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일베와 광주 - 그 필연의 이유...

까칠부 2013. 5. 18. 23:29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가해자로써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이었다. 반성하고 사죄하며 역사의 진실이 묻히지 않도록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아무리 일본의 우익이 애써 부정하고 덮으려 해도 역사의 진실은 생생히 남아 그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어떤가? 물론 시작은 몇몇 수뇌부의 말도 안되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겼던 수많은 진압군들이 있었다. 하기는 광주만일까? 4.3 당시에도 그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던 당사자들은 아직도 그것이 빨갱이를 때려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 아니 당연히 그리했어야 했던 정당한 행동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들 자신이 저질렀던 강간과 학살과 방화와 약탈, 파괴행위가 나라를 위해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우국충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고작 그런 정도의 나라에 불과하다.

 

진압군으로 있던 당사자들이 스스로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다. 반성하지도 사죄하지도 않는다. 역사를 밝히려 하기보다 오히려 묻고 혹은 호도하려 한다. 그런 생각마저 하게 된다. 당시 가해자로 현장에 있던 사람 가운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 누군가가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는 당시의 역사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게 될까?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로 놓고 보자. 피해자는 여전히 그 한을 가슴에 깊이 묻고 살아가는데 사회는 전혀 그에 대해 반성도 사죄도 않고 그저 적당히 묻으려고만 하고 있다. 시끄럽다고. 지난 일이라고. 민폐라고. 과연 우리는 저들에게 역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있었는가?

 

일베는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베에 분노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일베에 이끌리는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있다. 제대로 된 바른 역사를 배워야 할 학생들이 그같은 왜곡된 사실들에 물들어간다. 어째서?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 앞에 그래도 경제는 살렸지 않느냐 말한다. 경제적 성과만을 보겠다는 그 의도에는 그런 작은 죽음따위 얼마든지 밟고 지나갈 수 있다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다.

 

가해자의 증언 없이는 어떤 범죄든 반쪽짜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의 고백이 있기 전에는 재판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피해자의 입장만이 남게 된다. 여지를 남기게 된다.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끝까지 가해자가 무죄를 주장한다면 피해자는 오히려 그 죄까지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성폭행을 들 수 있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큰 죄를 짊어지고 평생을 고통속에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수준인 것이다. 일베는 그런 대한민국 사회의 '정상'에 속한 것이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가해자가 있는데 정작 가해자의 진실이 없다. 반쪽짜리 진실이다. 역사가 묻힌다. 뒤틀리고 엇갈린다. 거기서 괴물이 태어난다. 미처 생명을 얻지 못한 진실이 돌연변이가 되어 도리어 역사를 삼켜버리고 만다. 누구의 잘못인가? 특정 사이트? 그 사이트에 기생하는 덜떨어진 어린아이들? 그러면 그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과격하게 쓰지 않기가 무척 힘들다. 감정을 억누르고 최대한 냉정하게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이토록 버겁고 무겁다.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야후에 블로그가 있을 때는 굳이 말을 가리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내 블로그지만 그러나 찾아와 읽는 사람들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짓은 말하지 않되 최대한 거부감없이 읽힐 수 있도록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하기는 이제 겨우 30년이다. 아직 늙어 죽을 때는 되지 않았다. 죽기 전이면 그래도 양심고백을 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올까? 한국인의 양심을 재는 바로미터일 것이다. 일본은 그것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것이 없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피해자의 억울함은 보이는데 가해자의 반성이나 사죄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이 가려진다. 일베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상'이다. 일베가 정상인 이유. 그들의 존재가 필연인 이유. 우울한 하루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