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되려고 하는 자와 진짜가 되고자 하는 자, 결국은 둘 다 가짜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진짜가 되고자 한다. 진짜를 없앰으로써. 가짜를 지움으로써. 당당하다.
"가짜는 바로 너야!"
그래야 진짜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더 진짜같게. 어느 누구보다 더 진짜같이. 심지어 진짜보다도 더 진짜가 되어야 한다. 양심의 가책따위는 없다.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야 말로 진실이다.
그는 진짜 천영보를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도저히 천영보의 존재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맞을 것이다. 하인의 자식이던 자신을 마치 친아들처럼 아껴주었었다. 마치 친동기처럼 친구처럼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조상국(이정길 분)의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 아래 그런 어른을 배신하고, 그런 친구이고 형제이던 이를 배신하고, 같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을 배신했다. 일본제국주의의 끄나풀이 되었고, 인민군이 되었으며, 다시 미군의 편에서 과거의 동지들을 배반했다. 그런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환멸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열한 양심은 끝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차라리 모든 죄를 천영보라는 이름과 묻어버리고 새로운 자신이 되는 쉬운 길을 선택하려 한다. 진짜 조상국이 이미 죽은 뒤이든, 아니면 자신으로 인해 죽게 되었든, 아니 더구나 그토록 동경하면서 또한 질투했던 조상국이었기에 그는 더욱 조상국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진짜 조상국을 죽여서라도 더 진짜같은 조상국이 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짜가 되었다. 진짜 조상국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을 가짜라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바로잡는 것이다. 어긋난 것들을 새삼 다시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조해우에게 말한 모든 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다. 천영보는 자신의 손에 죽었고 자기는 어디까지나 독립운동가 조인석 선생의 아들 조상국이어야 한다. 아니 조상국이다. 그래서 한이수(김남길 분)의 말처럼 조상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요시무라 준이치로(이재구 분)도 자신 한이수도 아닌 조해우(손예진 분)인 것이다. 천씨성이 아닌 조씨성을 쓰는 자신의 손녀야 말로 자신이 천영보가 아닌 조상국이라고 하는 가장 강력한 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지금껏 살아왔다. 자신을 증명할 자식들을 위해. 그런데 다름아닌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손녀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의심받는다. 자신은 진짜 조상국이어야 한다.
그에 비해 한이수가 김준이 되어야 했던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 김준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이수일 수 없기에 김준이고자 했을 뿐이었다. 항상 돌아가고 싶어했다. 원래의 한이수로. 사랑하는 조해우와 자신의 여동생 한이현(남보라 분)과 친구들의 곁으로.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자신을 한이수가 아닌 김준 - 아니 요시무라 준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만든 그것. 조상국과의 묵은 숙제를 풀지 못하는 한 그는 다시 한이수로 돌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 조해우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조상국과의 문제는 먼저 해결하고 가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그래서 끊임없이 흔적을 흘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조상국과 자신의 과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한이수, 과거를 버리고 더욱 진짜같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조상국과 다시 과거로 돌아가 원래의 진짜 한이수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한이수. 그 차이는 결국 한이현을 납치한 조상국의 하수인과 그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대치한 상황에서 드러나고 만다. 한이수는 한이현을 살리고 싶어하지만, 조상국의 하수인은 차라리 아내가 죽기를 바란다. 한이수가 그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병든 아내를 연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단지 자신의 탓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차마 결심하지 못한 그것을 자기가 아닌 누군가 행동으로 옮긴다면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상국의 과거야 말로 그의 병든 아내와 같지 않았을까. 조상국은 자신의 병든 아내를 직접 죽여 미련을 끊어냈었다. 한이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마치 타인과 같다. 드라마에서 한 가지 매우 아쉬운 부분일 것이다. 조상국의 손녀다. 조상국이 자신의 할아버지다. 그런데 고민이 없다. 갈등도 없다.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해마지않던 할아버지였을 텐데도. 배신의 충격조차 없었던 것 같다. 조해우의 눈은 오로지 한 사람 한이수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오준영(하석진 분)의 아내다. 오준영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존재감을 잃어간다. 오준영과의 사이에 오해가 쌓여간다. 아니 그것은 오해였을까?
애닲음이 없다. 한이수와 오준영의 사이에서, 한이수와 할아버지 조상국과의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며 갈등한다. 방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연민이 생겨난다. 그런데 없다. 너무 명쾌한 감정의 선이 비중이 거의 없는 장영희(이하늬 분)의 애처로운 눈빛보다 밋밋하게 느껴진다. 형사 변방진(박원상 분)의 말처럼 검사로서 범죄자를 추적해 체포하는 과정에 대한 철두철미한 의지와 노력마저 사라져 있다. 여자는 사랑을 한다.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은 오로지 사랑을 한다. 아니면 그조차 한이수와 조상국처럼 그녀에게 씌워진 가면일까?
요시무라 준이치로의 한이수에 대한 감정은 진심일까? 장영희에게도 여러가지 가면들이 있다. 요시무라 준이치로의 명령을 받으면서 한이수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둘 모두에게 거짓말을 한다. 조상국이 요시무라 준이치로를 의심하고 있다. 요시무라 준이치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확인이란 절차에 불과하다. 결국 요시무라 준이치로와 조상국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직 한이수는 요시무라 준이치로에게 쓸모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의 말 모두가 진실이거나. 항상 스릴러에서 진심이 되고 나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거짓과 가면, 기만과 위선이야 말로 스릴러에 어울리는 능력일 것이다.
존재론적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조상국과 한이수 두 사람을 통해. 누구나 하나씩 자기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며서도 모두는 진짜가 되고 싶어한다. 존엄을 넘어선 자아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거나. 조상국은 늙었고 한이수는 아직 젊다. 기만과 위선을 진실로 여기고 살아가는 기성세대와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세대의 갈등이 보이기도 한다. 하필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조상국을 흘러지나고 있었다. 우리들 자신의 현재이기도 하다.
오준영의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게 되면 조금은 조해우 또한 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림자가 생긴다. 그늘이 생긴다. 입체가 되어간다. 아직까지는 평면이다. 드라마가 채워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이수도 조상국도 모두 복잡한데 혼자서 단순명쾌하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멜로만이 남는다. 하물며 그녀는 현재 유부녀의 몸이다. 로맨스가 성립하기에는 조건이 너무 불리하다.
한이수가 위기를 맞는다. 조상국의 반격이 너무 세다. 조상국이 주도권을 잡는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의 치명적인 점일 것이다. 조상국에게도 지켜야 할 것은 있다. 조해우인가? 한이수인가? 역시 쉽지는 않다. 조상국은 강하다. 요시무라 준이치로는 너무 많은 것이 가려져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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