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가 지치기라도 한 걸까?"
그것은 이석호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여지훈(주상욱 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지난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죄책감이,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복수의 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내를, 뱃속의 아이를, 무엇보다 자신을 끔찍한 지옥으로 내몬 상대에 대한 증오의 끝에서 차라리 체념을 선택한 그를 통해. 용서한 것도, 잊은 것도 아니다. 단지 지쳤을 뿐이다. 지쳐서 놓아버린 것 뿐이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 직접적으로 악을 행한 원수에 대해서조차 악의를 가지기에 너무나 선량한 존재다. 정확히는 약한 존재다. 그토록 다짐에 다짐을 하고 복수라고 하는 악의를 다져보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에조차 지치고 환멸을 느낀다. 문득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놓은 채 물끄러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여지훈 자신처럼. 그것이 옳다고 여기면서도, 아니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경계에 선 채 헤매다가 끝내 주저앉는다. 하물며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들어온 상대에 대해서조차 여전히 사랑하겠다 말하는 여자 앞에서.
그것은 어쩌면 또한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은 하지 못했다. 자신은 끝내 아내를 그 지옥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 지옥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아내를 그는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었다. 그녀라면. 자신의 죽음으로 그녀라도 지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면. 자신은 하지 못했지만, 강종윤이라도 그 지옥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그것은 아내에게 해주지 못한 자신의 미련이기도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은 그토록 고통스러운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평안의 세계로 가려 한다.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할 필요 없는 그곳을 향해. 어차피 살아서 볼 수 없을 결과보다 단지 순간의 기대만을 가지고 그는 떠난다.
한 번이었다. 우연한 만남이었고, 순수한 선의였고, 즐거운 경험이었으며, 놀라운 행운이었다. 하필 그 순간의 짜릿함을 기억해 버린 탓일 게다. 잭팟을 터뜨리고 돈을 따던 순간의 쾌락을 기억해버린 탓에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아마 돈을 잃었다면 또 그것은 그것대로 잃어버린 돈에 대한 아쉬움으로 도박장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 테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헤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못가는 게 아니다. 갈 수 있다. 얼마든지 카지노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않는다. 그것은 지독한 자기모멸이기도 했을 터다. 그런데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방법은 하나다. 그것밖에는 없다.
그렇게 임신한 몸으로도 쾌락을 쫓아 카지노를 전전하고, 마침내는 도박자금을 마련하려 창녀와 같이 몸을 팔고, 그렇게 매독까지 걸려 아이마저 전염되고 말았다. 그런 자신과 그런 자신을 지켜봐야 하는 남편 이선호와. 끝끝내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마는 아내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남편 이선호. 어쩌면 그 순간 이선호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는 마음 한 구석의 작은 안도가 아니었을까? 머리로 납득하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그것이 최선이었노라고. 하지만 강종윤에게는 아직 그를 사랑해주는 아내가 있다. 아이가 있다. 자신도 편해지려 한다. 마지막 웃음에 그래서 후련하도록 서럽다. 그는 웃는다.
그리움도 중독된다. 기억에 중독되는 것이다. 가장 즐거웠던 기억에 사로잡히고 만다. 강종윤의 아내처럼. 백독사(김상호 분)도 여지훈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여지훈에게 매몰차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투정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자신을 찾아주지 않은 여지훈에 대해, 조금 더 일찍 자신을 찾아와 사과하지 않은 여지훈에 대한, 어째서 그는 자기가 떠나겠다 했을 때 간절히 잡지 않았는가. 그러나 결국 마지막 순간에 백독사도 여지훈의 판단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만다. 여전히 그들은 팀이었고 신뢰하는 동료였던 것이다.
어쩌면 2부는 여지훈의 내면을 쫓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여지훈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죄책감과 복수,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한 환멸과 피로, 그럼에도 나갈 수밖에 없는 현재의 모습들. 정선카지노를 중심으로 모여든 추악한 군상들과 함께 자신조차 돌아보기 끔찍한 내면의 모습들이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그려진다. 벌써 8년이다. 그가 견뎌 온 시간들이다. 과연 마지막 순간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함정이었다. 죽은 임도술과 임도술의 동생 임만섭의 처가 나란히 매독치료를 받았다. 임만섭은 임도술의 돈을 찾고 있다. 임만섭에게도 어떤 동기가 보인다. 그러나 아니었다. 임만섭이 가지고 있던 사진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며 다른 답을 찾아낸다. 이선호의 아내 홍정임의 죽음은 바로 그 매독으로 인한 것이었다. 사소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드라마에 치밀한 디테일을 더한다. 항상 감탄하는 바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수사드라마가 있다. 일요일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좋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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