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실망이었다. 시간에 쫓겼던 것일까? 눈빛만으로 합을 맞춰서 김수현(이수혁 분)의 총소리에 맞춰 한이수(김남길 분)와 한이현(남보라 분)이 동시에 움직인다. 한이현이 움직이는 순간 한이수가 달려들며 최병기가 쏜 총알을 대신 맞는다. 하필 어깨를 스치고 있다. 조금 더 설득력있는 -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보게 되는 그런 긴박한 연출은 너무 지나친 기대였던 것일까.
허무했다. 어이가 없었다. 한순간에 한이수와 최병기의 대치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서로 인질마저 바꾼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 돌아서 제 갈 길을 간다.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에서 한숨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신파가 나올 여유가 있다. 여동생이 인질로 잡혔다. 머리에 총까지 겨누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여동생을 살리고 싶다면 네가 죽으라. 기껏 찾아서 인질로 데려온 병든 아내조차 그를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언가 하나는 내놓았어야 했을 텐데. 하기는 한이수가 최병기를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것이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공인데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계기였다. 그렇게 한이수와 최병기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한이현의 납치로 인해 경찰이 최병기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동안 조상국(이정길 분)의 손발이 되어 온갖 더러운 일을 해 온 최병기였을 것이다. 최병기만 확보해서 자백을 받아낸다면 조상국의 치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 지금껏 어떠한 실질적인 수단도 무기도 없이 조상국과 맞서오던 한이수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쥐어진 셈이다. 한이수 역시 마찬가지로 한이현과 변방진(박원상 분)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 한이수가 조상국을 쫓고, 또한 한이수에게 돌아갈 곳이 생기게 된다. 그를 위한 장치인 셈이다. 인위적으로 판을 바꾼다.
한이현이 한이수를 만나고, 변방진이 한이수를 알아보며, 오준영(하석진 분)마저 한이수를 눈치채고 만다. 한이현은 말한다. 살아있어줘서 다행이라고. 변방진도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복수따위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런 위험한 일따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일따위 이제 그만두어도 좋다고. 그래서 한이수 또한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던 것이다. 아무리 멀리 가게 되더라도 그들이 있는 이상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다시 원래의 한이수로 돌아올 수 있다. 하필 그런 한이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오준영이다.
한이수에 대한 조해우(손예진 분)의 감정을 안다. 한이수의 죽음에 상심해 있던 조해우를 위로하며 조금씩 마음을 얻어 마침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이수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오준영은 과연 조해우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오준영을 고민하게 하는 것은 원래 조해우의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한이수였다고 하는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한이수는 오준영에게 있어서도 자신이 가장 인정하던 친구이며 아끼는 동생이었다. 결과적으로 한이수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되어 버렸다. 조해우로부터 한이수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오준영 자신도 역시 조해우를 포기할 수 없다. 조해우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다.
오준영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조해우가 미안하다 말하고 있다. 진심을 고백하려 하고 있었다.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 복잡하다. 미워할수도,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지켜보기에도 그는 혼란스럽다. 잠시 조해우의 곁을 떠나려 한다. 하필 오준영이 찾은 곳이 동생의 유해가 있는 납골당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한이수는 오준영에게 동생 대신이기도 했었다. 조해우를 위해 한이수와 맞설 것인가. 아니면 조해우를 위해 또다른 조력자로 나설 것인가. 요시무라 준이치로(이재구 분)가 보낸 한이수와 조해우의 사진은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일을 크게 벌릴 여력이 없다.
조해우가 한이수를 사랑한다. 위험하다. 유부녀다. 남편이 있다. 자신만을 끔찍이 사랑해주는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다. 그런데도 그런 남편을 배신하고 옛사랑을 따라가려 한다. 그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비로소 아버지의 애인인 이화영(정애연 분)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의 이끌림이 있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간절한 충동과 갈구가 있다. 오준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녀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조해우는 명쾌하다.
드라마의 중심이 되어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것을 정리하는 규준이 되어준다. 조해우의 역할일 것이다. 처음 생각한대로 그녀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에서 한이수를 만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가장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녀는 흔들림없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바른 길인가.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 드라마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중심으로 드라마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해우가 고민하고 갈등하고 결론내리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조해우를 중심에 둔 주위의 모든 상황이 보다 극적으로 고조되어간다. 마치 오르페우스를 이끌고 저승길을 오르던 에우리디케처럼. 다시 한이수를 살아나게 할 당사자다.
결국 조상국이 분노한다. 조해우에게 부정당했다.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손녀 조해우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부정당했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껏 필사적으로 지켜온 세월이었다. 그토록 악착같이 지키며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마지막 말에 의미를 두려 한다. 다른 건 속여도 사랑은 속이지 못한다. 어떤 반전을 예고하고 있을 것이다. 조상국의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순간 조상국은 자신의 손녀마저도 수단으로 사용하고 마는 비정한 모습 그대로다. 조해우를 이용해서라도 한이수를 떨쳐내고 싶다. 조해우를 다시 되찾고 싶다.
한이수는 다시 돌아가려 한다. 김준이 아닌 한이수로. 그것을 요시무라 준이치로는 용납하지 못한다. 한이수는 김준이어야 한다. 조상국을 향한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복수의 화신 김준이어야 한다.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과 함께 깊은 원한을 되갚는다. 궁지로 내몬다. 조상국이 한이수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한이수 역시 막다른 선택으로 내몰리고 만다. 조상국에게 말한 그대로 조해우의 파멸을 바라던지, 아니면 아예 복수를 포기하던지. 한이현과 변방진의 설득에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던 한이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는 한이수로 돌아오지 못할 선택이기도 하다. 복수를 끝마치지 못하면 한이수도 없다. 한이수가 다시 세상에 살아돌아오기 위한 조건이다. 변방진에게 최병기에 대해 가르쳐주는 이유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한이수도 돌아온다.
최병기가 변장진을 보는 눈이 심상치 않다. 너무 지지부진하다. 보다 숨가쁘게 몰아칠 필요가 있다. 오준영과 조해우 사이의 갈등을 기대한다. 오준영의 아버지 오현식(정원중 분)이 의식을 차린 이후도 기대해 본다. 조의선(김규철 분)이 아버지에 대해 마침내 알게 되었다. 조해우가 고민하는 것은 사랑만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기술적인 선택만이 남았을 뿐이다. 비로소 한이수가 얼굴에 감정을 내보였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으로 돌아와야 한다.
하필 그 순간 조해우에게 조의선의 생모 - 즉 조상국의 전처가 살던 집 주소를 전하는 박여사(정경순 분)가 있었다. 의도없는 장면은 없다. 의도되지 않은 행동은 없다. 지나치게 한이수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요시무라 준이치로 또한 조상국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요시무라 준이치로가 조해우를 이용해 조상국을 흔들려하는 때 박여사는 조의선 생모의 주소를 통해 조해우를 흔들려 든다. 또 하나의 반전일까? 조상국 - 아니 천영보의 죄가 깊고도 크다.
쉽게 만드는 것이 있다. 액션보다는 대사다. 조상국과 한이수의 대결도 주로 그늘진 서재를 배경으로 전화통화로써 거의 이루어진다. 조상국의 지시를 받는 것도 최병기 하나다. 당장 한이수를 향한 위협이란 조해우의 존재 정도다. 의도는 좋으나 복수의 묘미는 바로 짜릿함에 있다. 너무 어렵다. 너무 복잡하다. 복수를 할 것인가도 모른다. 장점이기도 하다. 재미있다.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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