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란 비일상이다. 평범한 일상속에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과,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특별한 감정들이 바로 드라마를 이루는 전제가 된다. 드라마틱하다는 말은 그래서 평범한 일상과 대비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나 상황에 대해 관용적으로 쓰이고는 한다.
아무리 막장이네 뭐네 비판을 가해도 결국 대중으로부터 선택받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그같은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의 드라마들인 것이다. 드라마의 재미는 자극의 강도와 충격량에 비례한다. 자극이 강할수록 자연스럽게 그리로 눈이 돌아가게 되고, 자극의 충격량이 강하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보고 듣고 자신도 모르게 기억에까지 새기게 된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는 것은 보다 강한 인상으로 기억된 드라마들인 것이다. 차라리 욕하고 싶어질 정도로 강하게 기억되는 드라마들인 것이다.
하기는 그래서 안희선(한채아 분)이 돌아버리려 하는 것일 게다. 의도적이었다.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완전히 돌아버릴 것이라는 선언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필 안희선의 선언이 있고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수영(신하균 분)과 노민영(이민정 분)은 자신들이 몰래 만나고 있는 모습을 그녀에게 들키고 만다. 마치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말처럼 완전히 돌아버리라 말하려는 것처럼. 이제 안희선이 악역으로 돌아서게 되면 드라마에도 격정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될까?
초반 드라마를 끌고 온 흥미요소였을 것이다. 그래도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것도 판사씩이나 지냈던 엘리트가, 더구나 서로 대립하고 있는 소수야당의 대표에게 반해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어쩔 줄 몰라한다.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거대여당의 횡포에 맞서싸우던 소수진보정당의 대표가 본능이 시킨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서로에게 이끌리면서도 그같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이 애처로움과 함께 얄궂은 웃음마저 짓게끔 만든다. 그것이 바로 드라마의 재미였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게 되었다. 배경이 되어주고 있는 정치현실 역시 차라리 우스꽝스럽기만 할 뿐 어떤 긴장할만한 위기감까지 느끼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냥 실제의 정치현실을 풍자하며 잠시 웃고 넘어갈 뿐이다. 송준하(박희순 분)는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고, 안희선의 김수영에 대한 태도는 미묘하게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더 이상 무슨 갈등요인이 있을까? 무엇으로 긴장하고 간절하게 바라게 될까? 기껏해야 김수영과 노민영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보좌관으로 인한 헤프닝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대한국당의 대표 고대룡이 추진하고 있는 안희선과의 혼담 역시 안희선이 지금처럼 단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뿐인 모습으로 남아있어서는 크게 두 사람의 관계에 위협이 되어주지 못한다. 아무리 보수언론의 사주인 안희선의 아버지가 나서고, 거대여당의 대표인 김수영의 친아버지가 나서도, 정작 당사자인 김수영과 안희선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기만 하다. 김수영을 좋아하지만 안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떤 놀라거나 긴장할만한 큰 사건을 기대하기란 무리인 것이다. 역시 너무 일찍 두 사람이 이어진 덕분에 드라마에 드라마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어째서 아필 안희선인가 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너무 평범해진다. 이루지 못할 사랑에 절망하며 집착하는 악녀의 존재란 너무나 흔하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믿음을 배신당하고 악녀로 돌변한 캐릭터란 넘쳐난다. 더구나 부자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까지 배경으로 두고 있다. 노민영에게 위협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정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특별함을 포기하는 너무나 뻔하고 안이한 선택일 것이다. 그저 안희선이라는 악역이 있어 노민영을 괴롭히고 그들 커플을 위기로 내몬다. 이제 겨우 5회분량이 남은 상황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희선이 악녀로 그려졌더라면. 그래서 처음부터 안희선을 상대로 불리한 싸움을 이어가며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였더라면.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흔하다. 그래서 작위적이기도 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는가. 한 편으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분량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희생된다.
처음부터 안희선이 악역이었고 그런 안희선과 노민영이 맞서싸우는 내용이었다면 시청률도 조금은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분명한 악역의 존재와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노민영의 존재는 사람들이 이입하기 쉬운 대상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안희선에 의해 모두가 곤란을 겪고 궁지에 몰리는 순간 안희선에 대한 미움 만큼이나 그녀의 파멸에 대한 진지한 기대와 바람이 더욱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도록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너무 뜬금없다. 돌아버리겠다는 안희선의 말처럼 근본없이 떠돈다.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주중 심야시간대에 방송되는 미니시리즈는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와는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한다. 일상의 피로 속에 휴식마저 미루어가며 보게 되는 드라마인 것이다. 그런 만큼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압축된 재미와 내용이 필요한 것이다. 재미를 일깨울 수 있는 강한 무엇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저 기분좋은 헤실한 웃음은 차라리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에나 어울린다. 무게감이 부족하다.
드라마로써는 재미있다. 캐릭터 또한 개성적이고 흥미롭다. 정치와 정치인이라고 하는 배경과 소재 또한 무척 관심이 가는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청률이 나와주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청자를 TV의 앞으로 불러들일만한, TV앞에 앉은 시청자로 하여금 채널을 고정하도록 유혹할만한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 드라마로서 실격일 것이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 그것은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앞으로 남은 5회 가운데 안희선은 어떻게 완전히 돌 것이며, 온 힘을 다해 돌아버린 자신을 보여주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김수영과 노민영 두 커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위기에 빠지도록 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제한된 시간 동안 두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고 다시 그 위기를 해소하여 계기까지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안희선, 아니 한채아가 급하다. 그녀에게 너무 많은 짐이 지워졌다. 그것만이 필자를 다시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그동안 너무 편했다. 지나칠 정도로 너무 쉬웠다. 그리고 늦었다. 분위기를 바꾼다. 결론은 예정되어 있다. 새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도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한채아에게 달렸다. 그녀는 악해야 하며 사랑스러워야 한다. 결국은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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