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난 카라사태 때였을 것이다. 계약해지를 주장하는 3인측 입장에 동조하여 DSP를 공격하는 일부 카라팬들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대화는 선악이 아닌 의지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가? 대화로써 해결이 가능한 대상인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대화가 필요한가? 협상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대화에 나서야 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만일 대화를 원하는 대상이 있다면 앞장서서 주선함으로써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어느 미친 사람이 있다. 마약에 찌들어 몸도 못 가누고,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다.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미친놈이 가족을 인질로 위협을 해온다. 어쩌겠는가?
"저런 놈과 대화라고? 그게 말이 돼?"
"저런 놈에게 뭘 더 해 줄 게 있다고."
"협박하는 놈에게 대화를 하자는 것은 굴욕이고 굴종이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자칫 그 미친놈의 손에 들린 칼로 인해 가족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순간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극단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 놈이라면 그에 최대한 맞추려 노력하면서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말했듯 대화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지혜라 하는 것일 게다.
흥미로운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지 않으면? 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미친놈이 제풀에 칼을 놓고 인질을 풀어줄까? 당장 극단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칫 막을 수 있었던 끔찍한 참사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이 시킨다. 그건 굴욕이다.
과거에도 한창 포탄이 날아다니고 창칼이 부딪히는 와중에도 전쟁당사자들은 부지런히 사신을 보내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항복을 권하거나, 아니면 휴전을 제의하거나, 그도 아니면 전쟁의 방식에 대해 논의하거나. 그 또한 전술이다. 대화에 신경이 쏠린다면 극단의 선택을 행동에 옮기기도 매우 유리하다.
국가의 정의와 개인의 정의는 다르다. 아니 같다. 전략적으로는 같다. 그러나 전술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제한되어 있다. 그것을 포기한다면 모든 것을 상대에 맡기는 것과 같다. 차라리 전쟁을 하던가. 선제공격으로 아예 위협을 근절한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그저 무대책에 손가락만 빨고.
감정은 논리가 아니다. 하다못해 작은 사업을 하더라도 때로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감정쯤은 한쪽 구석에 묻어두어야 하는 때가 있다. 대상이 아무리 끔찍하도록 혐오스러운 존재라 할지라도.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내가 이래서 인터넷을 싫어한다. 하기는 인터넷만일까? 인터넷을 채우고 있는 다수가 바로 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다수일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재미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것과 좋지 않은 것... (0) | 2013.06.08 |
---|---|
"정" 많은 한국인 - 고양이가 가출하다... (0) | 2013.05.03 |
걸즈 앤 판쩌 - 병맛과 오덕의 극치... (0) | 2013.04.09 |
백수의 단계... (0) | 2013.04.06 |
대한민국과 술권하는 사회... (0) | 201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