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다. 이후의 전개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민준국(정웅인 분)은 결국 무죄로 풀려나고, 주머니칼을 꺼내보던 박수하(이종석 분)는 차관우(윤상현 분)에게 말한 그대로 그것을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장혜성(이보영 분)이 자신의 손으로 땅바닥에 던져 버린 변호사 배지를 다시 가슴에 달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지금부터가 드라마가 원래 다루고자 했던 중심줄거리였을 것이다.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 살인사건에 장혜성이 변호사로서 나선다. 필경 장혜성은 국선변호사로서 피고인의 변호를 맡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 악연으로 얽힌 바 있는 검사 서도연(이다희 분)과의 피말리는 법정싸움 끝에 피고인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고 만다. 아니 최소한 집행유예를 이끌어내며 승리를 거둔다. 장혜성의 곁에는 차관우와 국선전담변호인 사무실의 동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인사건을 일어났고 장혜성은 국선전담변호사로서 피고인의 변호를 맡게 되었는가?
차라리 조금만 더 뒤로 미뤘다면 장혜성의 성장과 함께 탄력을 받아 자연스럽게 살인사건과 변호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앞당겨 나왔다면 아무래도 살인사건 자체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매하다. 장혜성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고, 그동안의 잡다한 사건들이 집중력을 흐트리고 있다. 그저 지금까지의 여러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진다. 분량도 짧다. 보다 치밀하게 보다 치열하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냉철한 이성과 엄격한 법리의 싸움이 생략되어 있다. 성장의 마무리를 살인사건과 재판에 맡기게 된다. 복잡한 인간관계가 사건의 무게를 가린다. 장혜성 서도연 앞에 무릎을 꿇고 서대석(정동환 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도 너무 급하고 억지스럽다. 비장하기는 한데 그러기에는 너무 가볍다.
과연 지금에 와서 박수하의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굳이 마음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학교내 왕따를 소재로 한 첫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박수하의 능력이 드라마의 내용이나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경우란 거의 없었다. 지엽적이었고, 오히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베테랑 변호사 신상덕(윤주상 분) 쪽이 더 많은 것을 읽고 한참 더 앞서서 예측하고 있었다. 굳이 마음을 읽지 않아도 말로 전하면 되는 것이고, 말로 전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주변 정황들을 살펴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민준국이 장혜성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과정에서도 박수하의 능력은 전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성급한 전개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준비가 부족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의 최고참 신상덕 역시 풍부한 재판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 재판의 전반을 꿰뚫는 탁월한 안목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 전직 경찰 출신으로 역시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차관우 또한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는데 남다른 능력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굳이 박수하가 아니어도 되었다. 오히려 박수하가 없는 쪽이 두 사람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내는데 훨씬 유리하다. 지금도 신상덕이 재판을 않고, 차관우라 의뢰인을 위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로 뛰지 않는 이유는 바로 박수하가 있기 때문이다. 차별화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변호사로서 장혜성의 비중이 작다보니 박수하도 활약할 기회가 적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내용을 장혜성에게 전하여 도움을 주는 정도? 그로 인해 정작 장혜성이 변호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 한계이고 모순인 것이다.
신상덕의 경험과 차관우의 실력으로도 안되는 더 크고 더 교묘한 복잡한 사건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필경 치밀하고 집요할 정도로 치열할 것이다. 신상덕과 차관우의 능력으로 안되는 것은 박수하의 능력이 해결한다. 박수하의 능력으로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신상덕과 차관우가 있다. 그 중심에 장혜성이 있다. 그런데 사건을 구상하거나 구성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 사건은 단촐해지고 간결해지고 인문들의 역할 역시 위축되어 버리고 만다. 그동안 사건들이 너무 성급하게 종결된 이유이기도 하다. 더 이상 끌고갈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 한 발 빠르거나 한 발 늦은 주제가 되는 살인사건인 것이다. 박수하를 위한 무대는 미처 준비되지 않고 박수하 없는 내용들로 채워지다 보니 박수하 자신이 모순이 된다. 내용은 갈수록 허술해지려 한다.
