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아마 공감을 넘어선 난감이었을 것이다. 매주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울고 웃고 공감하며 마음껏 그 시간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작 리뷰를 쓰려 하면 마땅히 쓸 것이 없다. 이건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말이다.
필자 역시 혼자다. 아니 정확히 고양이 세 마리와 현재 동거중이다. 그래서 더 이입하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지금 주위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몰래 자신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번주 김광규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나 데프콘이 자신이 만든 요리에 스스로 감탄하며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랬다. 외롭구나...
모든 게 다 때가 있구나... 그런 것 없다.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뿐 하려면 다 하게 된다. 설사 처음 목표한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과정이 좌절하는 시간들 만큼이나 보람차고 즐겁다.
문제는 혼자라는 것이다. 때로 현실에 좌절하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그런 때는 너무나 절실하다. 때로 비웃고 놀리면서도 동기를 부여해주는 누군가의 존재 또한 그런 때는 너무나 간절하다. 누군가 곁에 있어줌으로써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런데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다 보니 출구없는 감정의 함정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스파게티에 연신 감탄하며 만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프콘 역시 그런 점에서 김광규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도 데프콘이 만든 스파게티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맛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혼자 사는 사람이 만든 요리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맛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만든 스스로에게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맛있거나. 누군가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주지 않는 한 때로는 맛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실제로도 대상을 맛있게 여기도록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면 값싼 이스턴트 스파게티만으로도 전문점에 못지 않은 풍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맛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유도가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유도였고, 실제 유도를 배우는 동안에도 의외의 유도에 대한 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야 당연히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기에는 이미 서인국 자신이 다양한 격투기를 배워왔던 터였다. 세상에 마냥 쉽기만 한 운동이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서 혼자서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 보면 차라리 그것은 자괴감으로 바귄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과연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혼자서 하는 운동이란 한계가 있다.
과연 김태원은 진짜 연기를 배우고 싶어 이성재를 집으로 부른 것일까? 아니면 이성재를 집으로 부르기 위한 핑계로써 연기를 떠올렸던 것일까?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말과는 달리 정작 김태원의 연기에 대한 상식은 처참할 정도였다. 하기는 김태원 자신이 일반적인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먼 캐릭터이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결국 김태원으로 하여금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 결심하게 만든 한 계기가 바로 이성재라고 하는 배우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배우인 이성재가 곁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따라배운다. 말과는 달리 연기에 대해 그다지 열정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때문이 아니었을까.
뭐든 혼자해서는 재미없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없던 흥미와 관심 같은 것도 생기게 된다. 아니면 더 재미있으려 자기에 도취되거나 자기를 놀림거리로 삼게 된다. 자학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자기를 연민하며 위로한다. 더욱 자기에게 빠져들며 갇히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 모든 진화의 끝은 두껍게 커튼을 친 채 혼자만의 시간속에 철저히 고립되어있는 김태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인형이나마 이름을 붙이고 혼잣말이라도 걸 수 있는 대상이 있어 조금은 외로움이 덜어질지 모르겠다. 필자 역시 고양이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며 한가한 시간들을 흘려보내고는 한다. 무언가 동기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심심하기만 하다.
영어를 배우러 가서 정작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김광규의 모습은 우스웠다. 그러면서도 혼자 좌절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울컥했다. 너무 힘들어서 혼자서 파스를 붙이느라 끙끙대는 서인국의 모습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 이유였다. 필자라도 더 이상 영어를 배울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유도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시들해질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들도 너무 많은데 굳이 피곤하게 그런 번거로움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면 그를 위해 설마든지 자신의 일상도 파괴할 수 있다.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도 생겨나게 된다. 번거로움까지도 마냥 즐겁다.
확실히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외롭다. 각자가 외로움을 이겨내는 나름의 노하우일 것이다. 서인국의 방이 지저분한 이유다. 그런 모습들이 우스우면서도 어쩐지 애처롭다. 짠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더구나 닮아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자기자신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무어라 한 마디 하기가 그리 무겁고 부담스럽다. 자기고백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아닌 남의 이야기가 마냥 재미있기만 하다.
시커먼 사내들이다. 젊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어쩌면 평범 이하의 남자들일 것이다. 그나마 젊고 잘생긴 서인국의 일상의 모습이라는 것도 그다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흔히 볼 수 없는 다른 누군가의 꾸미지 않은 일상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낸다. 누군가는 공감해서. 누군가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신기해서. 그리고 전혀 꾸미지 않은 소탈함이 새롭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가까우면서도 특별하다.
어쩌면 관음이란 본능일 것이다. 자기와 닮아서, 혹은 자기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그것을 굳이 훔쳐보려 한다. 엿보려 한다. 공감하고 신기해하고 그런 일상들에 호기심을 느끼고 즐거워한다. 단순하지만 본질에 충실하려 한다. 재미있다.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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