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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성조 - 찬탈의 군주들...

까칠부 2013. 7. 14. 17:17

세조와 성조 - 영락제라 해야 더 쉽게 이해되려나?


이 두 군주는 공통점이 많다.


첫째 둘 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측근정치를 시작함으로써 나라에 망쪼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다 강건한 군주로써 이미지가 좋다.


조선중기 세조로부터 명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사화로 몸살을 앓게 된다.


조선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집현전 학자들을 죽이고,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사림마저 죽이며 사람 죽이는 일에 골몰한다.


발전은 없고 퇴보만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조선을 괴롭히는 병폐는 이때 거의 생겨났다 보면 된다.


측근들 때문이다. 공신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다 보니,


더구나 지방의 양반들에게도 지지를 얻고자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으니,


농경지와 인구는 더 늘었는데 재정은 더 부족해졌다.


그나마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그 정도라도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 덕분.


선조가 즉위하며 사림의 인재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 조선을 일신하게 된다.


임진왜란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똥을 치우느라 밥상을 차릴 시간이 부족했다.


명은 더 심각하다.


주원장은 환관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압박했다.


자신은 독재를 행했지만 주윤문을 위해서는 방효유 등 명사들을 불러 보좌케 했다.


하지만 정통성없이 황제가 된 영락제는 아니었다.


주원장과 마찬가지로 주위를 의심했고 측근에 의지한 정치를 펼 수밖에 없었다.


환관들이 대거 요직에 등용되며 주원장에 의한 환관억제책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바로 증손자인 정통제 때에 왕진이 발호하며 그 효과는 너무나 분명했다.


잦은 원정으로 인한 재정고갈 역시 문제였다.


손자인 선덕제가 아니었으면 영락제로 인해 명은 망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경제의 중심이던 강남을 떠나 북경에 황도를 정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이미 중국의 중심은 강남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황제만 따로 하북에 있었다. 하북은 중국에서도 변방이다.


세조의 체제는 결국 명종대에 이르러 윤원형에 의한 세도정치를 낳고 만다.


그런데도 세조의 찬탈을 어쩔 수 없었노라 변명하는 것을 보면.


공신들이던 한명회, 신숙주, 권람, 홍윤성 등의 부패와 전횡은 말할 것도 없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무협소설에서 방효유는 간신이 되고,


최근 사육신은 일신의 영화을 위해 반역을 꾀한 역적이 되어 버린다.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다.


정통성 없이 권력을 차지하려면 결국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권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어느 나라인들 안 그럴까?


쿠데타로 권력을 잡으며 그로 인해 치러야 했던 댓가는 어떠할까?


무협소설을 읽다가.


그러고 보면 공주의 남자가 방영될 때도 말들이 많았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