그래서 결국 민준국이 일찍 끌려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민준국의 살인사건 역시 짧게 다루어진다. 박수하가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법정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정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박수하는 중심에 서게 된다. 이 순간 만큼은 주인공이다. 차관우에게 장혜성의 사정을 전하고, 장혜성에게 다시 차관우의 진심을 전하며, 그리고 마지막 입맞춤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과연 이후의 전개에서 박수하의 능력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는. 기왕에 설정된 것인데 유용하게 의미있게 드라마를 위해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예상하는 것이 맞다면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법과 변호사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법을 이용한다. 법의 헛점을 파고든다. 사실이 우선이다. 명확한 증거와 확실한 증언, 사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아무리 심증이 있고 정황이 있어도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진실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자칫 심증과 정황만으로, 혹은 편견이나 의도된 강요로 인해 무고한 이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 있다. 그를 위해서도 변호사는 존재해야 한다. 하필 차관우나 장혜성이나 국선전담변호사들이다. 가장 법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해 그들은 존재한다.
민준국은 분명 장혜성의 어머니 어춘심을 죽였다. 시청자는 그 사실을 안다. 박수하도 그것을 안다. 박수하를 통해 장혜성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입증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준비된 민준국의 위장과 연기로 인해 그의 범행을 증명할만한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아니 찾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증거와 증언들이 그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호사로서, 그리고 장혜성을 사랑하는 한 남자로서, 차관우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장혜성과 척을 질 각오까지 한 차관우는 진정한 변호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진짜 범인이 법의 심판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있었다.
억울하다. 분하다. 그래서 차라리 서도연을 찾는다. 서도연을 찾아가 무릎을 꿇는다. 자존심을 굽히고, 억울함을 애써 누르며, 진실마저 씹어 삼킨다. 위증을 시킨다. 법이 금지한 거짓증언을 강요한다. 법을 어겨서라도 살인자를 잡겠다. 스스로 법을 어기는 범법자가 되더라도 살인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다. 법조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다. 그것은 법조인이고 변호사고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감정인 것이다. 변호사 배지마저 신상덕 앞에서 자기 손으로 떼어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대석과 서도연은 현직 판사고 검사다. 법조인이다. 그들은 차라리 당당하다.
그래서 박수하가 등장하는 것이다. 장혜성과 특별히 러브라인도 없고, 그렇다고 차관우처럼 변호사로서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남의 마음을 읽는다지만 그가 하는 일이란 말했듯 거의 없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주인공인 이유일 것이다. 법은 사람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만을 본다. 그는 사람의 마음속 진실을 볼 수 있다. 역설이다. 법이 미처 읽지 못하는 민준국의 진심을 읽을 수 있기에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처벌받을 상황에 놓인다. 법의 진실과 실제의 진실 사이의 괴리가 박수하를 통해 표면화된다. 차관우와 박수하의 사이에 장혜성이 있다. 일반인과 변호사의 사이에 장혜성이 있다.
박수하가 무언가를 계획한다. 법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기에 법이 미처 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법이 금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지키기 위해서. 민준국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고자 맹세했던 장혜성을 지키기 위해서. 법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 법이 장혜성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지켜야 한다. 자신을 버려서라도. 마지막 인사가 그래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장하기까지 하다.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장혜성은 마지막으로 변호사로서 큰 성장을 보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시련일 것이다. 변호사이기를 포기해야 했을 만큼. 그런데 다시 지킬 것이 생긴다. 다만 이미 나올 것은 다 나와 있다는 점에서 새삼 법정에서의 첨예함이나 치열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이 정의롭다면 마땅히 자신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변호사인 차관우가 인간적인 애정으로서 자신을 대한다면 마땅히 자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따뜻하거나 친절하지 못하다. 민준국의 철두철미함이 법을 이겼다. 차관우의 변호사로서의 올곧음이 서대석과 서도연의 편법까지 막아낸다. 법의 정의가 민준국을 지킨다. 차관우는 변호사로서 옳았다. 법이 선은 아니다. 정의는 물론 아니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를 실천하고 악을 심판하는 것은 소설속 히어로들의 몫이다. 인간이란 작다. 법도 역시 작다. 그럼에도 장혜성은 다시 변호사 배지를 자기 손으로 달게 된다. 법의 모순이며 인간의 모순이다. 냉정하다. 차관우의 옳음이 민준국이라는 범죄자를 오히려 풀어주고 있다.
아무튼 초능력이라고 하는 자체가 곧 비일상인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함조차 넘어선 비상식인 것이다. 일상의 언어로서 비일상을 표현한다. 쉽지 않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평범함 속에 감추는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겉돌지는 않지만 완전히 평범함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박수하의 활약이 미미하다. 박수하가 물러난 자리에 평범힌 일상의 모습들이 떠돌고 있었다. 진정 바라는 것이다. 무척 어렵다. 아쉬운 이유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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