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박수하라는 치트, 부실해지는 이유

까칠부 2013. 6. 20. 08:50

두 가지 시험문제가 있다. 하나는 문제를 제시하고 각자 알아서 그 답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와 답을 제시하고 그 풀이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연 문제를 풀어야 하는 입장에서 어느 문제가 더 까다롭고 어려울까?

 

답이야 어떻게든 구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답이 옳다면 그 과정도 옳은 것이다. 그러나 답이 이미 나와 있다면 그 답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은 옳은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적합한 방법과 과정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과정을 구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작가가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다. 박수하(이종석 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재판정에서, 혹은 의뢰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박수하가 상대의 마음을 읽기만 하면 그것으로 모든 진실은 낱낱이 드러나고 만다. 첫에피소드에서도 그래서 고성빈(김가은 분)의 무고함이나 피해자인 문동희가 거짓증언을 하는 이유에 대해 굳이 시청자 자신이 궁금해 할 여지조차 없이 박수하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남은 것은 변호사인 장혜성(이보영 분)이 그같은 박수하가 알아낸 사실들을 바탕으로 그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재판에서 정당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거꾸로였다면 사실 더 편했을 것이다. 고성빈이 무고한가는 아직 모른다. 문동희가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고성빈을 의심하면서도 고성빈이 주장하는대로 그녀의 주위와 행적을 쫓아 조금씩 진실에 다가간다. 문동희의 증언 가운데서도 일관되지 못한 모순점을 찾고 다른 주변의 정황과 진실을 밝혀간다. 알고 보니 고성빈과 문동희 사이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고, 당시 사건이 있던 주변에서는 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진실은 이것이다. 재판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고 법의 정의를 통해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아마 대부분의 법정드라마가 추구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어쩌면 시청자가 가장 궁금하게 여길만한 고성빈의 무죄여부에 대해서부터 벌써 박수하의 입을 빌어 무고함을 밝히고 시작하고 있었다. 문동희의 거짓 증언에 대해서도 문동희가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정도로 여지를 남겨두고는 있었지만 결국 문동희는 고성빈의 피의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고성빈의 무죄가 확실하다고 할 때 나머지 부분을 무엇으로 채워넣겠는가? 재판결과야 정상적인 경우라면 고성빈의 무죄로 확정될 테고, 그렇다고 왕따의 피해자인 문동희가 처벌받을 일은 없을 것이고, 더구나 왕따와 학원폭력에 대한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재판과정에서의 치밀함이나 치열한 갈등과 충돌이 사라져버린 이유였다. 사실상 더 이상 쓸 게 없었다.

 

변호사다.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에 대한 성실의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항상 의뢰인의 편에 서야 하고 의뢰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설사 의뢰인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인지한 경우라 할지라도 최대한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명백한 범죄자에 대한 변호와 자신의 양심이 충돌한다면 그때는 변호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인지한 사실에 대해 외부로 누설하는 것은 비밀유지의 의무에 어긋난다. 최선은 의뢰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양형을 낮추도록 유도하는 것이며, 만일 의뢰인이 그것을 거절한다면 그때는 변호를 거절하거나 의뢰인의 요구를 맞춰주거나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양심인가. 아니면 변호사로서의 의무인가.

 

변호사로서 장혜성이 극복해야 할 현실의 모순이며 딜레마일 것이다. 아니 이미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의 최고참인 신상덕(윤주상 분)을 통해 제기된 바 있는 문제일 것이다. 국선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피의자 가운데는 실제 범죄를 저지른 범인 자신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경우 국선변호사로서 어찌할 것인가. 유죄인 것을 알리고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유죄인 것을 숨기고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범인과 한 편이 되어야 할까? 문제는 그것이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의뢰인과의 관계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범죄사실에 대한 인지가 빨라지면 따라서 변호사인 자신의 선택 역시 빨라지고 극단적이 되고 싶다. 고민과 갈등의 여지가 아예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박수하는 이제 막 재판에 들어간 의뢰인 장필재와 장필승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유죄임을 알리고 만다.

