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생명은 다 똑같아 - 개나 고양이만 특별한가?

까칠부 2013. 8. 9. 09:51

베지테리언들이 많이 듣는 비난 가운데 하나다.


어째서 닭은 먹는데 소는 먹지 않는가?


물고기는 동물이 아닌가?


풀은 생명이 아닌가?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자.


같은 소를 먹는다. 돼지를 먹는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는 귀하게 여긴다.


같이 닭을 먹으면서도 소나 돼지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을 갖는다.


누가 더 우월한가?


선은 작아도 선이고 악은 작아도 악이다.


동네 어렵게 사는 아이들을 돕는다.


누군가 말한다. 더 어려운 아이들도 있는데.


아프리카 오지의 어린이들을 후원한다.


누군가 또 말한다. 한국에도 어려운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결국은 누군가를 돕는 마음은 진짜라는 것이다.


경계일 것이다.


이 안은 내 것이고 이 밖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다.


그 안에 대해서만은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모기도 생명이고 파리도 생명이지만 그의 경계는 포유류에 있다.


혹은 인간과 가까운 동물에 있다.


그것이 그들의 선의다.


그것을 조롱하는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가.


비아냥거리는 것들은 평생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래도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더 살리고 보살피고,


그래도 도살될 운명에 놓인 소나 돼지에게 조금은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고,


물론 아주 극단적인 베지테리언은 아예 생명과 관계된 것은 먹지 않는다.


상추는 잎 몇 개 딴다고 죽지 않는다.


감자의 덩굴 몇 개 덜어낸다고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도만 다를 뿐 다른 선의와 진정도 있는 것이다.


말만 많은 것들이다.


이것은? 저것은? 그러면 자기들이 신경쓰라.


선의를 막는 도구로 쓰지 말라. 선의가 미치면 작아도 그것이 좋은 것이다.


차라리 생명따위 단지 인간을 위한 도구라 솔직하게 말하면.


인간 이외의 생명은 존중할 가치가 없다.


여기서 인간이란 어디까지를 가리키는가 또 갈리고 만다.


사람같이 않으니 인간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이 그렇게 죽어갔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그렇게 멸종되어갔다.


인터넷임을 깨닫는다.


진짜 말만 많다.


우습다.


작은 선의를 존중할 줄 아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