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씨엔블루와 병신같은 논리...

까칠부 2013. 2. 18. 07:47

음악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음악을 훔쳤다.


밴드가 다른 밴드의 연주와 노래를 훔쳐 무대에서 연주했다.


변명한다. 방송국에서 훔쳐다 주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알고서 자신들도 무대에서 흉내를 내었던 것 아니던가.


설마 그것이 크라잉넛의 음악이고 노래이고 연주라는 사실을 몰랐다 말하지는 않겠지?


아무리 양보해도 최소한 자기들이 연주하고 부른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을 것이다.


아니 MR을 준비한다 했던가? 남이 연주한 음원에 연주하는 흉내만 낸다. 자기들이 연주한 것처럼.


어떻게 변명이든 변호든 하려 해도 여지가 없는 파렴치한 행위일 것이다.


음악인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최악의 행위를 그들은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왜 크라잉넛이 씨엔블루에 소송을 걸었는가만 문제삼는다.


아주 합리적인 척 크라잉넛의 씨엔블루에 대한 대응의 합리성을 따지며 씨엔블루의 잘못은 뒤로 감춘다.


엄연히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크라잉넛인데 단지 씨엔블루에 강경하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가 되어 버린다.


원래 한국사람 사고가 그렇다.


이를테면 시골마을에서 남자들이 한 여자아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주민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뭐 그런 것 가지고.


아무리 그래도 이웃간에.


남의 신세 망칠 일 있나?


그래서 정작 피해자가 마을에서 쫓겨나고는 한다.


정의 문화가 갖는 폐해다. 


그것이 옳단다.


적당히 싸바싸바 좋게좋게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면 그것도 몰인정하고 좋지 못한 행동일 것이다.


엠넷과 비즈니스적으로 합의를 봤다. 그게 뭐?


그런데 씨엔블루는 도저히 좋게는 못넘어가겠다. 피해자는 크라잉넛이라는 것이다.


참 말은 휘황한데 범죄를 저질렀어도 정황을 봐서 좋게좋게 봐주어야 한다.


딱 그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앞서 말한 성폭행 사건 당시 주민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주 엿같았는데 더 엿같다.


합의할만하니 했고, 합의할 여지가 없으니 않는다. 피해자가 결정한다.


돈 있고 힘 있고 인기있고 지명도 있으면 가해자도 피해자가 된다. 


한국사회의 또다른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정말 역겹다.


이성이란 아무데나 갖다쓰는 게 아니다.


강간은 저질렀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었으니 소송을 한 것이 더 잘못이다.


다른 주범과는 합의했으니 더 괘씸한 종범과 소송하려는 것은 가해자의 태도다.


엠넷과 씨엔블루는 별개다.


그걸 모른다면 평생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웃고 만다. 같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