 연산군 때 사람이지만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그로부터 100년 여가 지난 광해군 때다. 연산군 때도 중종반정이 일어났고 광해군 때도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논공행상에서 불만을 품었다는 점에서 바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옹립한 인조반정을 모델로 한 듯하다. 전우치가 쓰고 있는 안경 또한 16세기 말에 들어온 것이니 시대적으로 얼추 들어맞는다. 하지만 무리하게 실제의 역사에 허구의 드라마를 끼워맞추려 하기보다는 아예 드라마에 맞는 허구의 역사를 새로 설정해 만들었다. 마치 신문기자를 연상케 하는 조보청의 기별서리라는 직책은 현대의 관점에서 시대를 재구성했음을 보여준다. 신문기자란 원래 히어로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너무나 의도가 훤히 보이는 음모와 그리고 드라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술로써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들,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전혀 복잡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관계까지. 하지만 여기까지는 장르적으로 약속된 것이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본다. 나머지는 캐릭터다. 독특한 캐릭터들만의 개성과 그것을 살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흔한 장르적 뼈대 위에 질감을 입힌다. 차태현은 역시 타고난 배우다. 어느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탓에 홍무연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이런 역할에는 차태현 이상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천연덕스럽다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성동일(봉구 역)의 연기는 차라리 소름이 끼칠 정도다. 충분히 웃음을 주면서도 자신은 전혀 우스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했던 이희준의 연기가 아직은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생경한 캐릭터와 연기가 아직은 쑥스러운 탓일까?
그다지 진지하거나 심각해질 필요가 없는 드라마다. 머리를 쓰거나 생각을 하며 보아야 할 장면이라는 것도 없다. 그저 보이는대로 보고 들리는대로 들으며 드라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며 웃을 때 웃는다. 울어야 할 때는 울어주면 좋을 것이다. 어차피 진지할 일도 심각할 일도 세상에는 넘쳐난다. 충분히 일상에서 그로 인해 지쳐 있다. 엔터테인먼트란 여흥이다. 휴식이다. 편하게 힘빼고 웃으며 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좋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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