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처음으로 이 드라마가 정치를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배경으로써만 쓰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구색만 맞추는 정도의 소재가 아니었다. 정치가 로맨스의 중심에 놓인다.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입장에 있는 두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현역정치인인 그들의 사랑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념도 다르고, 지향도 다르고, 서로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살아가는 방식까지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기는 그래서 전혀 순탄치 못했던 두 사람의 사이였다. 놀랐고, 당황했고, 받아들일 수 없기에 반발하고 거부했다. 그러나 마치 운명처럼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이후의 과정까지도 순탄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사랑을 하게 된 두 사람의 로맨스일 것이다. 드라마의 의도였을 것이다.
사랑이란 특별하다. 모든 사랑이 특별하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하게 만나 특별하게 사랑을 하고 특별하게 이루어진다. 그것이 로맨스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사랑을 하게 되면 특별해진다. 아무리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하는 순간 특별한 순간이 된다. 그래서 모든 연인은 특별하다. 그렇다면 서로 정치인이고,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은 어떤 특별한 사랑을 하는 특별한 연인이 될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지금까지 드라마가 그려온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란 사춘기 소년소녀의 순수함을 간직한 장년에 접어든 어른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정치란 단지 배경이 되고 소재가 되어 줄 뿐이다. 굳이 정치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사랑을 하게 되어서였을까?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장애도 남아있지 않다는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부딪히기 시작한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 개인으로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다.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별개다. 서로를 사랑한다.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연민하고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그와는 별개로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이 있었을 터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그에 대한 대안, 그리고 그를 구체화한 정책까지,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는 이념적 차이가 너무나 명확하다. 현실의 모순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는 같지만 그 방법에 있어 두 사람은 정치인으로서 전혀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갖는다. 그것이 충돌한다.
비로소 '정치인' 연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정치인이면서 연인이다. 연인이면서 또한 정치인이다. 그것이 갈등의 이유가 된다.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비로소 그들은 연인으로서 그들이 바라는 행복한 결말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쉽다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두 사람의 갈등을 지켜보기에는 고작 3회분량만이 앞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갈등이 심화되기도 전에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해피엔드일 것인가? 비극으로 끝내기에는 드라마 자체가 가벼운 코미디였다. 그래서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또 하나 아쉬움이라 하겠다. 마음조이며 기다려서 보는 재미가 부족하다.
그러면 어째서 지금까지 정작 정치인의 사랑이야기에 정치적인 문제가 빠져 있었는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부분에서 이 드라마의 정치드라마로서의 탁월한 점이 드러난다. 다름아닌 두 연인 가운데 남자쪽인 남자주인공 김수영(신하균 분)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비록 출생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더구나 어머니까지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그는 어찌되었거나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주류라 할 수 있는 판사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른바 엘리트다. 굳이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에는 그는 이미 개인의 충분한 실력과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자기경험을 가지고 있다. 노민영(이민정 분)과 처음 시장에 갔을 때 시장상인들더러 왜 스스로 노력하려 하지 않느냐고 다그친 것이 그 이유다.
바로 그것이 보수다. 물론 현실에 아주 문제가 없을 수는 있다. 모순도 있고 부조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만 있다면, 그리고 충분히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그런 가운데서도 승자가 될 수 있고 주류로 편입될 수도 있다. 결국은 능력의 부족이고 노력의 부족이다. 다 자기가 할 탓이다. 다시말해 그같은 현실에서의 정책이라는 것이 대한국당이 아닌 노민영의 녹색정의당의 것이어도 그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실제 그는 정치현실을 바꿔보겠다고 국회의원 뱃지까지 달고 난 뒤에도 정작 자신이 추진해야 할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단지 자기가 뜻한대로 되지 않으니 정치를 그만두겠다. 온실속 엘리트의 청순하기까지 한 정의감인 것이다.
