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지루한 에필로그, 장혜성 납치되다

까칠부 2013. 7. 26. 07:11

오래전 보았던 만화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었다. 어차피 만나면 싸울 것 괜히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놓을 것 무에 있는가. 만나고 싸우고 끝낸다. 혹은 만나고 서로 반하고 사랑해서 행복하게 산다. 서로 바쁘고 시간도 없는데 그쪽이 제작비도 아낄 수 있지 않겠는가.

 

그에 대한 반론을 해본다. 그래봐야 어차피 영화 한 편의 상영시간은 정해져 있다.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되는 분량도 거의 정해져 있을 것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싸움이 끝나고 그 뒷이야기로 한 시간을 끌고 간다. 서로 행복해지고 나서 다시 한 시간이 이어진다. 처음부터 단편으로 만들려 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후가 문제가 된다.

 

뻔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계속 들어주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세상에서 그래서 가장 힘든 직업이 남의 말 들어주는 직업이다. 별다른 것 없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사연을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호응하며 들어주어야 한다. 그나마 필자의 경우는 낫다. 뻔한 이야기를 뻔한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도무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언제쯤 이 드라마는 끝이 나는 것일까?

 

차라리 서대석(정동환 분)이야 말로 자신의 아버지라 말하던 전회의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다. 26년이었다. 첫기억이 있기보다 더 오래전부터 친아버지로 여기고 자라왔고 친딸로써 살아왔다. 이제와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자기 친아버지라 나선다 해서 새삼 없던 정이 생길 리 없다. 오히려 친아버지 황달중(김병욱 분)보다 길러준 아버지 서대석이 더 걱정된다.

 

그러나 결국 천륜이라는 것일까? 핏줄을 따라가고 만다. 친아버지인 황달중을 위해 장혜성(이보영 분) 앞에 무릎꿇고, 검사로서 친아버지를 위해 공소취소라는 부담을 짊어지려 한다. 친아버지와 관련한 일들을 길러준 어머니에게 알려 서대석을 고립시킨다. 서도연이 찾아간 곳도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아버지 서대석의 곁이 아닌 친아버지 황달중의 병원이었다. 어차피 모두가 한참전부터 황달중과 서도연 두 사람이 부녀관계임을 알고 있었는데 새삼 부녀임을 강조해봐야 감동이 더할 리 없다. 이미 울 만큼 울었고 눈물도 흘릴만큼 흘렸다. 다른 반전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봐서 굳이 이 장면이 이처럼 길게 나와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재판이 끝나고 과거 황달중의 국선변호사이던 신상덕(윤주상 분)이 회한에 잠기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던 차관우(윤상현 분)과의 지난 인연까지 들먹여지고 있었다. 과장된 액션과 불필요한 군더더기, 더구나 차관우의 입을 빌어 들려주는 사건의 내용이란 과거 대만에서 일어났던 증거제일주의의 폐해와 사형제폐지의 당위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주는 사건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당시 유력한 살인용의자였던 피의자는 신상덕을 만나지 못한 탓에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당하고 말았다. 진범은 정작 누명을 쓴 피의자가 사형당하고 난 뒤에나 잡혔다. 너무 유명한 사건인데 미묘한 곳에 잘라다 붙이고 있었다. 급조한 장면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재판에서 명연설을 보여준 장혜성의 속물적인 모습도 너무 길게 잡혔다. 한두번이면 재미있는데 서너번이면 벌써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이미 결론나버린 장혜성과 박수하(이종석 분)의 사이 또한 이제는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권태기가 찾아와버린 모양이다. 차라리 민준국(정웅인 분)이 장혜성을 납치한 것이 잘됐다 여겨진다. 일상이 그들을 배신하지 않는다면 비일상에서 그들의 일상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계기가 되어준다. 이 장면에서도 차라리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서는 장혜성을 민준국이 납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훨씬 깔끔하고 보다 더 긴박감을 줄 수 있다.

 

아무튼 법과 논리가 실종되어 버린 법정이었을 것이다. 서도연은 라이벌조차 아니었다. 장혜성의 적수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장혜성과 팽팽하게 겨루어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검사로서, 그리고 장혜성의 라이벌로서, 무엇보다 아버지 서대석의 딸로써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었다. 서도연의 엄정한 법논리가 장혜성의 인정에 기반한 정의와 충돌한다. 황달중이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 뒤에도 오히려 검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더 충실하려 한다. 핏줄에 이끌리고 인정에 이끌리면서도 끝내는 장혜성과 겨루어 황달중의 유죄판결까지 이끌어내고 만다. 엄정한 법논리로 황달중의 살인미수를 유죄로 만들고, 대신 황달중이 자신의 친아버지임을 마지막 순간 인정하고 만다. 아마 그 과정에서 서대석의 잘못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면 굳이 서도연의 입을 빌어 전하는 것보다 극적 효과도 높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재판을 통해 재판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결국 서도연은 친아버지 황달중을 위해 장혜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과 첨예하게 갈리는 판결내용에 대해서 인정에 이끌려 공소취소를 결정하고 있었다. 과연 그것은 검사로서 오로지 법과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판단이었는가. 그래서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검사로서 친족이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다. 재판이 끝나고 정의의 여신상을 올려다보는 신상덕과 황달중이 그래서 얄궂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도연은 자신의 친아버지의 재판에 직접 검사로서 참여했고 끝내 핏줄에 이끌리고 말았다. 검사실격이다. 장혜성과 싸움도 해보기 전에 무대에서 내려오고 만다. 재판이 끝나고 장혜성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는 차마 허탈하기조차 하다. 고작 이런 정도였는가.

 

법은 과연 국민의 상식에 맞춰가야 하는가. 과연 국민의 상식이란 법이 추구하는 사회의 정의와 반드시 일치하고 있는가. 과연 국민들 스스로 명예살인을 당연하다 여기고 있다면 법 또한 그것을 쫓아야 하는가? 관습적으로 신분과 계층을 나누고 차별을 하려 한다면 그것 또한 국민이 바라는 바이니 법 또한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을 죽이려 했으니 살인이고 살인미수일 것인데, 고의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죄가 없는 것이다. 서도연의 공소취소란 결국 친아버지라는 혈연에 이끌린 것이었다. 아무리 죽어 마땅한 사람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아무리 정당한 불법도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법보다 인정이 앞선다. 국민정서법이다. 비아냥인가. 아니면 무의식적 추종인가. 그다지 썩 바람직한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재판이 너무 일찍 끝나버린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민준국의 등장이 너무 빠르면 그조차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만다. 길게 늘여쓰는 재주는 없다. 늘여쓰는 것은 좋은데 채우는 것에 약하다. 결국 그 사이사이를 뻔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성기게 채워넣는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연일 높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드라마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신파는 장르를 뛰어넘는 보편의 코드다. 장르가 사라지는 이유다.

 

그나마 흥미롭다면 과연 과거 민준국과 박수하 아버지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민준국이 저리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는가. 황달중이 용서를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용서하려 한다고 말한다. 유일하게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장혜성이 납치되며 드라마는 더욱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민준국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장혜성은, 그리고 박수하는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한다.

 

드라마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들을 정리해 버린 탓에 남은 것이 없다. 의도적인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남은 내용들이 제법 굵직하다. 대미를 기대해 본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제목에 어울리는 장면도 필요할 것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 번 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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