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장점이면서 단점일 것이다. 쉽다. 편하다. 굴곡이 없다. 그런 만큼 긴장도 없고 기대도 없다. 굳이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 궁금한 것도 없다.
너무 쉽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고, 다시 그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쉽게 바로 인정해 버린다.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 또한 그다지 어렵거나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고은(정려원 분)은 바로 앤서니(김명민 분)가 듣는 앞에서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고, 앤서니는 그런 이고은을 의식하는 자신에 당혹해한다. 그토록 사랑보다 더 절실한 꿈과 야망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바로 그 꿈과 야망을 쫓을 수 있는 기회를 너무도 망설임 없이 쉽게 놓아버린다. 이고은이 그렇게 소중한가 묻는 성민아(오지은 분)에게 그런 자신의 감정을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기는 대개 이런 구도라면 성민아(오지은 분)는 이고은과 사랑의 라이벌로써 갈등을 빚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민아에게조차 벌써 강현민(최시원 분)이라는 잠재적인 파트너가 주어졌다. 성민아가 앤서니에 대해 갖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이미 성민아의 분량은 강현민과 얽혀 만들어진다. 성민아와 앤서니가 장차 어떤 관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보다, 혹은 성민아가 앤서니에 대해 갖는 감정이 이고은과 어떤 형태로 충돌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긴장보다, 오히려 성민아와 강현민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고 만다. 속물이지만 바보같을 정도로 자기에게 솔직한 – 실제 바보이기도 하다 – 강현민으로 인해 성민아는 어느새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된다. 그만큼 강현민은 성민아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가 돌아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멜로가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다. 앤서니는 이고은을 사랑하고, 이고은 역시 앤서니를 사랑한다. 앤서니를 사랑하는 성민아에게는 강현민이라는 파트너가 주어졌다. 강현민도 어느새 성민아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없다. 그늘지거나 굴곡이 있는 모습이란 보이지 않는다. 코미디의 장르는 분명하다. 다만 무엇을 소재로 한,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코미디인가. 더구나 코미디라기에는 앤서니의 병이 심상치 않다. 앤서니의 어머니 역시 처음부터 앞을 못보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고 있다. 드라마의 분위기가 조금은 바뀌게 될까?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하나같이 평면적이라는 것도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다. 앤서니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직접 앤서니의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탓에 어떻게든 강한 자신을 꾸며보이려 할 뿐 누군가를 사랑할만한 여유 따위 그에게는 없다. 굳이 필요없는 설명이았다. 원래 앤서니의 성격이 그랬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보여줄 때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말로써 전할 때는 그 여지가 사라진다. 앤서니는 원래 이런 인물이다. 그리고 이어진 이고은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모습이 있다. 단순해서 이해하기는 쉬운데 그만큼 알아가는 재미는 없다. 바닥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다. 궁금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역시 작가와 제작자 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드라마의 제왕>이라는 제목답게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웃고 찡그리고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자신의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본다. 어머니의 말이 힌트가 되었다. 이대로라면 진실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여주인공이 지나치게 시청자의 비난을 듣게 된다. 주인공이 살아야 드라마도 산다. 주인공인 이유다. 하물며 국내 톱배우인 성민아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미묘한 선택이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본을 수정하고 나면 다음 대본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수정은커녕 검토조차 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지문조차 없는 쪽대본이 있다. 단지 인물들의 대사만이 쓰여져 있을 뿐인 대본들이 드라마 제작현장에 전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더라도 지금 이 부분을 고치지 않고 넘어간다면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인가? 아니면 현재에 대한 만족인가? 이고은은 현재를 선택한다. 앞으로를 위해서도 지금 완성도를 높여야 작품이 좋아진다.
차라리 제작자와 작가가 같은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참견한다. 작가의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작가는 대본을 쓰고 제작자는 그 대본이 드라마로 완성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다만 그렇다기에는 너무 일찍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 걸린다. 제작자와 작가에서 남자와 여자가 되고 드라마 대본을 쓰는 그 현장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된다. 멜로다. 앤서니의 주장이 여기서도 통한다. 드라마는 멜로다. 그나마 앤서니의 병이 앞으로 큰 고비를 만들 듯하다.
굳이 긴장해가며 불편한 감정을 무릅써가며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큰 장점일 것이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시청자가 지치지 전에 바로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만 그것이 드라마가 너무 단순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무언가 굴곡이 있고 우여곡절이 있는, 다음이 궁금해지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너무 심심할 수 있다. 역시 모든 것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그래도 기대하는 것은 앤서니에게 닥친 이상이 지금까지처럼 그저 쉽게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역시 <드라마의 제왕> 또한 드라마일 것이기 때문이다.
편하게 본다. 긴장을 풀고 보아도 좋다. 그래서 심심하고 조금은 아쉽다. 원래의 의미 그대로의 코미디일 것이다. 보는 이를 즐겁게 행복해지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기나 고난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조차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의도한 것인가는 모르겠다.
제국이 사라졌다. 끝까지 앤서니 앞에 장애물로 등장할 것처럼 보이더니만 아예 오진완(정만식 분)을 제외하고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일까? 역시 모르겠다. 제국이란 단지 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했던 것인지. 하기는 지금 앤서니에게 닥친 위기가 그것을 대신하기에 충분해 보이기는 한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쉽게 간단하게 지나치고 말 위기는 아닌가.
쉬운 남자다. 알기도 쉽고 대하기도 쉽다. 솔직하기까지 하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이제까지 두르고 있던 허세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만다. 앤서니가 달라졌다. 달라지려 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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