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 정유미의 잘못, 그냥 내가 잘못한 게 편해!

까칠부 2013. 5. 14. 08:48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니면 회사나 부장님이 잘못한 거잖아. 그럼 너무 무섭잖아. 그런 큰 회사가, 부장님이 잘못한 거면 그거 너무 무섭잖아. 그냥 나는... 내가 잘못한 게 편해!"

 

굳이 그렇게까지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말 그대로 정주리(정유미 분)가 잘못한 것이 맞다. 아니 전제가 잘못되었다.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것은 일개 계약직에 불과한 정주리가 아닌 부장인 황갑득(김응수 분)이고 바로 그녀를 고용하고 있던 회사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하나는 법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째서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은 빨간 불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파란 불을 보면 그제서야 길을 건너기 시작하는가?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누가 정했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호등 불빛을 따라 멈추고 걷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도 그같은 결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해진 규칙에 그저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어제까지도 대마초에 대한 법규정이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법은 정해졌지만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이 죄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마초를 피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그런 모두를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똑같은 대마이고, 그리고 같은 사람인데도 법이 정해지고 말고에 따라 그 행위에 대해 내려지는 판단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그들 당사자들이 법제정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가? 만일 그런 법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대마초를 필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오늘부터는 미터법만 써야 한다고 말한다. 하기는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제는 양력만을 쓴다. 원래는 일본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음력을 사용했었다. 내가 그러고자 해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그리 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은 킬로그램이 되고, 척은 센티미터가 된다. 음력설은 양력설로 바뀌고 만다. 그것이 바로 권력인 것이다. 저울의 추다. 세상을 가르는 기준이다. 옳고 그르고, 바르고 틀리고,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나누는 기준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사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도 사규가 있다. 누가 정하는가?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 어떤 직원을 뽑을까? 직원이 결정하는가? 아니면 회사가 결정하는가? 어떤 직원이 승진하고, 어떤 직원이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어떤 직원은 징계를 받으며, 어떤 직원은 해고를 당한다. 물론 그럼에도 회사 또한 지켜야 할 보다 상위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당하게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경우 보다 상위의 법에 기대어 억울함을 해소하려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거나 회사에서 누군가 해고되거나 계약을 해지되어야 한다면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회사가 정한다. 이런 직원은 - 그리고 심지어 계약직은 우리 회사와는 도저히 맞지 않아 같이 일하기 힘들다.

 

더구나 황갑득도 알고 장규직(오지호 분)도 아는 사실이다. 미스김(김혜수 분)도 안다. 어째서 계약직인가. 어째서 비정규직인가. 노동시장유연화가 그 명분이었다. 기업이 보다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기업의 고용에 대한 비용과 수고를 줄여 보다 수월하게 본연의 목적인 이윤추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도 산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도 살고 국민들도 산다. 다시 말해 아무때고 필요할 때 쉽게 고용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계약직이고 비정규직인 것이다. 가족이 아니다. 동료 또한 아니다.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수단이고 도구다. 필요없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가족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같은 분위기라고. 회사는 또다른 집이고 동료는 또다른 자신의 가족이다. 회사에 헌신하는 만큼 회사 또한 자신을 지켜준다. 회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만큼 회사 또한 자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준다. 일단 한 번 회사에 들어가고 나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정년퇴직할 때까지 회사와 함께 한다. 동료들과 함께 한다. 그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 또한 만족을 얻는다. 그같은 믿음이 있어 왔다.

 회사와 자신은, 동료들과 자신은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회사가 잘 될 때 자신도 잘 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이면에는 법에 의한 고용에 대한 강력한 보장이 있었을 것이다. 함부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된 전제였다. 공동운명체라지만 그 모든 비용은 회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고정도(김기천 분) 과장과 같이 더 이상 쓸모를 다한 직원이라도 회사는 고용을 유지한 채 적지 않은 급여를 계속해서 부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이 잘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기업의 사정이 어려울 때면 직원들의 임금을 깎거나 혹은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직원을 줄여 임금을 깎을 수 있으면 그 만큼이 모두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법을 정하는 쪽에서 그리 정해준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계약직이라는 것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당신은 그런 계약직이다.

 

그것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역시나 사회초년생이다. 아직 꿈을 꿀 수 있다. 정규직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비정규직의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 계약이 조기해지되는 상황에서조차 같은 사무실의 동료들과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마치 가족같다. 집같다. 현실은 그같은 그녀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한다. 아니 원래 그렇게 돌아갔던 것이었다. 그녀 자신만 알지 못했을 뿐. 계약직은 그런 것들은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같은 룰을 어기게 되었다면 그에 대한 댓가도 그녀가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속한 사회의 룰에 대해 알지 못했던 그녀 자신의 죄인 것이다.

 

과연 황갑득 부장은 미스김의 협박에 굴복해서 정주리의 계약해지를 철회했던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미스김을 대하는 황갑득 부장의 모습이 매우 당당하다. 하기는 고작 유도시합 도중 약속같지도 않은 약속을 한 것 가지고 기왕에 결정한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대기업의 부장씩이나 되는 이가 보일만한 처신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어차피 장규직까지 찾아와 계약해지를 철회해달라 부탁하는데 굳이 더 이상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느라 완고하고 냉혹한 상사라는 이미지를 가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처음부터 황갑득이 의도한 것은 정주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정규직의 이름으로 된 기획서였고 그것은 무정한의 굴복으로 이루어진 뒤였다. 적당히 미스김과의 내기를 핑계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인상을 관리한다. 계약직 하나 자르고 말고 하는 정도는 황갑득에게 있어 그렇게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다. 대신 황갑득은 자신을 거스르려 한 무정한에게 그 댓가를 치르도록 하려 한다. 미스김과의 내기는 단지 그 계기가 되어주었을 뿐이다.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정주리의 절망에 빠진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 필자 역시 기억한다. 어느 순간 회사가 망하고, 갑자기 어느날엔가 해고를 통보받았을 때. 모아놓은 돈은 없고 다시 취직할 수 있으리라는 기약도 없고, 지하철역에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는 노숙자의 처지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세상이 막막하다. 땅이 꺼지는 것 같고 다리는 풀려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다고 하는 상실감과 허탈함이었다.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길게 통화를 하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모두를 볼 수 없다.

 

사회초년생이 갖는 꿈과 희망, 그리고 기대,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들을 무참히 짓밟고 비웃는다. 잘해보자는 일들조차 결국은 절망으로 돌아오고 만다. 희망이 컸기에 절망 또한 컸다. 세상은 학교와 같지 않다. 회사란 집과는 전혀 다르다. 비정규직이다. 계약직이다. 무엇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가련한 처지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주리에게 더욱 이입하여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현재진행형이다. 그 반대편에 미스김이 있다. 그녀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미스김 자신으로서도 사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결정은 황갑득 부장이 한다. 미스김에게 그것을 뒤바꿀 수 있는 수단따위 전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미스김은 정주리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일까? 후회를 남기기 싫다. 다시 미련을 남긱 싫다. 그녀 자신도 수렁으로 빠져든다. 관계라는 이름의 수렁이다. 과거의 망령이다.

 

무정한은 자신의 무지와 나태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 정주리마저 휩쓸린다. 그 기획안을 황감득은 장규직에게 맡기려 한다. 사사건건 자신에게 도전하는 무정한에게 현실을 깨닫도록 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미스김은 황갑득의 의도를 무산시킬까? 그리고 어떤 말로써 무정한과 정주리에게 현실을 일깨우게 될까?

 

주인공은 분명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현실은 먹먹하기만 할 뿐이다. 아프게 재미있다. 지나는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 아깝다. 중독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