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갑작스럽다. 드라마가 그렇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요동친다.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후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하지만 이미 결론은 나와 있다. 거칠다 싶을 정도로 간결하다. 필요한 것만을 과정없이 바로 보여준다. 기다림보다 더 빠르다.
그래도 조금은 더 끌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기왕에 민준국(정웅인 분)이 박수하(이종석 분)를 피해 장혜성(이보영 분)의 어머니인 어춘심(김해숙 분)의 치킨집에 취직하고 있었다. 장혜성에게 되갚아주겠다고 바로 어머니인 어춘심을 찾아가 해코지하는 차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순히 어춘심을 죽여 장혜성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목적이었다면 굳이 어춘심의 가게에 취직하는 것과 같은 번거로운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장혜성의 주위를 맴돌며 마치 장혜성의 유일한 가족인 어춘심을 볼모로 잡고 있는 것 같다. 설사 민준국의 의도가 드러나게 되더라도 그것은 조금 더 장혜성에게 다가간 뒤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박수하가 자신의 소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박수하가 전문가에게 의뢰해 자신의 핸드폰번호를 이용 위치를 추적하려 한다는 사실도 그다지 눈치챈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급했다. 장혜성이 어춘심을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민준국은 바로 어춘심을 살해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마치 이 이상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그러나 지금까지 민준국이 어춘심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진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민준국은 그렇게 서둘러 어춘심을 죽여야 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어느새 납득하고 만다. 드라마만의 강점일 것이다. 분명 동요하고 있었다. 어춘심의 대책없는 호방함과 친절에. 그것은 어쩌면 딸을 가진 어머니의 모성이었을 것이다. 자식을 가진 어머니이기에 다른 이의 자식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는 듯 관심과 호의를 내보인다. 민준국의 과거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어춘심이 말하고 민준국 자신이 동의했듯 그가 그토록 증오에 집착하며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살아온 이유에 대해서다. 어춘심의 순수한 호의에 동의하면서도 끝내 어춘심이 싸준 생일음식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제는 쥐어짜듯 있는대로 악의를 드러내며 어춘심을 죽이려 한다.
더 상상력을 키워보자면 어쩌면 민준국은 어춘심에게서 자신이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지고 싶고 그래서 거부하고 싶은. 너무 낯설고 그러나 그립다. 너무 낯설어서 어색하고 불편한데 너무 그리워서 간절해진다. 차라리 가지고 싶고 부숴버리고 싶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것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하물며 그것은 그토록 증오스러운 장혜성의 것이었을 터다. 장혜성도 그것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을 자꾸 약하게 만들고 이상하게 만드는 그것을 철저히 부숴버림으로써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의 욕구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
민준국이 장혜성에 대해 정상에서 벗어난 과도한 증오와 집착을 내보이는 이유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증오하면서 살아왔다. 증오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미워하고 원망하며 언젠가 되갚아 줄 순간만을 손꼽는다. 자신을 단련하면서. 계획을 다시 세우면서. 그야말로 살아가는 이유이고 목적일 것이다. 감옥에서도 그렇게 견뎌냈다. 감옥에서 나가는 순간 반드시 갚아주고야 말리라. 박수하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유독 증언을 했던 장혜성에 대해서만 더욱 집요하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형기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그는 한 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되었다.
물론 결국은 작가가 설정하기 나름일 것이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그림들이 이미 오래전에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맞을 수도 있고, 어쩌면 터무니없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에서 벗어났지만 일관된 민준국의 행동들이 그렇게도 여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하필 국선전담변호사였다. 자신을 위해 법정에서 변호해 줄 변호사조차 구할 여력이 안되는 다양한 많은 사건들이 국선전담변호사인 장혜성과 만나게 된다. 어떤 연장선상에 있지 않겠는가. 국선전담변호사 장혜성과 민준국의 멈추지 않는 증오에 대해서는. 사이코패스이기에 원래 그렇다 한다면 참으로 허무할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일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스스로 자각을 가지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는 가벼운 터치의 법정드라마에서 피비린내나는 잔혹한 스릴러의 장르로 탈바꿈하고 마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민준국이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민준국이 장혜성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버리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두 사람은 서로 부딪히고 말 것이다. 민준국의 피가 장혜성의 법과 만난다. 단지 그 시간이 조금 더 당겨졌을 뿐이다. 그로 인해 조금 더 매끄러울 수 있었던 장면들이 거칠게 조각조각 끊기고 만다. 디테일과 마감이 아쉽다.
장혜성의 차관우(윤상현 분)에 대한 감정이 더욱더 노골화된다. 단지 자신만이 모를 뿐이다. 자신의 차관우에 대한 감정을 모르거나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차관우에 대한 호감이 차관우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나게 된다. 신상덕(윤주상 분)이었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한 차례의 반성과 함께 비로소 장혜성은 국선전담변호사로서 현실의 인간과 삶에 대해 직접 마주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인간적인 성숙이다. 그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차관우다. 박수하가 일부러 정장까지 차려입고 어른의 흉내를 낸다.
어차피 정해진 결과였을 것이다. 단지 시간이 멈춰 있었을 뿐 장혜성은 어른이었다. 어른에게는 어른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다. 아직 박수하는 아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결국 장혜성 앞에서 그는 아직 한참 어린 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반전이 있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박수하도 성장해야 한다. 제목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성장과 함께 변화하게 된다. 언젠가는 박수하도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섬뜩하다. 하필 몽키스패너다. 야만적이다. 그런데 침착하다. 차라리 자조적이기까지 하다.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어춘심이었을 테지만 죽음 앞에서조차 당당한 모습이다. 어머니다. 민준국을 야단친다. 잔혹하다기보다는 비장하다. 민준국의 죄가 슬프게 느껴진다. 아직 장혜성은 알지 못한다. 비극과 함께 시간이 가쁘게 흘러간다.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뀌더니 음울함 속에 장혜성과 함께 가라앉는다. 잔혹한 시간이 시작된다. 정웅인의 웃음이 아리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였다. 고집세고 무례한데다 사납기까지 하다. 폐지를 주워 모아 겨우 돈으로 바꿔 연명한다고 한다. 주위에서 흔히 보는 모습들이다. 가누지도 못할 손수레를 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주름투성이의 고단한 얼굴들이란. 높이 쌓아 올린 신문뭉치가 고작 하루치 방값에 밥값도 되지 못한다고 한다. 절망을 넘어선 체념이 도덕과 규범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그것이 무에 죄가 되는가.
법전에 갇혀 있던 - 아니 이전까지 자기안에만 갇혀 있던 장혜성이 자기라는 틀을 깨고 법전을 뒤져 노인을 위한 법조항을 찾아낸다. 직접 발로 뛰기도 한다. 팔촌이란 차라리 남과 같다. 그러나 팔촌이라는 관계가 구원이 되어준다. 남이 아니다. 이웃이며 자신이다.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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