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세계다. 인간이 거인의 먹이가 된다. 거인이 인간을 산 채로 잡아 삼키고 있다.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지만 거인의 압도적인 힘 앞에 너무나 무력해 보인다. 대부분의 인간이 거인에 의해 멸절되고 고작 높은 성벽에 의지해 소수만이 살아남았을 뿐이다. 그 성벽마저 뚫리고 말았을 때 더 이상 인간에게는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압도적인 거인의 힘 앞에 인간의 도시가 사냥터가 되고 허무하도록 처절하게 인간들이 죽어나간다.
하지만 흥미로웠다. 거인은 인간을 먹는다. 그러나 거인에게는 소화기관이 없다. 인간을 먹이로 삼고는 있지만 그로부터 어떤 생존에 필요한 영양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식기관도 없었다. 생명으로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결여된 것이다. 번식을 위한 성욕은 아예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고, 먹는다는 행위 역시 생존을 위한 영양의 섭취라기보다는 먹는다고 하는 욕망 그 자체만을 의미하고 있었다. 마치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오로지 먹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해했다. 무척 닮아 있었다.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필요해서다. 먹어야 한다. 입어야 한다. 안전한 곳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사회적 동물로써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이고 욕구일 것이다. 돈이 들어간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더 여유롭게. 하지만 한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 아무리 수천억의 재산을 가진 자산가라고 한 끼 식사로 무한히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심지어 그토록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자 검소한 것을 넘어서 아예 궁상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을 고집하기도 한다. 과연 돈을 벌어 더 수준높은 삶을 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해가며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란 무엇이겠는가.
산이 있으니 산을 오른다. 돈이 있으니 돈을 번다. 때로 돈을 버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영양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먹는다고 하는 행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다. 탐욕은 원래 가족과도 나누지 않는 법이다.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배우자마저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원수로 돌변하고 만다. 거인들도 그래서 무리를 지어 행동하고 있음에도 전혀 서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옆에서 다른 거인이 죽어가는데도 거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먹는다고 하는 행동에만 집중할 뿐이다. 필요에 의해 함께 행동하지만 결코 동료는 될 수 없다. 인간이란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단지 먹이에 불과하다.
바로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거인들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성벽 내부의 여러 상황들일 것이다. 부족한 식량을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인간을 '정리'한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대원들은 권력의 상층부를 지키기 위해 보다 성벽의 안쪽으로 향하고, 그보다 떨어지는 능력을 가진 이른바 열등생들만이 가장 바깥쪽 성벽에서 거인들과 싸운다. 훈련생들이 필사적인 이유 역시 거인들과의 위험한 전장보다 풍요와 안전이 보장된 후방으로 보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조리하지만 그것이 결국 모든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인간이 거인이 된다고 하는 설정은 그렇게 성벽 안쪽의 인간의 사정과 어우러지며 절묘하게 교차한다. 인간이 결국 거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거인과 맞서는 병사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어린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만화의 진정한 주제일 것이다. 아니면 만화가 자신의 기억에서 비롯된 무의식의 결과이거나. 거인들은 반대로 거의가 추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기는 아직 어린 나이일 때는 어른이란 한참 크고 한참 더 강해 보이는 무시무시한 존재일 것이다. 단지 어른이라는 것만으로도 반항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굴복하고 만다. 제아무리 사납고 싸운도 잘하는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기성사회의 엄격한 구조속에서 그저 여리디 여린 약자에 불과할 뿐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질서에 순응하며 기성의 구조속에 편입되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도태된 채 기성의 구조에 맞서거나. 성벽은 아직 어린 그들 소년과 소녀들을 지키는 가상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가족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하며, 아직은 유효한 그들만의 세계이기도 하다.
가족이 죽는다. 시작하자마자 어이없이 주인공의 어머니가 거인에 의해 잡아먹히고 만다. 아이들이 자신의 무력함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는 계기일 것이다. 세상의 전부일 것 같던 부모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현명할 것 같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어쩌면 너무나 하찮은 미미한 존재힐 수 있다. 불의를 외면하고, 부조리와 타협하고, 더 큰 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이제껏 아이를 지탱해 온 세계가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린다. 더 큰 거인에 의해.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이제껏 자신들을 지켜주던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마주하려 한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탐욕스러운, 더구나 자신들이 장차 속하게 될 사회의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지혜까지 배운 힘센 어른들과 상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성년자에 대한 착취와 학대와 유린은 이제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훨씬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더 낮은 임금과, 더구나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만화들에서는 하나같이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불의한 어른들과 싸우다가 죽어가는 것일까. 아이들의 눈으로 보게 된다. 세상을. 그리고 어른들을. 성벽 너머의 거인들을. 그럼에도 그들은 성벽 너머로 떠나가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
만화가 우울한 이유일 것이다. 단지 잔인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거인의 압도적인 폭력에 맞서는 것도 결국 같은 거인의 폭력이었을 것이다. 같은 거인이 되어 폭력으로 거인들과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도 거인이 된다. 하나하나 아이들 가운데 거인이 나타나게 된다. 인간이 아닌 거인이 세상을 지배한다. 거인과 맞서싸우는 사이 아이들도 거인이 된다. 처음 미카사와 에렌이 만났을 때 에렌은 미카사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을 죽이고 있었다. 에렌은 거인이 된다.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미카사와 에렌은 거인과 싸운다.
역시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처음 의도는 단지 공포였을 것이다. 공포와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란 무의식에 기생하여 자라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가 가진 무의식의 공포가 그런 식으로 작품에 투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공들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며 작가 자신이었을 것이다. 작가와 그것을 공유하는 모두의 공포일 것이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한 편의 만화가 이토록 국경을 넘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크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본능과 무의식이 공포와 혐오로 등을 떠민다.
인간이 거인이 된다. 원래 거인은 인간이었다. 인간이었지만 거인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양심도 동물적인 본능과 충동이 대신한다. 그것을 탐욕이라 부른다. 거인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다. 굳이 거인이어서가 아니다. 성벽 안쪽에서도 인간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잔혹한 것은 인간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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