 

서도연(이다희 분)가 옳았다? 역시 고등학생이다. 서도연이라고 박수하가 그런 것처럼 모든 진실을 알아 장필재와 장필승 형재를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던 것이 아니었다. 몰랐다. 알지 못했다. 단지 이들 형제 가운데 진범이 있었고, 그런데 전혀 이들 가운데 누가 진범임을 알 수 없었기에, 그래서 아무라도 진범을 살인죄로 처벌받도록 하고자 무죄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두 사람 모두를 공동정범으로 기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 형제가 공범이었다고 하는 것은 단지 우연에 불과했다. 박수하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다면 당시 상황에서 두 사람의 범죄가 별개임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의뢰인이 무죄를 주장한다면 그것을 전제로 변론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서도연이 옳았으니 장혜성은 틀린 것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장혜성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장필재와 장필승 형제의 범죄사실을 천천히 그것도 장혜성 자신의 능력으로 마침내 알아낼 수 있게 되었더라면. 아니더라도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보다 갈등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면. 설사 예고편에서처럼 명백한 범죄자이기에 댓가를 치르도록 하고 싶어도 최소한의 룰은 지켜가며 교묘하게 의뢰인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아니면 교묘하게 당사자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말에 따라 항복하도록 호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고편을 보지 말 것을 그랬다. 시청자 유인용이기를. 지금으로서는 선을 너무 넘어서게 될 것 같다.

 

박수하란 치트키일 것이다. 적당한 치트키는 게임에 새로운 재미를 부여하지만, 치트키를 남발하다 보면 게임의 재미가 사라진다. 돈과 아이템을 모으고 레벨을 올리는 과정 없이 그저 강해지기부터 한다면 게임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된다. 얼마전 시즌2를 끝낸 tvn의 '뱀파이어 검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비슷한 소재의 일본만화 '사이코메트러 에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건현장에서 읽어내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이미지다. 사실과 근접해 있지만 해석의 여부에 따라 전혀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실제 '뱀파이어 검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처음 읽은 사건 당시의 이미지와 사건의 결론이 전혀 다른 경우도 적잖이 찾아보게 된다. 오히려 뱀파이어 검사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드라마의 흥미를 극대화시킨다.

 

물론 잘쓰면 된다. 내용을 잘 채워넣으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성빈의 무죄를 밝혀낸 첫번째 에피소드부터 많은 불안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제 두 번 째 사건에서도 박수하에 의해 압축된 빈 자리는 너무 성급하게 채워질 듯하다. 사건이 단순해지고 결국 남은 것은 장혜성과 차관우, 박수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뿐이다. 장혜성과 차관우의 사이가 예상보다 빨리 진전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미루고 살아온 어른아이답게 장혜성은 자신의 감정에 서툴다. 복수를 위해 장혜성의 주위를 맴도는 민준국(정웅인 분) 역시 너무 멀리 맴돌고 있다. 민준국의 캐릭터가 갖는 강한 인상에 비해 사건이 너무 없다. 두었다 아껴먹으려는 것일까? 날이 덥다. 쉰다.

 

장혜성과 차관우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장혜성이 차관우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차관우 역시 장혜성을 남다르게 여기고 있다. 박수하만 불쌍하다. 그는 아직 아이다. 장혜성의 안중에도 없다. 그에게는 같은 동급생인 고성빈이 있다. 민준국이 한 발 물러서고 로맨스가 강화될 듯하다. 사실 채워져야 할 내용은 다른 것일 터다. 변호사로서 등장해야 할 법정도, 박수하의 특별한 초능력이라는 설정도 결국 흔한 멜로에 먹히고 만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다. 정혜성과 서도연 사이의 악연이라든가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긴장 같은 것도 그다지 첨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단지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그다지 좋지 못한 사이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역시 많이 약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 것이다. 소재가 독특했다. 캐릭터는 참신했다. 흥미로웠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전부였던 듯하다. 박수하의 캐릭터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방해만 되고 있다. 가장 첨예하게 부딪혀야 할 법정 역시 너무 쉽고 빠르게 끝나고 있다. 로맨스는 너무 성급하다. 장혜성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너무 빨리 모든 걸 보여주려 한다. 수습이 되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소재와 설정이다. 아직은 이르다.

 

드라마가 너무 친절해도 재미가 없다. 가리고 감추는 것이 있어야 관심도 가지고 끌리기도 한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너무 분명하다는 것도 시청자의 개입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조금은 아쉽고 안타까운 것도 필요하다. 드라마가 너무 명쾌하다. 그림자가 없다.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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