즉 노민영과 김수영 사이의 정치적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까지도 결국은 노민영이 먼저 김수영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조차 김수영은 노민영과 자신이 갖는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고민하지도 갈등하지도 않았다. 그저 노민영을 사랑하는 정치인이 아닌 한 남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에만 충실했을 따름이었다.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무엇이 어떻게 되더라도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자신감일 것이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맞닥뜨려온, 그리고 김수영과 데이트하는 도중에도 항상 그것을 신경쓰며 사는 노민영은 김수영과의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도 성공할 사람은 다 성공하고 돈 벌 사람들도 다 돈을 번다. 굳이 바꿀 필요 없다. 아니 어떻게 바꾸든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비웃고 비난한다. 어떤 정책을 채택할 것인가? 어떤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적용시킬 것인가? 어떻게 현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것인가? 그래서 서로 싸우기도 한다. 서로가 바라보는 미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도 다르다. 그러나 그런 것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는 입장에서야 서로 싸우지 않고 좋게좋게 지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일반적인 의미의 보수보다 더 나쁠 수 있다. 그래도 보수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갖는다. 김수영과 같은 타입은 그런 노력조차도 개인적인 도덕적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하필 노민영과 첨예하게 부딪히는 토론의 주제가 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문제다. 김수영과 어울린다.
물어보니 대답한다. 의견을 물으니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동의를 구하는 경우는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도덕적 목적만 드러내려 할 뿐이다. 아이같다 했지만 진짜 아이다. 정치에 있어 그는 노민영보다도 한참 어린 갓난아기 수준이다. 선한 의도가 있고 높은 의지가 있는데 그 방법이야 무슨 상관인가? 좋은 쪽으로 옳은 방향으로 노력해서 이루면 모두가 잘 해결될 것이다. 이념의 차이도, 신념의 차이도, 정책적인 차이에서 오는 갈등들도 하나의 정의를 찾아내 실천한다면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성공해 왔으니까.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김수영에게 진짜 정치를 보여준다. 진짜 현실을 알려준다. 정치인으로서 김수영이 각성한다.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대안을 찾아간다. 그저 편리하게 좋은 머리로 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그러나 로맨스이고 코미디다. 더구나 심지어 정치인에 대해서까지 기계적인 중립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그같은 첨예한 정치적 입장을 그려내기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누가 더 옳고 누가 덜 옳고 하는 판단이 개입되며 드라마에 대한 판단까지 내려진다. 김수영이야 말로 그같은 한국의 정치문화를 보여주는 축소판일 것이다. 그저 정의로울 뿐인 백지와도 같은 순수일 것이다.
의도한 것일까? 사춘기 소년과도 같은 남자 김수영의 순수와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정치인 김수영의 청순함이 절묘하게 대비된다. 그런 김수영을 사랑하면서 또한 연민하는 것은 노민영의 몫이다. 김수영과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갈등하는 것도 노민영의 몫이다. 노민영의 순수는 모성의 순수와 닮아 있다. 하필 보수이고 하필 진보다. 물론 그럼에도 친인척보좌관의 관행을 일소한 것은 보수당인 여당의 대표 고대룡(천호진 분)이었을 것이다. 현실정치인이다.
결국 안희선(한채아 분)은 자신의 악의를 감당하기에도 선한 순수를 간직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순간 분노했지만, 그래서 미움도 가져봤지만, 그러나 결국 자신의 양심까지 속이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그란 악의조차 버거워하는 자신의 선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송준하(박희순 분)에게 메일을 보내고 만다. 말려달라. 하필 그 대상이 송준하라는 점에서 또다른 전개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제 겨우 3회, 안희선에게도, 송준하에게도 좋은 날이 찾아올 때가 되었다. 불쌍해지기에는 너무 불쌍한 캐릭터가 또 안희선일 것이다. 여전히 그녀는 예쁘다.
재미있어지려 하는데 바로 그것이 드라마의 한계였다. 기왕에 정치를 소재로 한 로맨스였을 텐데,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남녀의 사랑이야기였을 텐데, 그러나 평범한 어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아직 정치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버겁다. 그저 정치를 희화하고 조롱하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만다. 어쩌면 미국드라마 <뉴스룸>에서와 같은 보다 치열하고 진지한 현실정치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매력적인 남녀주인공이었을 것이다. 흥미를 끄는 소재였을 것이다. 현실정치와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적절히 버무려내려 했을 것이다. 그 조화가 깨졌다. 정치가 너무 버거웠다. 흔한 사랑이야기가 순수의 경계를 넘지 못한 유치함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까지 안희선조차 악녀가 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고 만다. 한 걸음이 부족했다. 아쉽다. 그래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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