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곧 욕망일 것이다. 모든 욕망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것이다. 힘(力)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권력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力)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권력을 바라고, 권력을 쫓으며, 권력에 굴종한다.
자미원국이란 바로 그러한 권력 그 자체일 것이다. 왕이 된다. 왕이 될 수 있다. 이미 왕이라면 누구보다 존엄한 왕이 될 것이다.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백성과 더 풍요로운 부와 더 강력한 군대,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모두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용은 여의주를 입에 문다. 용은 왕이다.
바라는 것은 서로 다르다. 공민왕(류태준 분)이 다르고, 노국공주(배민희 분)가 다르고, 수련개(오현경 분)가 다를 것이며, 이인임(조민기 분) 또한 서로 다른 이유로 권력을 탐하고 집착하고 있다. 이성계 또한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목지상(지성 분) 역시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 모든 욕망과 바람과 필요가 왕이라는 하나의 정점을 향해 모여든다. 그 중심에 자미원국은 있다.
이 얼마나 비루한 모습인가? 아이만 낳으라 말한다. 아이를 낳는 이외의 무엇도 기대해서는 안된다 말하고 있다. 심지어 첫날밤에 옷벗는 것을 도와주려는 것조차 무심히 거부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도구일 뿐이다. 왕조를 위해 후계자를 낳아줄 - 그 후계자가 깃들 자궁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군왕지지를 품었으니 그 자격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야(이윤지 분)는 그 모든 수모와 굴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만다. 그녀 또한 인간일 터다.
출생부터가 불우했다. 몽골로 끌려간 고려인 공녀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유해를 마지막으로 고향에 모시기 위해 고되고 위험한 먼 길을 혼자서 걸어 마침내 개경에까지 이르렀다. 공녀의 딸은 공녀라고 고려의 군사들은 그녀를 잡아가려 한다. 그나마 목지상을 만나 안정을 찾던 것도 목지상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주위에는 그녀의 미모를 노리는 악의들로 넘쳐나게 된다. 뒤쫓던 무리들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다 여긴 은인 신돈(유하준 분)조차 그저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할 뿐이다. 어디에 자유가 있고 어디에 존엄이 있을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녀에게 삶이란 타인의 욕망과 의도에 의해 휘둘리기만 하는 비참한 것이었다. 다시는 - 최소한 자신의 자식에게만은 그런 운명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차라리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는 지고한 자리를 자식에게만은 주고 싶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어찌되어도 상관없다.
자신마저 수단으로 사용한다. 자신마저도 단지 자식을 위한 도구로 여긴다. 자식에 대한 간절함이 -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 비해 그것은 반야 자신의 한이며 분노였을 것이다. 비천한 신분에 여인의 몸이기까지 한 자신이 왕이 될 가능성은 없다. 왕은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래서 차라리 왕의 어미가 되고자 한다. 그것이 그녀의 보람이다. 그녀 자신의 존엄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은인이며 첫사랑이기도 했던 목지상을 외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수련개의 욕망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름만 그럴싸해서 국무이지 무녀란 고려사회에서도 그다지 지위가 높은 편이 못되었다. 사랑을 해서도 안된다. 자식을 낳아서도 안된다. 평범한 집안의 여식이라면 굳이 무녀라는 가혹한 운명을 일부러 선택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필 이인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고 태어나서는 안되었던 아이였다. 아이를 영지옹주(이승연 분)에게 맡기고 만다. 자식을 위해 모성마저 포기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바람은 있다. 언제고 이 나라의 왕이, 아니 왕후가 되어 사랑도 자식도 모두 되찾으리라.
이인임이 진정 바란 것은 무엇일까?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진정 영지옹주를 사랑했다. 하지만 무엇으로도 영지옹주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그는 지금 공허하다. 그 공허를 채우는 것이 이제는 지난날의 야심이다. 그의 욕망은 가장 허무하고 가장 미묘한 지점에 있다. 수련개의 바람은 결국 짝사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운명으로부터마저 배반당하고 마는 반야처럼 그녀 또한 정작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들로부터는 거부당하고 만다. 이인임도 아들 이정근(송창의 분) 또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고려라는 나라를 일으키고자 한다. 자미원국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그 자미원국이 가짜라 했다. 공민왕 자신마저 가짜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는 의심이 많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신을 더 믿지 못한다. 후계자를 얻기 위해 옷고름조차 맏기지 못할 천한 여인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모습은 반야의 그것보다도 더 비루해 보였다. 왕에게 후계자를 안겨주고자 스스로 사랑하는 남편을 다른 여인에게 보내야 했던 노국공주의 처지도 그렇다. 그 중심에도 왕이 있다. 왕이었고, 왕으로서 왕을 지켜야 했고, 그의 아내로서 또한 왕과 왕실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목지상과 영지옹주가 만났다. 이미 왕의 분노를 사서 모든 힘과 지위를 잃어버린 영지옹주로서는 목지상을 도울 방법이 없다. 다행히 영지옹주에게는 정근이라는 또다른 아들이 있다. 오로지 사랑하는 이를 위한 지순한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영지옹주지만 단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정근이 곁에 있기에 목지상은 홀가분하게 반야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래도 목지상이 앞으로도 살아남아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어머니 영지옹주를 위한 것일 터다. 그것은 반야를 떠나보내게 위한 마지막 선물이다. 그녀는 왕의 아들을 낳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한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자신과 함께 위험에 빠진 자기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왕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왕에게 충성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왕이다. 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통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왕 뿐이다. 역사와는 다르다. 하지만 목지상과 이성계가 만나게 되는 계기로는 충분하다. 이성계는 왕이 되고자 하고, 목지상은 그럼에도 살아남아 어머니를 다시 만나야 한다. 어머니를 지켜주어야 한다. 반야 역시 지켜주어야 한다. 그에게는 힘이 없다. 정근 만큼의 힘도 없다. 이성계 또한 아직 아무것도 없다.
누구 하나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 아니 모두는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그를 위해 자신을 수단으로 삼는다. 도구로써 사용하고 만다. 간절함은 모두 다르다. 욕망 또한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드라마다. 얽히고 섥히고 부대끼고 충돌하며 치열한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그같은 드라마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는 역사의 드라마로 이어진다. 사소한 개인의 사정이 거대한 역사적 서사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래서 흥미롭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정이라면 역사에 존재하는 것은 본능과 욕망이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앞으로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모두는 알고 있다. 다만 풀이과정이 다르다. 전혀 엉뚱한 자기만의 공식으로 답을 찾아가려 하고 있다. 과정을 모르기에 오히려 답이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이제 비로소 이성계와 만난 목지상과 목지상과 만난 이성계가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가려는지. 본격적이 되어간다. 재미있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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